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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홍어도 썰어본 이가 잘 썰어” “옳다 우기는 민주당에 지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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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광주 대선 민심 르포

설 연휴 이후 첫 주말인 지난 5일 광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구 양동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반찬 등을 파는 상점가 외엔 한산했다. 광주=김성탁 기자

설 연휴 이후 첫 주말인 지난 5일 광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구 양동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반찬 등을 파는 상점가 외엔 한산했다. 광주=김성탁 기자

무등산은 전날 밤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눈은 그쳤지만, 지난 5일 광주광역시 서구 고속버스터미널 광장에 부는 바람은 매서웠다. 터미널 건물 너머로 HDC 현대산업개발이 신축하다 붕괴 사고가 난 주상복합아파트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인자 우리가 보믄 그 사람 머릿속에 뭘 담고 있는지 알잖어.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이재명이 윤석열보다 훨 낫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은 나름 대화하는 법은 습득했겄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허제. 윤석열 찍겠다는 사람도 있다던디, 막상 투표하러 가믄 이재명 찍을 거 같에요, 내 생각엔.”

민주당 최대 지지 기반, 고령층 이재명 지지세 뚜렷하지만 이탈 조짐도
“이재명 프라이버시 안좋아 … 이미지 좋았다면 찍어도 마음 편했을텐디”
“이재명 증오정치 할 것 같은게 걱정” “윤석열 지지기반 수구세력 같아”
“민주당 싫어 윤석열 뽑겠다는 사람도” “이재명 정 못 찍으면 안철수로”

건축업 때문에 충남 서산행 버스를 기다리던 남모(58·서구)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최근 이 후보 부인 김혜경씨 관련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그는 “부인에 대해선 크게 생각하진 않는데, 이쪽이나 저쪽이나 쌤쌤”이라고 반응했다. 지난 3일 첫 4자 TV토론을 봤다는 그는 “윤석열은 말을 잘해도 척만 하는 거지 실질적으로 아는 건 없어 보였다”며 “이재명도 이 정도는 알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에 못 미쳤다”고 평했다.

이와 달리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있던 정모(52·서구)씨의 마음은 복잡해 보였다. “저도 민주당 지지자인데, 맘이 가질 않아요. 설 연휴 때 매형에게 ‘누구 찍을란가?’하고 물었더니 ‘이재명 찍어야지 그럼 윤석열 찍어?’ 그러더라고요. 근데 전 잘 모르겠어요.” 정씨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었던 홍준표 의원이 후보로 나왔으면 찍어줄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표현이 솔직하고 하겠다는 게 긍정적으로 보여서였단다. 투표할지 불분명하다고 밝힌 정씨는 “이재명씨는 증오 정치를 할 것 같은 게 걱정인데, 마음속 울분 같은 거로 정치를 하면 어긋날 것 같다”며 “윤석열씨는 지지기반이 좀 수구세력이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찍을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서 “깨끗한 면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후보 가족 의혹과 관련해 정씨는 “이재명씨는 또 부인 문제가 나오지 않았느냐”며 “대장동도 흘러가는 것 보면 이상하다”고 말했다.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 논란에 대해선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지만, 안희정씨가 불쌍하다는 말은 우리가 말 못하는 것을 해주니 시원한 느낌이 들더라”고 했다.

호남은 민주당의 최대 지지 기반이다. 대선을 한 달 가량 남기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정권 재창출 여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심장부인 광주의 민심은 한목소리가 아니었다. 터미널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던 버스 기사 두 명도 그랬다.

“윤석열을 찍기 뭐해서 이재명을 선택했는데, 개인 프라이버시가 너무 안 좋다 보니까…. 이미지만 더 좋았다면 찍어도 마음이 편했을 것 같은디.” 정모(51·광산구)씨는 이 후보 가족 의혹과 관련해 “사과도 한 두 번이지 않냐”고 말했다. 함께 있던 배모(56·광산구)씨는 “투표하는 날 무등산이나 가야겠다”고 운을 뗐다. “이재명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어요. 부동산 정책이 지금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보는데, 용적률도 그렇고 다 풀어줘 버린다고 해싸서 맘에 안 듭니다.”

광주고속버스터미널 건물 너머로 신축 공사 중 붕괴 사고가 일어난 화정 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가 보인다. 김성탁 기자

광주고속버스터미널 건물 너머로 신축 공사 중 붕괴 사고가 일어난 화정 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가 보인다. 김성탁 기자

이들보다 젊은 연령대에선 대선에 대한 관심이 약해 보였다. 회사원 장모(42·광산구)씨는 “투표는 할 건데 크게 관심이 없다. 민주당이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 무조건 밀어줄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던 동료 김모(37·동구)씨도 “직장생활 하기도 버거운데 남 일 같아서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관심이 없다”며 “연세 드신 분들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지만, 정치인들이야 선거 때면 생각해준다고 해도 민주당이나 다른 당이나 똑같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설 연휴가 지난 직후 주말이라서인지 이날 오후 광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서구 양동시장은 반찬 등 먹거리를 파는 상가를 제외하면 한산한 편이었다. 고령층인 상인들은 이 후보에 대해 강한 지지 경향을 보였다.

“1번 찍어줘야죠. 이재명이 잘할 것 같에요. 어렵게 살면서 험한 일을 다 하고 고생 많이 했잖아. 옛날부터 난 이재명이 대통령 한 번 해묵을지 알았어요. 안희정이 그대로 있었으면 후보였겠지만….” 국밥집에서 음식을 만들던 김모(64)씨는 “장사하면서 TV를 다 보고 있다”며 거침없이 말했다. 이 후보 본인과 부인 의혹에 대해서도 김씨는 “대장동이 문제라지만 성남시도 잘 살게 해줬고, 마누라가 법인카드 썼다던데 솔직히 녹취록도 그렇고 이력도 거짓말을 해온 윤석열 마누라에게 대면 양반”이라고 주장했다.

홍어를 파는 인근 점포에는 70대 상인 세 명이 모여 있었다. 양모(73)씨는 휴대전화로 걸려온 여론조사에 일일이 버튼을 눌러 답한 뒤 칼로 홍어를 썰어 용기에 담으며 말했다. “이거 써는 것도 썰어본 사람이 잘 썰지, 신삥이 와선 죽어도 못 썰어. 누가 해야 나라를 잘 꾸리고 나갈지를 봐야제.” 그는 “이재명이 대장동에서 돈을 먹었으면 진작 잡아갔을 것”이라며 “김혜경도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재명이 일해 본 경험이 있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함께 있던 이모(73)씨도 “윤석열은 키워준 민주당을 배신했고, 정치도 해본 사람이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주변에 윤 후보나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양씨는 “말은 그래도 선거 때 되면 다 이재명 찍어주러 갈 것”이라고 읊조렸다.

반면 전남대로 가는 길에 탄 택시 운전자 박모(55)씨는 민주당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재명씨보다 민주당이 진짜 싫어요. 뭘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면 좋은데, 자기들이 다 맞는다며 절대 안 굽히잖아요. 180석이나 됐으면 통 큰 정치를 해야 하는데, 짜실짜실하게 장난질이나 하고….” 박씨는 “광주 사람들이 국민의힘을 찍어준 적 있느냐”며 “이젠 지쳐서 주변 사람들과도 관심을 끄고 투표하러 가지 말자고 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주변에 민주당 싫어 윤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도 꽤 있어서 지지율이 생각보다 많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남대 교정에서 만난 대학생 문모(23·북구)씨는 “부모님이 권유하시지만 따를 생각은 없다”며 “아직 큰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중에서 정책을 따져보고 한 명을 찍을 것”이라고 했다. 문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안 후보나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를 뽑겠다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어린 딸을 데리고 교정을 찾은 30대 초반 부부는 “윤 후보는 뽑을 생각이 없지만, 이 후보 관련 의혹이 많아서 아직 못 정했다”며 “이 후보가 아니다 싶으면 안 후보를 찍으려 한다”고 했다.

2017년 광주 득표율 1.55%였던 국민의힘 “호남 목표 25%”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DJP 연합’으로 집권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출돼 당선된 기저엔 호남의 강력한 지지와 충청이나 영남을 더하는 전략이 있었다. 이번엔 민주당에서 경북 출신 이재명 후보가 나왔지만, 호남과 영남의 결합 구도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호남 지지도가 높게 나오는 게 이색적이다.

지난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광주에서 61.14%를 얻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1.55%에 불과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30.08%를 차지했다. 전남·북에서도 홍 후보의 득표율은 각각 2.45%, 3.34%에 그쳐 다른 지역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와 달리 중앙일보가 지난 4~5일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1005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광주·전라에서 이 후보는 69.2%, 윤 후보는 14.6%, 안 후보는 4.3%로 나타났다. 과거에 비해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이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011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선 호남에서 이 후보 54.7%, 윤 후보 28.5%로 나오기도 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흐름 때문에 이 후보는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이낙연 전 대표와 함께 광주를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의힘에선 윤 후보가 지난 6일 광주를 찾았고, 이준석 대표가 무등산 등반과 전남 섬 지역을 방문했다. 이 대표는 8일 대선의 호남 득표율 목표를 2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했다. 남은 기간 어떤 변화가 생길지, 실제 여야의 호남 득표율이 어떨지는 대선은 물론 이후 정국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