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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킹] 장내세균은 다양하게, 몸 염증반응은 줄여주는 놀라운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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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라이블리의 부엌에서 찾은 건강 5. 발효음식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그만큼 식습관은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진 셔터스톡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그만큼 식습관은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진 셔터스톡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프랑스의 법관이자 미식가였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이 책 『미식 예찬』에 쓴 말이다. 무려 1826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에도 자주 언급되는 유명한 말이기도 하다.

미식과 좋은 식문화를 강조하던 사바랭의 이 말은, 시간이 흐르고 몇몇 사람을 거치며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의미로 바뀌어 전달됐다고 한다. 음식이 건강을 지배한다는 믿음으로 바뀐 셈이다. 비록 사바랭의 의도와 달랐다고는 해도,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몸의 에너지원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해 실제로 우리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이때, 한 가지 더 변하는 게 있다. 바로 ‘장내세균총’이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다양한 미생물 군집(마이크로바이옴) 중에서도 소화기관에 존재하는 미생물 군집을 일컫는다. 장내세균총은 최근 쏟아지는 수많은 연구의 주제인 동시에, 그 많은 건강기능식품 중에 ‘유산균’이 가장 핫한 카테고리가 된 원인이기도 하다.

‘장내세균총’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식단의 변화가 장내세균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것만 해도 매우 다양하다. 그중 2주간의 식단 변화만으로도 유의미한 장내세균총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론 식단이 유지되지 않으면 기존의 장내세균총으로 돌아간다는 보고도 함께 있지만 말이다. 즉, 내가 먹는 음식에 따라 ‘나의 장내세균’도 함께 변한다는 뜻이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장내세균총이 몸 전체의 염증반응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질병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내세균총을 좋게 만든다고 이미 알려진 것은 식이섬유다. 그런데 식이섬유보다 더 효과적으로 장내세균을 다양화시키고, 유의미하게 체내 염증반응을 줄이는 것으로 확인된 음식이 있다. 저명한 생물학 저널 『셀 Cell』에 2021년 실린 적 있는 음식이다. 나는 이 논문을 읽은 후 내 식사에 당장 이것을 추가했다. 바로 ‘발효음식’이다.

이 논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0주간 발효음식을 풍부하게 먹은 실험군의 경우 장내세균총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혈액과 대변에서 채취한 여러 염증 지표들이 감소했다. 이는 식이섬유를 풍부하게 먹은 다른 실험군에 비해 더 유의미한 결과였다. 특정 음식의 양을 늘림으로써 우리 몸의 염증반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장내세균총의 다양성 감소가 당뇨와 고혈압, 심혈관질환을 비롯한 만성 질환의 증가와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 역시 다양한 논문에 의해 밝혀진 적 있다. 발효음식의 풍부한 섭취가 단기적으로는 장내세균총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몸 전체의 염증반응을 줄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만성 대사성‧염증성 질환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발효 음식인 한국의 김치.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대표적인 발효 음식인 한국의 김치.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여담이지만, 이 논문을 읽는 내내 은근한 자부심이 들었다. 논문에서 아주 좋은 발효음식의 한 종류로 ‘김치’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우리 김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치’ 외에 식사에 간편하게 도입할 수 있는 발효음식들로는 어떤 게 있을까? 사실 발효음식은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성도 많이 들어간다. 한 마디로 만들어 먹기가 쉽지 않다.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음식을 추천해 보려 한다. 요리를 잘하지 못해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로 골랐다.

첫째는 ‘사우어크라우트’이다. 쉽게 말하면 양배추 절임인데, 잘게 썬 양배추를 발효시킨 독일의 전통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채 썬 양배추를 소금에 절인 후 약 5일 정도 발효하면 된다. 두 번째는 일본의 건강식 낫또다. 콩에 특정한 발효균을 더해 만들어낸 음식으로, 우리의 청국장과 비슷하다. 별다른 조리가 필요 없어 반찬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콩으로 만든 낫또는 별다른 조리없이 그대로 먹으면 된다, 중앙포토

콩으로 만든 낫또는 별다른 조리없이 그대로 먹으면 된다, 중앙포토

마지막은 ‘애플 사이다 비니거’다. 마트에서 흔하게 보는 사과 식초와 다른 점은, 초모(醋母)가 포함된 식초라는 점이다. 보통 사과 식초는 주정(소위 말하는 술)을 넣어 초산 발효만 시킨다. 초모가 포함된 사과 식초는 사과에 발효균을 넣어 오랜 기간의 알코올 발효와 초산 발효를 둘 다 거친 제품으로, ‘초모(또는 초막. 영어로는 mother라고 표기돼 있다)’라고 하는 발효과정에서 나온 뿌연 물질이 함께 들어있다. 초모가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식단에 추가한다면 발효식품이 주는 장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발효식품을 섭취할 때 주의할 점도 있다. 양을 갑자기 늘릴 경우, 장내 환경이 빠르게 적응하지 못해 복부 팽만감, 가스 찬 느낌 등의 불편감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천천히 양을 늘리는 편이 좋다. 그렇다면 얼마나 섭취하면 좋을까? 앞의 논문에서 10주 동안의 식단 변화 후 유의미한 염증 감소 효과를 보인 발효음식의 양은, 김치로 따지자면 1.5컵 정도였다. 참고삼아 양을 언급하긴 했지만, 앞서 추천한 음식들을 비롯해 다양한 발효음식을 조합해 천천히 양을 늘려간다면 굳이 양을 계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쯤 되면 “그냥 유산균을 먹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다. 여기서 꼭 알아 둬야 할 부분은, 발효음식은 유산균 뿐만 아니라 그 유산균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음식으로 같이 제공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발효음식 중 젖산 발효를 통해 신맛이 나는 발효음식의 경우, 여기에 포함된 유산균의 대사물이 우리 몸의 면역세포에 작용해 항염증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보고된 바 있다. 그러니 균 자체에 치중하여 유산균 제품을 먹는 것보다는 유산균이 만들어진 좋은 환경과 그 환경에서 비롯된 유익한 대사물을 함께 섭취할 수 있는 발효음식을 추천한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발효음식을 먹는 민족이 아닌가. 밥상에 평범하게 올라오던 발효음식의 진가를 다시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지영 피부과전문의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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