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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계속 오른다"…채권형 펀드서 반년새 4조2000억 이탈

중앙일보

입력

채권값은 금리와 상극이다. 서로 정반대로 움직여서다. 요즘처럼 시중 금리가 뜀박질하면 채권값은 떨어진다(채권 금리 상승). 채권 시장에 냉기가 도는 이유다. 치솟는 시중 금리는 채권 시장에 그치지 않고 펀드 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채권형 펀드의 수익률을 끌어내리고, 자금 이탈을 가속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제롬 파월 의장. [AP=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제롬 파월 의장. [AP=연합뉴스]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국내 채권형 펀드에서 최근 한 달간 6479억원이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해외 채권형 펀드 순유출 규모(1960억원)를 합치면 채권형 펀드에서만 8439억원이 이탈한 셈이다.

채권형 펀드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6조3000억원의 자금이 몰렸지만, 하반기 들어 자금 이탈이 시작됐다. 지난 6개월간 순유출 금액만 4조1865억원에 달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 7조원 가까이 들어온 것과 정반대다. 수익률 부진이 투자자 이탈을 불렀다. 최근 6개월 평균 수익률은 국내 채권형 펀드가 -0.8%, 해외 채권형 펀드가 -2.7%로 손실권에 머물고 있다.

채권 펀드를 찬밥 신세로 전락시킨 주범은 시중금리 상승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8일 연 2.303%까지 치솟았다. 2018년 5월 15일(연 2.312%) 이후 3년 9개 월만의 최고치였다. 9일엔 연 2.279%로 소폭 내렸지만, 상승 기조는 여전하다.

미국도 비슷하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2019년 11월 이후 최고치인 장중 연 1.97%까지 뛰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오르면 채권값이 하락하고,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 수익률도 떨어진다"며 "특히 환헤지(환 위험 회피)가 돼 있는 해외 채권형 펀드는 채권값 하락에 원화가치 약세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치솟는 국고채 3년물 금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치솟는 국고채 3년물 금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금리 상승은 전 세계적인 통화 긴축 영향이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다음 달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종료와 함께 금리 인상에 나설 태세다. 올해 적어도 4차례, 많게는 7차례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잇따른다.

그동안 금리 인상에 신중한 입장이던 유럽중앙은행(ECB)도 하반기 금리 인상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기준금리를 세 차례(0.5%→1.25%) 올린 한국은행도 올해 한두 차례 추가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선 추가경정예산(추경) 이슈도 금리 상승을 자극했다. 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14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제출한 가운데, 여야는 각각 35조원, 50조원으로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예산 마련은 국채 발행에 기댈 수밖에 없다. 채권 공급이 늘면 채권값 하락(채권 금리 상승)이 불가피하다.

뭉칫돈 빠져나가는 채권형 펀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뭉칫돈 빠져나가는 채권형 펀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 채권 펀드의 자금 유출 흐름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주요국의 긴축 정책이 이제 막 첫발을 떼는 터라 분위기 반전도 쉽지 않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Fed와 ECB 등 글로벌 통화정책의 환수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지는 분위기"라며 "적어도 물가 우려가 잦아들기 전까지 채권시장 약세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긴축을 자극하는 물가 불안도 여전하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이 장기화하면 에너지 가격이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크고, 추가 추경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대해)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채권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를 고려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채권값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이다. 실제 KB자산운용의 'KB스타 국채선물10년인버스' ETF는 올해 6.6%의 수익을 냈다.

다만 채권 인버스 ETF는 거래량이 적어 유동성이 좋지 않다. 오광영 연구원은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계속 올릴 것을 예고하는 만큼 채권형 펀드 투자는 시기상 좋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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