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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VIP 상품 쏠쏠” 그말만 의심했다면…46억 날리고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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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대상 상품이라고 했거든요…”
경기도에 사는 김모씨는 2018년의 그 순간만 되뇌었다. 수년 전 같이 군 복무를 했던 후배 A씨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제대 후엔 드문드문 연락하는 사이였다. 보험설계사 A씨는 만나자마자 김씨에게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VIP를 대상으로 하는 원금보장형 단기 채권상품이 있는데 쏠쏠하다”는 말에 솔깃했고 5000만원을 입금했다. 한동안 원금과 이자가 제때 들어오면서 A씨에 대한 신뢰감은 두터워졌다. 때마침 A씨가 “이자율이 높아졌다”며 투자금을 늘리라고 권유했고 김씨는 지난해 5월부터 금액을 조금씩 올렸다. 자신의 형수에게도 A씨를 소개했다. 어느덧 A씨에게 맡긴 금액은 9억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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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말 문제가 생겼다. 원금과 이자가 예정일인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A씨는 “채권 환매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문제가 생겼다”며 기다려달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환매처리는 계속 늦어졌고 12월 중순부턴 연락마저 끊겼다. 초조해하던 그가 진상을 알게 된 건 지난달 우연히 A씨와 교류했던 30대 남성을 만나게 되면서다. 이 남성은 A씨로부터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운영하던 카페를 접었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그는 “A씨가 ‘귀에 암이 생겨서 치료받느라 지급이 늦어진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거짓말이었다”며 “A씨는 금융 상품을 판매하고 중개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나 같이 당한 사람이 수십 명”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김씨는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지난달 22일 망연자실해 있던 이들에게 뜻밖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행적을 감춘 A씨가 법원에 간이회생을 신청했다는 소식이었다. 분개한 채권자들은 재판부에 “A씨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A씨는 법원 심문에서 “원금보장 약정이 무효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더 많은 투자를 받기 위해 약정을 했다. 지난해 투자에 크게 실패하면서 원리금을 변제하는 게 어려워졌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간이 회생신청을 기각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A씨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결국 김씨 등 채권자들은 A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로 했다. A씨가 채권상품에 투자할 계획이 없었는데도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아 채권상품에 투자할 것처럼 기망해 편취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A씨가 신규 투자자에게 돈을 받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주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A씨 부인도 함께 공동정범으로 적시했다. 법률대리인을 맡은 엄태섭 변호사는 “A씨에게 피해를 본 채권자는 33명이고 피해액은 46억원이다. 하지만 개인 채권자 대부분이 채권상품 투자를 위해 돈을 이체하였다가 반환받은 과정을 거쳤다면, A씨의 이득액은 약 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 하남경찰서는 최근 A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서에서 접수된 사건을 이송받아 A씨의 연락처 및 주소 등 확보한 뒤 출석요구 등을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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