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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하루 1달러…맨손으로 폐선 뜯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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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59·끝)  

2008년 5월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한 컴패션어린이센터에 한국 후원자들과 방문했다. 후원자 중 마술사가 있어 묘기를 보여주자 어린이들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환호성을 질렀다. 폐선들의 무덤과 그곳에 올라 하루 1,2 달러의 벌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기 전의 일이었다. [사진 허호]

2008년 5월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한 컴패션어린이센터에 한국 후원자들과 방문했다. 후원자 중 마술사가 있어 묘기를 보여주자 어린이들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환호성을 질렀다. 폐선들의 무덤과 그곳에 올라 하루 1,2 달러의 벌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기 전의 일이었다. [사진 허호]

2008년 컴패션에서 후원자들이 비전트립을 가는데 같이 가서 사진을 찍어주면 좋겠다고 제의해 처음으로 방글라데시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미리 그 나라의 사회상이나 역사 등에 대해 공부했을 텐데, 당시에는 그러지 못하였죠. 아쉬운 점이기도 하지만, 그때 도착한 방글라데시의 도시 치타공을 생각하면 미리 공부하고 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린이들의 까맣고 선한 눈망울과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를 경험하기도 전에, 다른 선입견을 가졌을 것 같았으니까요.

인구밀도가 세계 1위인 방글라데시는 히말라야산맥과 벵골만 밀림이 만나는 중간에 있는 데다 갠지스, 메그나, 브라마트 강이 중심을 이루어 수많은 지류가 전 국토를 가로지르는 그야말로 물이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일찌감치 강 주변으로 넓은 농경지가 형성돼 있어 축복 받은 땅이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농경지의 풍요는 인구 증가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지나친 인구 과잉으로 방글라데시가 처한 가난의 요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고 하지요.

치타공은 그러한 방글라데시의 제2의 도시입니다. 인구밀도가 어마어마하게 높다지요. 그만큼 높은 기온과 강우량으로 습하고 무더운 날씨로도 유명했는데, 수도인 다카에서 한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내렸을 때에는 다카의 오염된 공기 때문인지 오히려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컴패션어린이센터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꽃과 웃음이 버무려진 환영식과 놀이 시간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시를 회상하면 웃음 짓게 할 정도로 즐겁기만 한 시간이었지요.

폐선들이 가득한 선박해체소를 보게 한 건 다름 아닌 동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달음박질이었다. 위험천만한 작업 현장을 어린이들이 이리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형이, 삼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폐선들이 가득한 선박해체소를 보게 한 건 다름 아닌 동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달음박질이었다. 위험천만한 작업 현장을 어린이들이 이리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형이, 삼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센터에서 마술도 보여주고 얼굴에 그림도 그려주고 식사도 하며 신나게 놀아주고 나자 후원자들은 기분 좋게 기진맥진해졌습니다. 역시 아이들과 노는 것은 동서양을 망론하고 체력이 필요한 법이지요. 사진가답게 저는 그들을 내버려 두고, 근처 마을로 어슬렁거리며 나갔지요.

구불구불하지만 시원하게 뻗은 시골길은 아이들로 가득했습니다. 카메라를 든 이방인이 낯설지도 않은지 제 앞에서 포즈를 잡거나 장난을 치며 왕성한 호기심을 발휘했습니다. 아이들과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시골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제 몸을 스쳐 달려가는 어린이들의 뒷모습이 보였고 그 끝에는 엄청난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형 폐선이 가득한 해안선과 그 폐선에 올라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하면서 하루 1달러를 간신히 버는 노동자의 안타까운 현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치타공의 선박해체소.

대형 폐선이 가득한 해안선과 그 폐선에 올라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하면서 하루 1달러를 간신히 버는 노동자의 안타까운 현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치타공의 선박해체소.

수백 척의 배가 바다 위에 유령처럼 떠 있는 광활하고 적막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앞으로 작은 배들이 끊임없이 노동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한 척에 수만 톤에 이르는 폐선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해체한다고 했습니다. 느닷없이 폭발사고가 일어나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유독가스에 중독되어 바다로 뛰어내리기도 하며, 어디에서 볼트와 너트가 총알처럼 날아올지 모른다던 다큐멘터리가 보여주었던 폐선 해체 현장, 선박해체소.

나중에 기사로 보니, 이 선박해체소에서는 2만여 명의 노동자가 매년 200여 척의 대형 선박을 맨손으로 일일이 뜯어내어 100% 재활용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영상에서 기름 때로 까매진 노동자 면면을 직접 만나게 된 것입니다. 워낙 위험한 곳이어서 해외 다큐 팀이나 기자들은 그렇게 들어가기 힘들다는 곳을 아이들을 따라 산책하듯 만나게 된 것이지요.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말입니다.

배를 수선하기 위해 타르를 다시 바르는 마을 사람들. 까만 염소가 풀을 뜯는 모습을 배경 삼아 사뭇 평화로워 보였다.

배를 수선하기 위해 타르를 다시 바르는 마을 사람들. 까만 염소가 풀을 뜯는 모습을 배경 삼아 사뭇 평화로워 보였다.

해안선에 넘실대는 거대한 폐선들, 끊임없이 사람들을 나르는 작은 배들, 그리고 , 해안가의 평화로운 풍경은 질리지 않고 볼 수 있는 모습이기는 했습니다. 넋을 잃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도망치듯 어린이센터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가난은 ‘기회’가 없는 것이라고도 정의됩니다. 당사자가 무엇도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고 능력이 부재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기회라는 것을 찾아 떠나서 결국 다시 가난하게 되는 것이 도시 빈민의 삶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최대 물류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치타공 역시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도시였을 것 같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폐선에 올랐을 것이고 위험천만한 삶 속에서 기회를 잡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겠지요.

이들이 잡은 기회가 그저 생존을 위한 기회가 아닌, 생활과 삶을 영위하는 기회였으면 참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센터로 얼른 돌아가 보고 싶었던 것은 진짜 기회를 잡은 어린 생명들의 말갛게 씻긴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밝게 웃던 그 어린이들 역시 폐선 속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자녀이자 손자 손녀일 테죠. 그 생각에 그나마 해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앞에 얼굴을 들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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