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디자이너인 A씨(27)는 지난해 12월 월세 등 생활비에 사용하기 위해 1200만원이 급하게 필요했지만,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연달아 대출을 거절당했다. 스마트폰 통신료 납부를 몇 차례 미뤘다가 신용점수가 600점대로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대부업체 두 군데에서 연 20%에 가까운 고금리로 겨우 대출을 받았다. A씨는 “신용점수가 낮아서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를 찾았지만, 매달 내야 하는 이자가 너무 세서 힘들다”고 말했다.
저축은행과 카드사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금융 취약 계층이 고통을 겪고 있다. 신용점수가 낮은 이들에게 대출을 내주는 곳이 점점 줄어드는 데다, 대출받더라도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 저신용자뿐 아니라 사회초년생 등 금융거래 이력이 없는 사람(씬 파일러)까지 고금리 대출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저축은행중앙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79개 저축은행 중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40곳 중 저신용자(신용점수 600점 이하)에게 대출을 아예 내주지 않는 은행은 12곳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월(6곳)보다 두 배로 불어난 규모다.
이자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저신용자가 ‘급전 창구’로 활용했던 카드론의 경우 법정 최고금리(연 20%)에 육박하는 이자를 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7개 전업 카드사(롯데·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의 카드론 이용자 중 연 18~20%의 고금리 대출자가 전체의 25%를 넘는 곳은 4곳이었다. 지난해 7월에는 두 곳에 불과했지만 5개월 만에 배로 늘었다. 카드사 절반 이상에서 대출자 4명 중 한명 꼴로 최고 금리 수준의 이자를 내는 것이다.
법정 최고금리에 가까운 금리를 내는 카드론 대출자는 대부분 저신용자였다. 지난해 12월 말 7개 전업 카드사의 카드론 이용자 중 신용점수 600점 이하의 대출자 평균 금리는 우리카드(10.8%)와 하나카드(14.21%)를 제외하고 연 18.15~19.34%였다.
저축은행과 카드사가 저신용자에 대해 대출 문턱을 높이는 가장 큰 이유는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규제다. 올해 저축은행이 지켜야 하는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은 지난해(연 21.1%)의 절반 수준인 연 10.8~14.8%다. 대출을 내줄 수 있는 총량이 줄면서 빚을 갚을 능력이 있고, 부실 위험이 적은 고신용자로 대출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법정 최고금리 인하(연 24%→연 20%)도 저축은행이 대출 심사를 강화한 이유다. 일반적으로 신용점수가 낮은 이들은 두 개 이상의 대출상품에 가입한 다중채무자일 경우가 많아 부실 위험이 높다. 그래서 금리를 더 올려야 하지만 최고금리 인하로 상한선이 낮아진 탓에,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저축은행이 대출 심사를 더 깐깐하게 하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기준금리가 0%대로 매우 낮았고,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전이라 저축은행들이 저신용자에게도 대출을 내주는 분위기였다”면서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로 부실 위험이 적은 고신용자를 자연스레 선호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2금융권의 대출 문턱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올해 2금융권의 대출자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지난해(60%)보다 강화된 50%로 줄어드는 데다, 카드론도 올해 DSR 산정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DSR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의 비율로, 이 비율이 낮아질수록 개인이 받을 수 있는 대출액도 줄어들게 된다.
카드론의 금리 오름세도 더 심해진다. 카드사가 대출 재원을 조달할 때 내야 하는 이자(카드채 금리)가 연 2% 중반을 넘어서는 등 오르고 있어서다. 지난해 12월 기준 7개 전업 카드사와 NH농협카드의 카드론 평균 금리는 연 12.1~14.94%였다. 전달인 지난해 11월(연 12.13~14.86%)보다 뛰었다. 평균 금리가 연 12%대인 카드사는 단 한 곳으로, 지난해 11월(3곳)보다 줄었다.
2금융권의 ‘대출 한파’가 계속되면 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이 불법 대출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특히 금융거래 이력이 많지 않아 신용점수가 낮은 사회초년생이 고금리 대출의 굴레에 빠지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약계층뿐 아니라 학자금 대출 등을 떠안은 채 취업을 하지 못한 사회 초년생까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며 “저신용자가 사각지대로 내몰리지 않도록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면서 금융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심화하지 않도록 대출 용도별 규제의 정도를 차별화하는 등 세밀하고 촘촘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