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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단일화가 아니라 공동정부가 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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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실장

이정민 논설실장

사람들은 벌써 대선 이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여야 후보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엄청난 혼란과 후폭풍이 불어닥칠 걸 직감하기 때문일 테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는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라고 심경을 표현했다. 국민 상당수가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172석의 거대 의석을 등에 업은 이재명 후보(민주당)가 당선된다면 어떻게 될까. 입법·사법·지방권력 획득에 이어 정권 연장에 도취한 거여 세력의 독선과 폭주가 이어질 것이다. 반대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될 경우 당장 조각(組閣)과 국회 인사청문회, 정책 실행 과정에서 민주당과 사사건건 힘 싸움을 벌이는 소모전으로 국력을 허비할 공산이 크다.

두 동강 난 진영의 지지자들은 어떤가. 흔쾌히 상대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고 등 두드리며 국정 협력을 약속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패배에서 오는 좌절과 분루가 더해져 ‘적폐세력 청산’ 아니면 ‘내로남불 타도’를 걸고 광장으로 몰려나올지 모를 일이다. 팽팽히 당겨진 현(絃)처럼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가 제2, 제3의 광우병 사태로 번질 수 있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하고 불행한 일이다.

3·9대선 후유증 우려 목소리 많아
대통령의 실패, 국민실패 되지 않게
후보 단일화, 득표 전략 뛰어넘어
협치·정치개혁 의제로 발전시켜야

대통령 당선 첫날부터 ‘광장’의 여론과 ‘촛불’의 심기에 노심초사하는 대통령제의 숙명이 말기암 환자를 연상시킨다. 종양의 뿌리는 승자독식의 정치 시스템이다. 결선투표제 없는 대선, 소선거구제의 총선·지방선거가 씨줄 날줄로 엮여 갈등과 혐오를 확대 재생산해왔다. 불과 1표 차로 이겨도 승자가 100%의 권력을 휘두르는 불비례·비대칭 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이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선출된 7명 대통령의 득표율은 노태우 36.6%, 김영삼 42%, 김대중 40.3%, 노무현 48.9%, 이명박 48.7%, 박근혜 51.6%, 문재인 41.1%다. 절반에 훨씬 못미치거나 턱걸이 수준의 과반 득표율로 집권해선 온 나라를 제 것인 양 권력을 사유화하고 권력기관을 사병화하는 제왕적 권한을 행사한다. 41% 득표율로 당선된 문재인 정부는 입법·사법부까지 3권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며 진영 편가르기로 민주공화정의 정신과 질서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다.

의회 권력의 표심 불비례 정도도 선을 넘었다. 사표율(死票率)이 17대 총선 18%, 18대 24%, 19대 14.7%, 20대 26.3%에 이어 21대 총선은 역대 최고치인 28.8%다. 10명 중 3명은 표를 도둑맞은 셈이다. 치명적이고 심각한 왜곡이다.

이번 대선의 승패 못지않게 대선 후를 걱정하게 되는 건 ‘새 정권’이 5년 뒤 맞게 될 운명도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정파에만 의존한 독단적 권력 운용의 말로(末路), 구속·탄핵·자살과 같은 비극적 추락을 숱하게 봐온 터다. 5년 주기로 되풀이되는 이 어둠의 질곡에서 이젠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대한민국호가 더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이 열어가야 할 희망찬 미래는 영영 닫혀버릴 것이다. 잇단 대통령들의 실패가 더는 국민의 실패로 이어지는 걸 막아야 한다.

대선이 4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단일화 변수가 막판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가 안철수(국민의당) 후보를 상대로 단일화 구애경쟁을 벌이면서 안 후보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윤 후보는 “서로 신뢰하고 정권교체의 방향이 맞으면 단 10분 안에도 끝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담판 방식의 단일화를 언급했지만 안 후보는 “제가 정권교체의 주역이 될 것”이라며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여야 사정에 두루 밝은 정치권 인사는 “이 후보쪽은 윤+안 단일화 견제에 방점이, 윤 후보측은 대선 승리를 굳히는 막판 변수로 단일화 카드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다”고 봤다. ‘정치는 생물’이란 말이 있듯이 실제 협상이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득표전략으로 쓰고 버리는 단일화 카드로는 별 감동을 주지 못할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자리와 지분을 가르는 정치공학 차원을 뛰어넘어 단일화 협상이 정치개혁의 의제로 확장될 때 정치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은 양 진영 내부의 반발을 딛고 이뤄진 결단이었지만 결국 2년여만에 파국을 맞았다. DJ는 당시 지지율 3~5%의 JP와 단일화 조건으로 ▶내각제 개헌 ▶실세총리와 내각 지분 절반 보장등 통 큰 약속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연정 모델로 정착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집권 후 총선·지방선거에서 정치인들의 정략과 계산이 충돌하면서 길을 잃었다. “정치 신인이란 장점을 가진 윤석열 후보가 단일화란 단어에 휩싸이는 순간 여의도 정치에 다시 휘둘리는 것”(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이란 말은 소리(小利)에 집착해 대의(大義)를 잃는 경솔한 발언이다. 후보 단일화를 선거전략으로만 보는 공학적 인식을 뛰어넘어야 한다. 단일화 협상을 공동 정부 구성을 통한 협치 모델의 안착으로 발전시키려는 진지한 고민이 아쉽다. 이러니 ‘정치는 정치인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 위험한 일’이란 소릴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