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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찍힌 '오심 비디오' 있는데…CAS, 韓실격 번복 어려운 이유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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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4] 분노의 밤, 이게 왜 실격인가요?

 7일 저녁 열린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남자 1000m 준결승. 황대헌, 이준서 선수가 각각 자신의 조에서 1위와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페널티 반칙 판정을 받고 실격으로 탈락했습니다. 황대헌 선수는 뒤늦게 추월해 접촉을 유발했고, 이준서 선수가 레인 변경을 잘못해 접촉을 유발했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 선수들이 정당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황 선수가 다른 선수와 부딪힌 게 없고, 이준서 선수 역시 레인을 바꾸는 데에 반칙을 범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선수들의 몸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당기거나 밀어제친 중국 선수들에게 제재가 필요했는데도, 심판이 편파적으로 판정했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7일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 준결승에서 석연치 않은 실격 판정을 받은 황대헌(왼쪽), 이준서. 뉴스1

7일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 준결승에서 석연치 않은 실격 판정을 받은 황대헌(왼쪽), 이준서. 뉴스1

선수단은 결승 경기가 열리기 전에 심판에 이의를 제기하고, 국제빙상경기연맹(ISU)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항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ISU는 8일 오전 우리 대표팀의 항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남은 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입니다. 선수단은 CAS 제소를 결정하고 법리 검토에 나섰습니다. CAS는 올림픽 기간 특별중재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접수 후 24시간 안에 결론을 내리는 게 원칙이지만, 심리 기간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

CAS에서는 우리 선수들의 손을 들어줄까요? 어떤 원칙을 갖고 심리하고 있을까요?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 연합뉴스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 연합뉴스


관련 조항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CAS는 심판 판정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습니다.

CAS가 관련 분쟁에서 따르는 'Field Of Play' 원칙은 현장 심판의 권한을 넓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판정이 아주 악의적이거나 편견, 부정부패 등이 있는 경우에 한해 CAS가 개입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요건이 아주 높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정황 뿐 아니라 직접적인 증거도 필요합니다.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 연합뉴스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 연합뉴스

법조계 전망은

과거 2016년 리우올림픽 출전이 가로막혔던 박태환 선수와 CAS에 가서 중재를 이끌어낸 임성우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심판 판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CAS 위원들에게 판정의 악의나 심판 매수 비리 등을 포착해서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판정의 악의를 주장할 때도, 단순 고의나 과실을 넘어서는 정도의 입증이 필요하다는 게 법조계 설명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현장 청문 절차가 대면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점도 제약으로 꼽힙니다.

8일 중국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쇼트트랙 편파판정에 대한 선수단 긴급 기자회견. 사진 김경록 기자

8일 중국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쇼트트랙 편파판정에 대한 선수단 긴급 기자회견. 사진 김경록 기자

과거 판례는

법조계 관측대로 CAS는 심판 판정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아주 오랫동안 천명해왔습니다. 과거 CAS의 결정도 뒤져봤습니다.

▶'오심' 비디오 들고 가도…"현장에 있던 심판 결정이 우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한 프랑스 복싱 선수 크리스토퍼 맨디의 사례가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맨디는 상대의 벨트 아랫부분을 타격하는 반칙을 했다는 이유로 실격당했습니다. 맨디는 비디오 판독 결과를 들고 CAS로 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CAS는 기술적인 규칙을 적용하는 건 심판이고, 당시 링에 있던 심판보다 우위에 서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결국 심판의 실수도 경기의 일부이고, 악의적인 목적 등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선수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판 판정에 대한 불복이 지나치게 많아져 경기에 지장을 줄 가능성을 우려한 취지도 있습니다.

대통령 축하 전화 받고 있는데 '실격'…"경기 규칙 적용하는 건 심판"
경보 20km 종목 세계 기록을 가진 멕시코 선수 베르나르도 세구라 역시 CAS에 제소한 경험이 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지 15분이 지난 시점, 멕시코 대통령의 축하 전화를 받고 있던 세구라는 실격을 통보받습니다. 경보에서는 발이 계속 지면과의 접촉을 유지해야 하는데, 3번 정도 두 발이 모두 떨어져 있었다는 이유입니다.

경기가 끝난 즉시 실격 통보가 이뤄져야 하는데도 15분이 지난 점 등이 쟁점이 됐지만, 역시 CAS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CAS는 결정문에서 "불운한 일로 세구라와 멕시코 팬들이 당혹스럽게 됐다"고 언급하면서도, 경기 규칙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심판의 권한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심판의 악의적인 의도 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2004년 양태영 선수 편파판정에 대한 선수단 기자회견.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04년 양태영 선수 편파판정에 대한 선수단 기자회견.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태영 '0.1점 오심' 이후 18년만 제소…"향후 판정 대비해야"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기계체조 양태영 선수가 억울하게 0.1점을 잃는 일이 있었지만, CAS 제소로 메달 색깔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이처럼 CAS의 판단 기준이 엄격하다 보니, 우리 선수단은 제소까지 가는 걸 꺼려왔습니다. 2012 런던올림픽 펜싱 에페 4강전에서 신아람 선수가 '1초 오심'의 희생양이 됐을 때도,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도둑맞았을 때도 제소를 하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양태영 선수 이후 18년 만에 우리 선수단이 올림픽 도중 CAS의 문을 두드린 것은 남아 있는 경기를 고려한 결정으로 보입니다. 8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연 윤홍근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장도 "CAS에서 판정 자체가 바뀌지 않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일어날 국제 경기에서의 부당한 결과는 고쳐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법을 알려드림(그법알)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이야기로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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