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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재택 방치’와 각자도생으로 끝난 K방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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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신규 확진자가 5만명에 육박한 9일 오후 대전의 한 보건소신속항원검사소를 찾은 시민들이 자가진단 검사를 하고 있다. 대전=김성태 기자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신규 확진자가 5만명에 육박한 9일 오후 대전의 한 보건소신속항원검사소를 찾은 시민들이 자가진단 검사를 하고 있다. 대전=김성태 기자

예고 없는 ‘셀프 방역’ 발표로 현장 혼선

정부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 생겨

오미크론 변이의 대유행으로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가 5만 명(8일 기준 4만9567명)에 육박했다. 단 하루 사이에 약 1만3000명의 확진자가 폭증했다. 지난 3일 72만 건까지 치솟았던 유전자증폭(PCR) 검사 건수가 7일 27만 건으로 3분의 1로 줄어들었는데도 확진자 수가 늘어난 것이라서 상황이 심각하다. 방역 당국의 전망대로 2월 말께 국내 확진자 13만~17만 명이 현실이 되면 어떤 상황이 올지 걱정스럽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국민이 많다. 지난 7일 ‘자율 방역’ ‘셀프 치료’가 골자인 방역·의료체계 개편은 불안감에 기름을 부었다. 방역체계의 대전환인데도 사전 예고 없이 발표한 것부터가 문제다. 이는 곧바로 현장의 혼선으로 이어졌다.

대책의 핵심은 현재 16만 명대의 재택치료 대상자를 60세 이상과 무증상·경증 확진자로 나눠 차등 관리하는 것이다. 무증상·경증 확진자는 역학조사도, 치료도 셀프로 해야 한다. 자가검사키트·산소포화도 측정기 등 5종 물품도 지급이 중단된다. 자가검사키트를 마트·약국 등에서 직접 사야 하는데 품귀현상이 일어나 가격이 크게 올랐다. 정부는 자가검사키트 1000만 명분을 이번 주말까지 푼다는 말만 되풀이하지 말고 정교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증상이 악화하면 동네 병·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재택관리지원 상담센터에서 비(非)대면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상담센터는 아직 비대면 진료 준비가 안 돼 차질이 불가피하다. 상담센터를 운영하려면 의료인력 선발, 장비 설치, 상담 매뉴얼 제작 등이 필요한데 정부가 사전 논의나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센터를 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졸속 행정에 국민만 골탕을 먹는다. 실제로 확진자가 병·의원, 상담센터의 위치·연락처를 안내받으려고 보건소에 하루 종일 30통 넘는 전화를 걸었으나 불통이었다는 사례가 보고됐다. 동네 병·의원 진찰료가 5000원인데 처지가 급하다 보니 무려 7만원을 치른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말만 ‘재택 치료’지 ‘재택 방치’ 아닌가.

사실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면 감염자가 폭증할 것이라는 경고는 지난해 12월 초 국내 첫 상륙 때부터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정부는 뭘 했나. 특히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영업 제한과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방역패스 도입 등 규제 중심의 방역 정책을 펴 온 정부가 PCR검사를 60세 이상으로 한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을 두고선 “전체 확진자 수를 줄여 정부가 코로나를 잘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정부가 개개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각자도생’식의 방역정책은 정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