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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공의 비애, 이재명의 플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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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돈 자랑을 한다는 의미의 ‘플렉스’는 젊은층에게 낯선 용어가 아니다. 돈뭉치 사진을 즐겨 찍는 래퍼는 힙합씬(힙합계)을 평정하기도 했다. 사실 한국은 진작에 플렉스 사회였다. 성미 급하기로 유명한 나라지만 명품 매장 대기줄은 그 어느 나라보다 길다. 게다가 좌파도 ‘생계형 좌파’보다 ‘강남 좌파’를 우러러본다. 플렉스가 대세라지만 예외인 곳이 있다. 기사 딸린 세단을 타고 대리석 로비를 자주 걷는데 신발은 왜 자꾸 뜯어지는지 모를 정치권 말이다. 여의도에선 플렉스는커녕 서민처럼 보이는 게 능력이다. 게다가 ‘가난한 어린 시절’이 정치적 자산이 되곤 한다. 그야말로 ‘가난이 스펙’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978년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14살 소년공으로 일할 때 찍은 사진. [중앙포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978년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14살 소년공으로 일할 때 찍은 사진. [중앙포토]

3·9 대선에서 이러한 자산을 가진 사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이재명은 기록도 하나 쌓았다. 건국 초기를 제외하고 대통령에 근접한 사람 중에 중·고 정규 과정을 모두 건너뛴 유일한 사람이다. 이재명은 다른 후보들과도 대비된다. 경쟁자들은 야구 명문고를 나왔거나 야구를 좋아해 학창 시절 야구 기자를 했다. 그들이 교복을 입고 또래와 공부할 때 이재명은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했다. 소년공은 그곳에서 프레스에 눌리는 사고를 당해 나중에 팔이 비틀어지는 장애를 얻었다. 16살엔 “난 교복 하나 입어보지 못했다”는 일기를 썼다. 중학교 시절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친구들을 보고 중국집에 데려가 짜장면을 사준 게 미담으로 소개된 후보와는 가정환경이 천양지차다.

이런 ‘정치적 자산’을 가진 이재명은 정치권에서 플렉스할 만하다. 실제 그는 “흙수저보다 낮은 무수저”라며 빈한한 어린 시절을 틈날 때마다 언급한다. “출신이 비천함은 내 잘못이 아니다”라며 욕설 논란에도 당당하니 이것이야말로 플렉스 아닌가. 이재명식 플렉스 자체를 비판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계층 상승의 기회가 막힌 사회야말로 끔찍하다.

그러나 뭐든 과유불급이다. 22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재명은 변호사 자격증과 재산 31억원을 가진 유력 정치인이다. 그가 “변방의 아웃사이더”면 진짜 ‘아싸’는 아싸 자리마저 도둑맞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기득권 타파”를 주장하는 그는 배우자 ‘과잉 의전’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셀프 타파’ 의지라면 모를까, 이 정도면 욕설 랩이 주특기인 래퍼도 ‘참회한다’는 가사를 써야 할 판이다. 누구도 이재명에게 소년공 시절로 돌아가라 하지 않는다. 대신, 그와 같은 소년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라 한다. 40여년 전 ‘소년공의 비애’가 ‘이재명의 플렉스’로만 소비되기엔 우리 사회에 아직 그늘진 곳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