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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암투병 어머니…지인이 내게 힘내라며 준 위스키 선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55·끝)

어머니가 수술을 했다. 가장 어려운 수술 중 하나로 꼽히는 ‘휘플 수술’이다. 암이 생긴 췌장의 머리 부분을 절제하고 십이지장, 담도 등을 절제한 뒤, 장기를 다시 이어주는 수술이다. 6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커다란 마약성 주사를 맞고 있는데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지난 1년여를 항암의 고통 속에서 보내왔는데, 수술로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버텼다. 수술부위는 날로 아물어갔고 퇴원해서 회복에 최선을 다했다.

수술 후 2주가 지나 조직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지난 한 해 동안 온 가족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어지려나 싶었다. 그러나 췌장암은 끈질긴 녀석이었다. 잘라낸 췌장의 절제면에서 암이 발견됐고, 림프절에서도 암이 발견됐다. 췌장암과의 전쟁에서 1차전 항암 19차례, 2차전 휘플 수술을 마쳤지만, 3차전이 남은 셈이다. 이제 방사선 치료와 지긋지긋한 항암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병원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어머니.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소리 내지 않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 백미러에 비친다. 나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하늘은 왜 이렇게 서럽도록 맑은지. 어머니가 볼까 백미러를 제꼈다. 집으로 향하는 30여분, 모자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물이 닿은 공기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어머니. 건강할 땐 10년 더 건강하게 사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 10년이 매우 귀한 것처럼. 어머니와 10년만 더 살고싶다. [사진 pixabay]

병원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어머니. 건강할 땐 10년 더 건강하게 사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 10년이 매우 귀한 것처럼. 어머니와 10년만 더 살고싶다. [사진 pixabay]

얼마 전 술자리에서 만난 의사가 “암은 현대병입니다. 인간의 수명이 늘면서 생겨난 병”이라고 말했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오래 살게 됐지만, 아이러니하게 암이라는 무서운 병을 만났다. 자연스러운 생의 도태를 거스르려는 인간에게 철퇴를 휘두르는 것인가. 극복해 가던 병 앞에 절망이 찾아오자 삶이란 허무함이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나오기 힘든 절망감.

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5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 암 환자가 치료를 시작한 지 5년 이내에 그 암으로 사망하지 않는다면, 효과적으로 암이 치료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암 치료를 시작한 지 채 1년이 안 됐다. 5년 생존율이 10%대에 불과한 췌장암이라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기침 소리 한 번 들리면 마음이 내려앉는다.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는 지인이 위스키 한 병을 선물로 줬다. 싱글몰트 요이치 10년 미니보틀. 과거엔 흔했던 위스키지만 일본 위스키 붐이 일면서 절판되고 가격도 급상승한 위스키다. 귀해져서야 소중함을 안다. 건강할 땐 10년 더 건강하게 사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 10년이 매우 귀한 것처럼. 어머니와 10년만 더 살고 싶다. 그래 봐야 어머니 나이 70대 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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