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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건물주가 재건축한다며 권리금 못 주겠대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51)

2018년 개정된 상가임대차법이 적용되는 세입자는 한번 임대차계약을 하면 10년간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물주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10년간 임차인의 임대차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한번 세입자와 임대차 관계로 엮이면 좋든 싫든 최대 10년을 봐야 하고, 월세나 보증금도 한 번에 5%밖에 못 올리는 상황이니 애초 세입자를 받는 것에서부터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건물주가 구체적인 철거나 재건축 계획이 마련되어 있다면 합법적으로 세입자와의 계약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진 pixabay]

건물주가 구체적인 철거나 재건축 계획이 마련되어 있다면 합법적으로 세입자와의 계약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진 pixabay]

물론 10년이 안 돼도 건물주가 합법적으로 세입자와의 계약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상가임대차법상 임대인이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로는 임차인이 3기 이상 월세를 안 내거나, 제3자에게 다시 임대를 놓거나 파손하는 경우 등 주로 세입자가 잘못했을 때입니다. 즉, 세입자의 잘못으로 건물주와 세입자의 신뢰가 깨졌다면 10년이 안 돼도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세입자도 법상 주어진 10년의 임대차기간을 충분히 보장받으려면 3번 이상 월세를 미납하는 등 불찰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외에 세입자 잘못이 없어도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건물주가 상가건물을 철거 또는 재건축할 때입니다. 상가임대차법상 임대인이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에 임차인에게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공사시기 및 소요기간 등을 포함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그 계획에 따르는 경우(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1항 제7호 가목)임차 기간을 10년을 채우지 않아도 건물주는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도 밀리지 않고 잘 내고 있는데 재건축 때문에 10년의 기간을 보장받지 못해 다소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반대로 임차인의 갱신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재건축을 하지 못해 재산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는 측면을 고려해 법은 예외적으로 건물주에게 재건축할 때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도록 허용한 겁니다.

건물주가 재건축할 계획이 있다고 무조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상 건물주가 갱신을 거절할 시점에는 구체적인 재건축 계획이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런 사유를 임차인에게 고지하고 그대로 따르는 경우에 한해 인정됩니다. 실제 실효성은 다소 의문입니다. 설사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고지한 재건축 계획을 그대로 진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임대차를 갱신하지 못한 손해를 배상받으려면 이미 상가 건물을 떠난 임차인이 건물주를 상대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소송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사 세입자가 큰맘 먹고 소송을 한다 해도 건물주가 자신에게 고지한 계획을 준수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할 것인데, 이 또한 만만치 않은 문제겠지요.

더 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재건축하면 새로운 임차인을 받지 못할 테니 기존의 세입자가 투입한 권리금을 회수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습니다. 그런데 2018년 상가임대차법이 개정되면서 임대인은 법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기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기존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손해배상으로 물어주어야 합니다(법 제10조의4). 그러나 법상 임대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의무를 면할 정당한 사유에 재건축은 없습니다. 따라서 건물주가 구체적인 재건축 계획을 마련한 후 임대차 종료 시에 기존 세입자에게 고지하여 임대차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고 해도,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을 유치해 임대인에게 그와의 임대차 계약 체결을 요구하며 권리금 회수를 주장하면 임대인은 신규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을 해야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상가임대차법상 인정된 정당한 사유에는 (임대인이) ‘상가건물을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제2항 제3호)가 포함됩니다. 재건축되는 건물은 당연히 영리 목적으로 이용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재건축에 든 기간을, 임대인이 신규 임대차 계약체결을 거절할 수 있는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 경우 건물주는 세입자가 데리고 온 신규 임차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필요는 없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위 1년 6개월의 조항은 임대차 목적물이 존치됨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철거 후 재건축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 관한 규정은 아니기 때문에 재건축으로 인한 기간은 1년 6개월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판례가 많았습니다. 그 경우 건물주는 기존 임차인에게 적정한 권리금 또는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분쟁이 정리될 겁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건물주가 상가건물의 임박한 재건축 계획을 이유를 고지해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 체결이 결렬된 상태에서 공실 상태가 유지된 후 철거되어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경우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의 임대인이 신규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할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2. 1. 14. 선고 2021다272346 판결).

위 사례에서 건물주는 임대차 기간이 지난 후에 건물을 제3자에게 매도했는데, 대법원은 ‘상가 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상태가 새로운 소유자의 소유 기간에도 유지될 것을 전제로 처분하고, 실제 새로운 소유자가 그 기간에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임대인과 새로운 소유자의 비영리 사용 기간을 합쳐서 1년 6개월 이상이 되는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가 인정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경우 건물주가 세입자의 권리금을 가로챌 의도가 없다고 보고, 건물주의 의무를 면해 준 겁니다.

반면 대법원은 얼마 전 건물을 재건축 또는 대수선할 계획이 있다면서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 체결을 거절하고 1년 6개월 동안 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경우 건물주는 신규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배상해줘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85257 판결). 이 사건에서는 건물이 실제로 재건축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임대인이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에 대한 권리금 지급을 면하려면 임대차계약 체결 거절 당시 고지된 재건축계획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는지, 실제로 재건축이 이루어졌는지 등이 주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앞으로 임대인은 구체적인 재건축계획이 있고 이를 그대로 실행함으로써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임차인의 임대차 갱신 요구도 거절하고 권리금도 물어줄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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