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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이 있는 삶" 장애인 손 들어줬다…法 "편의점 경사로 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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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공중이용시설 접근 및 이용에 대한 차별구제청구소송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공중이용시설 접근 및 이용에 대한 차별구제청구소송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장애인을 위한 건물 경사로 설치에 예외를 둔 시행령은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소규모 편의점이나 음식점 등에 대해 장애인 이용을 돕는 시설 설치 의무에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한성수 부장판사)는 10일 장애인 단체 측이 GS리테일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차별 구제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은 장애인들의 접근이 어렵지 않게 건물 입구 경사로 등 편의 시설을 설치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시행령은 음식점이나 마트, 카페의 바닥 면적이 300㎡, 약 90평을 넘지 않으면 설치 대상에서 예외로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단체들은 "서울 기준 공중 이용 시설의 95%가 경사로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재판부는 이 시행령이 무효라고 봤다. 장애인등편의법에서는 장애인들의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는데도, 해당 시행령은 이 취지를 따르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장애인의 행복추구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침해돼 평등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재판 과정에서 GS리테일 측은 경사로를 설치하면 도로를 점유할 위험이 있고, 임차인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GS리테일 편의점 입구 턱을 없애거나 출입 가능한 문을 설치하고, 불가능할 경우 경사로나 호출 벨 등 대안적 조치를 마련하라고 밝혔다. 또 가맹 사업자들에게도 환경 개선을 권고하고, 비용 중 20% 이상을 부담하라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개별 공무원에게 시행령을 개정하는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장애인 단체 측은 2018년 호텔신라,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과 정부를 상대로 차별 구제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대표적인 숙박시설과 카페, 편의점의 사용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취지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 2명, 지팡이 사용 장애인 1명, 유아차를 이용하는 유아 동반 여성 1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2020년 투썸플레이스와 호텔신라는 해당 시행령과 별개로 편의시설을 갖추겠다며 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GS리테일과 정부는 조정에 불복해 소송이 이어져 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공중이용시설 접근 및 이용에 대한 차별구제청구소송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공중이용시설 접근 및 이용에 대한 차별구제청구소송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날 선고가 끝난 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1층이 있는 삶을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고 환영했다. 대리인단으로 참여한 최초록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일상적인 공간이 노 휠체어존, 노 유모차존이 되었다"며 "바퀴가 있다는 이유로 건물 입구 턱이나 계단이 장벽이 된다"고 지적했다.

원고로 참여한 휠체어 장애인 김명학씨도 "장애인들은 배가 고파서 식당에 가도 계단이 있으면 배고픔을 참고 돌아선다"고 호소하며 "우리 사회 장애인이 아무나 마음먹고 건물에 들어갈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복지부가 해당 시행령의 면적 기준을 없애기보다는 90평 기준을 15평으로 바꾸겠다고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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