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중정서 커지자…중국 ‘전랑외교’로 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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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 이후 국내 반중 정서가 높아지자 중국이 주한 대사관을 앞세워 공세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중국이 외교적으로 불리해지면 거친 태도로 역공하는 ‘전랑(戰狼)외교(Wolf Warrior Diplomacy)’를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모습이다.

주한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지난 4일 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불거진 ‘한복 논란’과 관련해 8일 “일부 언론의 억측과 비난”이라고 반박했다. 9일엔 쇼트트랙 종목에서 황대헌·이준서 선수가 납득하기 어려운 실격 판정을 받고 국내에서 편파 판정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과 관련,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반중 정서를 부추긴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사실 한국에서 한복 논란이 터진 것은 그간 중국에서 SNS를 중심으로 한복·김치·태권도 등에 대해 꾸준히 이어졌던 민간 차원의 ‘문화 공정’ 시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왜곡이 올림픽을 계기로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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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한 중국대사관은 이런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한복은 조선족의 것이기도 하다”고 반박했다. 한국 여론의 우려가 조선족 문화를 존중하지 않아 나타난 것으로 왜곡할 우려가 있다.

쇼트트랙 편파 판정은 한국뿐 아니라 터키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윤리 조사를 공식 요청하는 등 불공정성 시비가 확산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주한 중국대사관은 “한국의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올림픽에 흑막이 있다’고 억측하고, 함부로 말한다”며 판정에 문제가 없는데 한국에서 음모론을 퍼뜨린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이미 반중 정서가 한국 대선에서 비중 있는 이슈로 등장한 상황에서 주한 중국대사관이 이처럼 한국 정치권을 직접 비난하는 입장을 내놓은 것은 정치적 영향력 확대 시도로 비칠 우려가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9월 미국 외교협회 초청 대담에서 중국의 공세적 외교 행태에 대해 “경제적으로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 전랑외교를 두둔하는 것이냐는 논란이 일었는데, 이제는 한국이 직접적인 대상이 됐다.

공세적 대응의 주체가 주재국 대사관이란 점도 그간 중국이 각국에서 보여온 전랑 외교의 전형적 양상이다. 주호주 중국대사관의 왕시닝(王晰寧) 대사대리는 지난해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호주의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간 안보동맹) 가입과 관련해 “(호주가 핵추진잠수함을 획득한다면) 못된 녀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파키스탄 중국대사관의 장허칭(張和淸) 문화담당 겸 문화원장은 지난해 6월 트위터에 “우리가 적을 대하는 방식”이라며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그림을 올렸다. 현직 외교관이 저속한 욕설을 동원한 것을 두고 중국 전랑외교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국제적 비판이 일었다.

한국 외교부는 공식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한복 논란에 대해 “중국 측에 고유한 문화에 대한 존중과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한 이해 증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해서 전달하고 있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주한 중국대사관의 이런 태도는 외교 결례이자 내정간섭 시도로 볼 여지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주재국 언론 보도와 정치인 발언 등에 대한 외국 공관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주재국의 상황과 정서를 존중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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