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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풍에도 "中 최고" 외친다…14년전 베이징과 180도 돌변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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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중국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귀빈석에 입장하는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에게 토마스 바흐(왼쪽) 국제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일 중국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귀빈석에 입장하는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에게 토마스 바흐(왼쪽) 국제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이 출발부터 ‘애국 올림픽’으로 퇴색하고 있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80억 지구촌이 모두 즐기는 스포츠 축제인데 중국 정부는 이를 ‘세계의 으뜸 중화의 잔치’로 치르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쇼트트랙을 비롯한 각종 판정 시비를 놓곤 주최국 어드밴티지를 넘어서 어떻게든 메달 숫자를 늘려 국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영수 위해 목숨을 걸자” 애국 올림픽 

지난달 25일 중국 선수단 출정식. 이때 등장한 구호가 “영수(領帥)에게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걸자. 일등을 다투고 패배는 인정하지 않는다. 총서기와 함께 미래로 가자”였다. 올림픽과 애국이 결합됐다.

중국 정부는 서구의 외교적 보이콧엔 공개적으로 맞대응했다. 성화 최종 주자로 위구르족의 디니거얼 이라무장 선수를 내보낸 건 서구가 제기한 신장 위구르 인권 침해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또 성화 주자에는 인도와의 국경 분쟁에서 교전을 벌였던 부대의 연대장이 나섰다. 인도와의 외교 관계를 무시하는 이같은 태도에 인도 선수단은 개막식을 보이콧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8일 머릿기사에서 “10년 동안 칼 한 자루를 갈았다”며 “필사의 정신은 가치가 있다.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 매화의 향기를 어찌 맡겠나”라는 지난 1월 시 주석의 선수단 격려 발언을 공개했다. 전투에 나서는 병사들처럼 올림픽에 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 5일 낮 베이징 인민대회당 3층 ‘금색대청’에서 열린 세계 정상급 귀빈 환영 연회장에서 상석의 시진핑 주석 부부를 향해 오른쪽 맞은편에 마련된 마이크 앞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으로 보이는 인사가 답사를 하고 있다. [CC-TV 캡처]

지난 5일 낮 베이징 인민대회당 3층 ‘금색대청’에서 열린 세계 정상급 귀빈 환영 연회장에서 상석의 시진핑 주석 부부를 향해 오른쪽 맞은편에 마련된 마이크 앞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으로 보이는 인사가 답사를 하고 있다. [CC-TV 캡처]

유엔총장, 시 주석에 헌사하듯 답사 

개막 다음날인 5일 인민대회당에 마련된 환영 연회는 ‘중화 올림픽’을 압축한 자리였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연회가 열린 ‘금색대청’에는 중국에선 전통적으로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자리했다. 대형 4각 탁자엔 용이 휘감은 듯한 물줄기, 용의 비상을 상징하는 스키점프대 ‘쉐페이톈(雪飛天)’, 용을 본 뜬 봅슬레이 경기장 ‘쉐유룽(雪游龍)’, 용의 여의주를 닮은 스키점프대 ‘쉐루이(雪如意)’ 모형이 등장했다. 24명의 정상급 외빈은 상하 관계로도 보일 수 있는 사각형 탁자 3면에 앉았다. 시 주석은 단상에서 연설한 반면 193개 유엔 회원국을 대표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맞은 편에 세워진 마이크에서 시 주석에게 마치 헌사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여름 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을 보도한 인민일보 1면 편집 [인민일보 캡처]

지난 2008년 베이징 여름 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을 보도한 인민일보 1면 편집 [인민일보 캡처]

지난 2008년 베이징 여름 올림픽의 모토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었다. 14년이 지나면서 중국의 몸집은 더욱 커졌고 이제 중국은 힘의 과시를 숨기지 않는다. 중국의 전략은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에서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할 일은 하겠다)로 바뀌었고, 이번 올림픽은 전세계로 힘을 투사하는 중국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중국의 힘 보여주는 올림픽 양상 

14년 전과 180도 달라진 중국의 모습은 개막식 다음날 인민일보 1면이 잘 보여준다. 14년 전엔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해외 정상들과 함께 연회청에 들어서는 사진이었다. 이번엔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두 명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당시보다 정상급 인사들의 올림픽 참석을 줄어든 여파도 있지만, 함께 하는 중국에서 지구촌을 주도하는 중국을 보여주는 듯한 사진으로 바뀌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중국 제일주의에 파묻히고 있는 배경을 놓곤 하반기 열리는 중국공산당 20차 당 대회가 거론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 5일 “굳이 눈이 적은 곳(베이징)에서 겨울 올림픽을 개최한 목적은 이례적으로 세번째 임기를 노리는 시진핑 주석에게 권위를 부여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중국의 과도한 애국주의는 국제적인 역효과를 부르고 있다. 지구촌을 이끄는 주도국 임에도 불구하고 참가국 모두를 함께 끌고 가는 성숙한 국격을 보여주기 보다는 민관 모두 ‘자국 선수 최고, 중국 최고’에 열광하는데 몰두하는 모습이다.

생방송 도중 경비요원에 저지당했던 네덜란드 기자는 중앙일보에 “IOC 측로부터 연락이 전혀 없었던 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중국 측 인사가 조명장비까지 들고 갔다고 공개했다. 베이징 도심에는 수십 m 간격으로 붉은 점퍼를 맞춰 입은 ‘자원봉사자 부대’가 외신 기자의 생방송 등 불상사를 막기 위해 통제와 감시에 나서고 있다.

“중국 부상 아닌 패권만 보여줄 수도”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번 올림픽을 “중국의 게임”으로 부르며 “한때 중국 정부는 올림픽을 성공시키기 위해 비판자를 달래려 했으나 지금은 거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중국이 이미지 악화 등 외교적 손해를 감수할 만큼 국내적 통합이 시급함을 보여준다”면서 “하지만 ‘세계의 꿈’이 아닌 ‘중국의 꿈’만 강조했다가는 이번 올림픽 무대가 자칫 중국의 패권적 모습만 각인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베이징 겨울 올림픽은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의 힘을 중국 국민에게 과시해 여론을 결집하기 위해 마련된 ‘중화 올림픽’”이라며 “중국이 보편적인 국제질서에서 더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국제 사회가 연대의 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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