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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명의 파시오네

72년 역사 공공극장의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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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1950년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의사당)건물이 국립극장으로 지정되며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극장인 국립극장이 설립되었다. 같은 해 국립극장 소속기관으로 신극협의회가 창립되었고 국립국악원의 직제도 공표되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부산에서 개원하였다.

해방 이후 정부는 예술가들과 함께 국가 문화예술의 근간이 되는 공공극장을 만들고 공적인 영역에서 예술과 극장의 운명공동체적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1957년 명동의 시공관이 국립극장으로 지정되었고 1962년에 국립극장의 산하단체로 새롭게 개편된 국립극단과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그리고 국립오페라단이 만들어졌다.

1950년 서울에 국립극장 첫선
숫자 늘었지만 콘텐트는 부실
전문 기획인력 육성 서둘러야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되었고 다음해에 문화예술진흥원이 생기면서 문화정책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1973년 장충동에 새롭게 문을 연 국립극장은 국립극단·창극단·무용단·교향악단·오페라단·합창단·발레단·가무단 등 8개의 산하단체를 두고 운영했으나 국립가무단은 1977년 세종문화회관으로, 1981년에는 국립교향악단이 KBS로 이관되었다. 국립오페라단과 국립합창단, 국립발레단도 예술의전당으로 자리를 옮겨 2000년부터 현재까지 재단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립극장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극장을 중심으로 예술단체가 만들어졌고, 점차 장르별로 구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5월 새 단장을 마친 국립극장 서울 장충동 해오름극장 내부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새 단장을 마친 국립극장 서울 장충동 해오름극장 내부 모습. [연합뉴스]

우리나라 공공극장의 역사는 어느덧 72년째로 접어들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과연 정부와 지자체는 공공극장을 어떻게 인식해왔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공공극장 운영에 대한 어떤 정책과 비젼을 가지고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260여 개의 문예회관(한문연 기준)이 있다. 수치상으로 양적인 성장은 이루었을지 모르나 전국문예회관 프로그램 가동률이 38%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실질적인 운영은 미비한 수준이다. 예술의 효율성과 지역 인프라에 대한 고민없이 저마다 시설물 건설에만 집중한 결과 지역간 문화 편차가 심해지고 문화예술계의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260여개의 공공극장이 지어지는 동안 공공극장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공공성과 예술성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지난해 국회 청년 예술인 일자리 포럼에서 양은영 교수는 공연기획자 양성 및 배치 의무화와 같은 예술적 전문성 확보를 위한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하며, 지역 문예회관의 공연 제작 사업 활성화를 강제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박물관과 미술관 운영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안에서 이루어지고 도서관도 ‘도서관법’에 의해 운영된다. 하지만 70여년이 지나도록 전국의 공연장을 운영하기 위한 기본법률인 공연장법이나 문예회관 진흥법은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연장 관련 법률은 ‘공연법’을 따르고 있는데 공연법상 무대예술 전문인으로서 의무채용 대상자를 시설 관리직에 한정한 것만 보아도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에서 문예회관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운영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문화예술정책을 수립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은 예술 행위 당사자인 예술인이다. 공공극장의 정책 방향도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새롭게 지향해야 할 시점이다.

공공극장을 기반으로 한 예술정책을 단계별로 설정해보면 첫 번째로 공공극장의 운영의 주체가 공연장의 방향에 대한 어젠다를 세우고 예술가 중심의 전문 기획팀을 정규직화하여 장기적인 예술 정책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공연장의 기획 전문인력 의무채용 사항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행조직으로서 전문 예술인 및 단체가 직접 창작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다음으로 예술교육 센터를 통한 청년 예술가 육성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청년 예술인들에게 일정기간 동안 창작지원금을 지급하며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예술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문화 교류사업으로 공연사업을 연계한다면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물론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콘텐트 제작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실행되고 있는 상주단체 제도를 점차 확장시켜 나가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문예회관의 사회적 공공성과 예술성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제작극장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단계별로 지금의 상주단체 지원제도를 수정 보완하는 것도 민간예술의 영역을 보호하고 행정과 예술간의 상호 이해도를 높이며 점진적 발전을 위한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은 더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사회적 가치이다. 지역공동체의 문화예술 거점기관으로서 공공극장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