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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14% 하락" IMF 경고…4억 빚내 10억 집 산 영끌족 비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수도권 아파트값이 2년 4개월만에 약세로 돌아섰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수도권 아파트값이 2년 4개월만에 약세로 돌아섰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40대 김 모 씨는 지난해 1월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를 10억9000만원에 사면서 4억5000만원가량을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로 충당했다. 말 그대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대출로 투자)'지만, 맞벌이 부부의 소득을 고려할 때 감당이 가능하단 계산이 섰다. 그런 김씨가 최근 걱정이 늘었다. 서울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선 데다 1년 만에 주담대 금리가 0.7%포인트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 늘어난 원리금은 월 13만원 정도지만 금리가 더 오를 것이란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 요즘 김 씨와 같은 '영끌족(族)'의 걱정이 늘고 있다.

급감한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급감한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 이후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0.50→1.25%)을 단행한 이후 부동산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집값 고점' 인식과 강력한 대출 규제 등이 맞물리며 역대급 거래절벽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주택 거래는 2008년 이후 가장 적었다. 매물이 쌓이고 간간이 급매물만 거래되면서 집값도 하락세다. 지난주 수도권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은 -0.02%를 기록, 2019년 7월 이후 2년 4개월여 만에 하락 전환했다.

집값 추세적 하락에...이자 부담 늘어난 '영끌족' 

정부는 최근 집값이 '추세적 하락'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말 이후 집값 상승 동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주력 매수세'였던 20~40대 영끌족의 힘이 빠졌다. 무섭게 오르는 금리와 모든 부채를 따지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 등으로 자금 마련이 어려워졌고 이자 부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11월 신규 가계대출의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19.2%에 그쳤다. 금리가 오를수록 이자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영끌족의 비명'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최근 들어 전 세계 집값이 사실상 꼭대기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세계 각국은 경기 위축 우려 속에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풍부해진 유동성에, 재택근무 확산 등이 더해지면서 주거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택 공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세계 각국의 집값은 급등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3분기 회원국의 주택 가격이 평균 13.1%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영국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 프랭크가 공개한 '글로벌 주택 가격 지수(Global House Price Index)'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조사 대상 주요 56개국 중 54개국에서 집값이 올랐고, 평균 상승률(명목 기준)은 9.4%로 나타났다. 다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상승률은 한국이 23.9%로 가장 높았다. 스웨덴(17.8%)과 뉴질랜드(17.0%), 터키(15.9%) 등이 뒤를 이었고, 미국도 집값이 1년 새 13.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미국의 기존 주택 중위가격은 34만6900달러(약 4억1600만원)로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집값 급등, 인플레이션 압력에 금리 인상 카드 

지난해 8월 이후 수도권 아파트값 변동률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지난해 8월 이후 수도권 아파트값 변동률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세계 경제 회복세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지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어 주택 시장이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6월 블룸버그 통신이 평가한 집값 거품 순위에서 1위에 오른 뉴질랜드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0.25%씩 기준금리를 올렸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집값 상승세, 역대 최저 수준의 실업률 등을 고려해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상 일정을 앞당길 가능성이 커지고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미국과 캐나다 등의 주택시장은 올 초 거래가 줄고, 가격 상승세가 다소 둔화했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기존주택 매매 건수는 1년 전보다 7.1% 감소했다. 미국 국책 모기지 보증기관 패니메이가 지난달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주택을 사기 좋은 시기'라고 답한 비율이 역대 최저인 25%로 집계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집값 하방 위험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위험이 현실화할 경우 선진국에서 14%, 신흥국에서 22% 집값이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요국 3분기 주택가격 상승률(물가반영)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나이트프랭크]

주요국 3분기 주택가격 상승률(물가반영)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나이트프랭크]

김성우 주택도시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3월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어 한국의 통화정책도 동조화 현상을 보일 것"이라며 "향후 한은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과 정부의 신규 주택공급, 금융당국의 가계대출관리정책 등으로 주택시장 안정세가 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DI가 최근 부동산시장 전문가 812명을 대상으로 한 올해 집값 전망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51.3%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국내의 경우 서울 주택 공급난 여전해 3월 대통령선거 이후 정책 변화에 따라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최근 몇 년간 주택 시장은 전약후강의 흐름으로 5월 이후 서서히 반전하는 패턴을 보였다"며 "3월 대선, 5월 새 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부동산 시장의 방향이 재설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 영향 크지 않다는 주장도 

세계 각국의 집값 역시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작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가브리엘 초도로-라이히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주택 가격이 거품처럼 보이는 것은 근본적인 경제 전환의 산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경제전문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과거와 달리 소득이 받쳐주는 사람만 집을 살 수 있어 금리 인상에도 덜 민감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담보대출 상환액은 가처분 소득의 3.7%를 차지해 사상 최저 수준이며, 영국에선 신규 모기지 신청자는 대부분 5년 고정금리로 영란은행 금리 인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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