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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재용이 고발한다

카카오페이 457억 역대급 먹튀···'머스크 잣대'로 보니 더 최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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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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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왼쪽)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카카오페이 스톡옵션 논란을 빚은 류영준(가운데) 전 대표 및 신원근 부사장. 그래픽=김현서 기자

김범수(왼쪽)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카카오페이 스톡옵션 논란을 빚은 류영준(가운데) 전 대표 및 신원근 부사장. 그래픽=김현서 기자

457억원.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 9160원을 적용하면 한 사람이 하루 8시간씩 쉬지 않고 1709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큰돈입니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할 때 일을 시작한 사람이 고려를 거쳐 조선 숙종 말기까지 일을 해야 다 벌 수 있는 돈이지요. '오징어 게임'의 456억원도 아니고 갑자기 왜 457억원이냐고요? 지난 연말 사퇴한 류영준 카카오페이 전 대표가 카카오페이 상장 후 단 한 달만인 2021년 12월 초 스톡옵션 23만주를 행사해 단숨에 벌어들인 차익입니다. 경영진은 돈을 번 반면 그 여파로 카카오페이는 2021년 272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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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CEO의 과한 보상은 비판 대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천문학적인 연봉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2018년 미국 S&P500 기업 CEO의 평균연봉은 1480만 달러였는데, 이는 직원 평균 연봉의 264배에 달합니다. CEO와 직원의 보상 격차는 계속 커지는 추세입니다. 미국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연봉 격차가 크지 않았던 한국 기업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연봉 100억원을 넘는, 그러니까 직원 평균 연봉의 100배를 훌쩍 뛰어넘는 파격적인 보상을 받는 스타 CEO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고, 기업 성과 창출의 선봉에는 CEO가 있으니 파이의 가장 큰 몫을 가져가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자본주의의 상징 미국에서도 기업의 C 레벨 최고 경영진이 받는 천문학적인 보수에 대한 여러 비판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최고 경영진의 보수는 지나치게 과도한 보상이자 탐욕의 상징이며, 일반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한다는 비판적 인식이 사회 전반에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8년 'CEO-직원 보상 배율 (pay ratio)' 공시 규정이 미국에서 새로 도입된 이유입니다. 모든 상장기업은 회사 전체에서 중윗값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는 직원과 CEO 사이의 보상 배율을 공시해야 합니다.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ESG) 성과를 강조하는 시대적 변화에서 나온 과도한 탐욕에 대한 견제 장치인 셈입니다.

머스크는 달랐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중앙포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중앙포토]

우리나라 서학 개미(미국 등 해외증시 투자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회사 중 하나인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단 일 원의 고정급도 받지 않습니다. 대신 2018년에 최대 10년 동안 최대 1억 주의 테슬라 보통주를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부여받았지요. 테슬라 주가가 최고점을 찍었던 2021년 11월 초 주당 종가는 1222달러였습니다. 당시 5900만 주를 행사가격 70달러에 매입할 수 있는 성과 목표를 이미 달성한 머스크가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그가 거둘 예상 행사차익은 약 679억 달러, 한화로 약 80조 원이었습니다.

실제로 머스크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1600만여 주를 팔았습니다. 이렇게 많이 팔다 보니 테슬라 주가는 꽤 오랫동안 내리막을 걸었지요. 미국 개미인 이른바 로빈후드들에게 비난을 꽤 받았어요. 여기까지 들으면 카카오페이 경영진들의 스톡옵션 행사, 매각과 뭐가 다르냐 싶을 겁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스크와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주식 매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머스크의 스톡옵션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행사가 가능한 게 아닙니다. 단계별 시가총액 목표, 그리고 매출액과 조정 현금흐름 (EBITDA) 목표까지 달성해야만 비로소 행사가 가능한 성과연동형 옵션입니다. 장기간, 그리고 단계별로 성과를 내야만 행사를 할 수 있습니다. 경영능력과 상관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운 좋게 주가가 상승하고 그사이 스톡옵션을 행사해 막대한 차익을 얻는 걸 이사회가 미리 막은 겁니다. 그리고 머스크가 지난해 말 매각한 주식은 스톡옵션 행사와도 무관합니다. 그가 오래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테슬라 주식이었으니까요. 머스크는 아직 보상으로 부여받은 스톡옵션을 행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역대급 먹튀

스톡옵션은 미국에선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증가해 2000년대 초반에는 경영자에 제공하는 보상 패키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도가 되었습니다. 스톡옵션은 말 그대로 권리이기 때문에 주가가 행사가격보다 오르면 권리를 행사하고, 반대로 주가가 행사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때문에 경영자들이 과도한 위험을 추구하며 단기적인 이익 극대화에만 집중하는 부작용을 낳은 것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투자은행 경영자들에게 제공된 스톡옵션 보상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앞서 2000년대 초반 엔론 (Enron), 월드콤 (Worldcom), 타이코 인터내셔널 (Tyco International) 등 거대 기업의 회계 부정 사건 역시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스톡옵션 부여가 원인으로 꼽힙니다.

내수 위주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탓에  카카오 같은 공룡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잘 아실 겁니다. 실제로 "골목상권 침범"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같은 알짜 핵심사업을 물적 분할한 후 상장을 통해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부를 키워온 것도요. 이번 스톡옵션 사태로 카카오의 기업윤리는 말 그대로 바닥을 쳤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카카오페이는 지난해 11월 기업 공개 후 9만원의 공모가가 한때 23만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류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8일 5000원의 행사가격으로 스톡옵션을 행사한 후 무려 23만주를 20만 4000원에 매각했습니다. 류 전 대표가 총 71만주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았으니 아직 48만주의 옵션이 남아있군요.

한번 따져봅시다. 기업공개 후 거의 '따상'을 기록한 카카오페이 주가 상승은 사실 경영진 노력과는 별 상관없는 외부적 원인에 기인한 것입니다. 당연히 불어오기로 되어 있던 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줍줍'한 것에 불과하지요. 류 전 대표가 아닌 제가 CEO로 있었더라도 아마 주가는 똑같이 올랐을 것입니다.

류 전 대표를 비롯한 카카오 최고경영진은 기업공개 후 의무로 보유해야 하는 기간 적용을 받지 않는 점을 이용해 불과 상장 한 달 만에 스톡옵션을 행사해 현금화했습니다. 그 바람에 카카오페이 주가는 한 달간 거의 반 토막이 났습니다. 한국 기업사를 통틀어 봐도 역대급 먹튀이자 모럴해저드입니다.

먹튀 부사장의 대표 승진이라니

류영준 전 대표님. 원래대로라면 카카오의 대표로 취임하셨어야 했죠. 논란이 불거지자 그 직은 물론 카카오페이 대표도 사퇴하셨더군요. 그런데 스톡옵션 사태와 관련된 경영진 8명 중 5명은 여전히 카카오페이에 남아있네요. 게다가 그 중 한명인 신원근 부사장이 카카오페이 대표를 맡으시네요. 차익으로 주식을 재매입한다지만 사태 관련자가 대표를 맡는 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경영진 여러분의 먹튀로 반 토막 난 주가로 '맴찟'한 그 수많은 동학 개미들의 분노는 어쩌시려구요? 불공정한 파이 쪼개기로 분개하는 크루(직원)들은 어떻게 달래시려고요? 요즘 MZ세대 직원들이 경영성과의 공정한 분배에 민감한 건 잘 아시지요?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먹튀에 MZ세대 직원들이 많이 포함된 카카오 노조가 동학 개미들에 앞서 격렬하게 반발한 이유일 겁니다. 지난해 초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직원들 간의 사내간담회에서 불거진 사례에서 보듯 카카오 젊은 직원들은 보다 ‘공정한’ 성과 분배를 원하고 있습니다.

신원근 카카오페이 신임 대표. [사진 카카오]

신원근 카카오페이 신임 대표. [사진 카카오]

사태가 커지자 카카오의 컨트롤 타워인 ‘공동체 얼라인먼트 센터’에서 부랴부랴 상장 후 최고 경영진의 스톡옵션을 포함한 주식 의무보유 윤리규정을 만드셨더군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엄청난 스톡옵션을 경영진에게 부여한 카카오페이 이사회에는 신기하게 보상위원회가 없습니다. 명망 있는 회계사·변호사·교수님 등으로 구성된 카카오페이 사외이사님들. 빨리 이사회 산하에 보상위원회부터 만드시기 바랍니다. 운이 큰 요소로 작용하는 주가와 경영진 보상을 연계시키는 스톡옵션 같은 주식 보상 설계에서는 먹튀 방지가 필수입니다. 한때 실리콘밸리 혁신의 엔진으로 불렸던 스톡옵션이 카카오에선 경영진 모럴해저드의 도구이자 상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요.

[카카오 노조의 별별시각]카카오는 위기 대응에 실패했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스톱옵션 먹튀 사태에 대한 서울대 신재용 교수 글과 함께 읽을만한 카카오 노조의 입장문을 소개합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신재용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