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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재산 늘면 "저축덕"이란 그들···與미스터리 풀어준 '김혜경 법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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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미향 의원이 2020년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해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미향 의원이 2020년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해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에 돈 찍는 기계가 있느냐. "
지난 2020년. 여러 개의 개인 통장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에 갈 기부금을 받아 물의를 빚은 윤미향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현 무소속)가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의 미국 유학비용과 8억 원대의 재산 증식 과정을 설명한다며 "저축하는 오랜 습관" 운운하자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어이없다며 내뱉은 말이다. 윤 의원의 "저축" 발언에 보통 사람들은 다 같이 분노했다. 누가 저축 안 해봤나. 대체 예금이자가 얼마라고.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다들 충분히 납득된다는 투였다.

드러난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제사음식에 추석 선물 챙기기 #민주당 지사·의원도 비슷한 의혹

국민과 권력 사이의 인식 격차가 너무나 큰 셈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 당시 몇몇 주요 인사의 재산 현황을 살펴봤다가 정말 놀란 기억이 있다.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부인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이 불거진 후 당 선대위 균형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두관 의원의 재산 내역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흙수저'라는 브랜드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다든지, 지자체장 출신이라는 커리어 면에서 두 사람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돈 안 쓰기 신공'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동네 이장과 남해군수를 거쳐 노무현 정권 출범과 함께 행정자치부 장관에 전격 발탁된 김 의원이 2003년 신고한 재산은 마이너스 977만원이었다. 짧은 장관직을 마치고 2003년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2010년 경남도지사에 당선될 때까지 17대 국회의원 선거(2004), 열린우리당 의장 선거(2005), 지방선거(2006)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쓴 돈은 많아도 번 돈은 없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경남도지사 첫해인 2010년 신고 재산(5576만원)은 다음 해 1억1919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아들 영국 유학 첫해인 2012년엔 '생활비와 자녀학자금'을 사유로 바로 전해보다 4000여만 원 적게 신고했다. 한 가족 생활비와 그 비싸다는 영국 유학비를 쓰고도 딱 4000만원만 줄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신기한 건 그 이후엔 돈 쓴 흔적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들 영국 유학(2011~2017)에다 딸 중국 유학(~2014), 그리고 본인의 독일 연수(2013)까지 세 식구가 비슷한 시기에 외국 생활을 했는데도 2016년 20대 국회의원 당선 때 재산(1억5900만원)을 보면 거의 똑같으니 하는 말이다.
사실 김 의원뿐만이 아니었다. 시민단체 활동을 발판삼아 국회에 입성한 또 다른 흙수저 친문 김태년 전 원내대표의 2012년 신고재산은 1억6700만원이었다. 부부 외에 세 딸이 있었지만 생활비는 물론 교육비 지출 흔적은 찾기 어려웠고, 오히려 3억5000만원(2014)에서 5억9000만원(2017), 다시 8억2000만원(2020)으로 의원 재직 8년간 대략 매년 1억원씩 늘었다. 해명은 역시 "저축이 좀 늘어난 것"이었다.

국민의힘 유상범 법률지원단장(오른쪽)이두아 부단장이 지난 3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유상범 법률지원단장(오른쪽)이두아 부단장이 지난 3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당시 이 숫자를 봤을 땐 해석 불가라 난감했다. 지사든 국회의원이든 여당 정치인과 그 가족들이 모두 이슬만 먹고 살지는 않을 텐데 돈 쓴 흔적 없이 어떻게 모두 '윤미향식 저축'으로 재산을 불렸을까,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이번에 이 후보 부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보고 그때 풀리지 않은 난제가 비로소 풀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앞서 지난해 초 민주당 의원인 황희 문체부 장관 취임 때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연 수천만 원에 달하는 학비 비싼 외국인학교에 딸을 보내면서 정작 3인 가족 생활비로는 연 720만원, 그러니까 고작 월 60만원만 썼다고 신고한 게 드러나자 황 장관은 "명절 때 고기 선물을 많이 받아 식비가 별로 들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사실이어도 문제, 거짓이어도 문제인 답변 아닌가. 사실이라면 대체 얼마나 많은 고기를 받고 얼마나 큰 냉동고가 있기에 1년 내내 식비가 들지 않는다는 것인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거짓이라면 적지 않은 생활비의 출처가 문제가 된다.
이제 와 보니 이 정부 유력 정치인들 상당수가 내 돈 안 쓰고 남의 돈, 혹은 세금을 내 쌈짓돈 쓰듯 하면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사실 2018년 3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전 수행비서)씨의 책 『김지은입니다』에 이미 잘 드러나 있다. 김혜경씨가 법인카드로 제사음식 준비하고 친척 추석 선물을 보냈다면, 책 속 안 전 지사 가족은 그 비용을 수행비서에 떠넘겼다는 게 달랐을 뿐이다. 대리처방 받아와라, 빵 사와라 같은 사적인 가족 심부름에 공무원을 동원하는 민주당 유력 인사들의 제왕적 갑질만큼 공사 구분 못하는 돈 쓰기 습관은 문제다. 국민 눈에는 뻔히 보이는데 자기들은 그게 왜 잘못된 것지 모르는 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