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는 고발한다

세쌍둥이 중2 아들이 물었다 "엄마, 페미야? 남자들 싫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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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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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이 된 남자 삼둥이와 매일 작은 전쟁을 치른다. 중2가 어떤 존재인가. 북한군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거침없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 그런 중2를, 하나도 아닌 무려 셋을 상대해야 하는 세쌍둥이 엄마로선 난감한 순간이 많다. 젠더 갈등이 첨예한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세상은 연일 이대남 얘기로 시끄럽지만 젠더는 일대남(10대 남자)에게도 중요한 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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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는 왜 남자를 미워해?" 

아이들은 이따금 무서운, 그러나 분명 생각할 거리가 되는 질문을 던진다. 가령 이런 식이다. “엄마 페미니스트야? 페미들은 왜 남자를 조롱하고 미워해? 심지어 길에 쓰러진 여자를 도와줘도 성희롱 했다고 고소한다잖아. 엄마도 남자들 싫어해? "

게임에만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 툭툭 레디컬 페미니즘이나 워마드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자는 왜 군대 안 가? 범죄 현장에서 여자 경찰은 왜 도망가서 시민에 피해를 줘?" 온라인을 달궜던 이런 이야기를 꺼내며 불만스러워 한다. 일반화할 수 없는 특이한 개별 사건을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김재련 변호사(맨 오른쪽)와 세쌍둥이 아들. [사진 김재련]

김재련 변호사(맨 오른쪽)와 세쌍둥이 아들. [사진 김재련]

궁금했다. 녀석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엄마, 솔직히 여자는 경찰로 뽑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힘도 약하고 범인도 못 잡는데 여자 경찰 숫자를 계속 늘리는 건 뭔가 잘못된 거 같아”라고 말한다.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만큼 힘이 쎈 여자도 있어. 그리고 경찰이 힘쓰는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 경찰도 범죄자 많이 잡아서 상 받잖아”라는 식의 이야기를 덧붙여보았으나 녀석들 머릿속엔 이미 여경 무용론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강력했다. 엄마 말에 설득당하기는커녕 질문의 강도가 더 세진다. "페미만 도와주는 여성가족부는 없애는 게 맞지 않아? 혹시 엄마도 페미라서 전에 여성가족부 공무원 했던 거야?" 과거 개방직으로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을 했던 경력이 이렇게 소환된다.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란 편견 

관점을 달리해 설명했다.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되잖아. 꿈이 경찰인 여자도 있어. 경찰을 하고 싶은데 여자라는 이유로 기회조차 얻지 못하면 그건 잘못된 거 아니니? 갖추어야 할 자격이 되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되잖아.”여성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차별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하자 여경 선발에 대해선 더 이상 반론은 없었다.

성폭력 피해 얘기도 했다. "엄마는 왜 자꾸 여자들 편만 들어?" 대화의 중심엔 억울함이 배어 있었다. 불법촬영 우려 탓에 여자들은 불안해서 공중화장실을 갈 때 두리번거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한 녀석이 "엄마 페미 맞네. 여자 편만 들잖아. 왜 여자만 피해자라고 생각해? 남자가 화장실에서 몰카촬영 당한 사건도 있는데"라고 한다. 많은 여성이 화장실에서 빈번하게 몰카 촬영의 피해를 보는 문제와 남성이 어쩌다 몰카 촬영을 당하는 건 등치 될 수 없는데도 여자만 피해자로 언급된다는 생각에 억울하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2018년 12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몰래카메라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는 여성들. [뉴시스]

2018년 12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몰래카메라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는 여성들. [뉴시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아이의 문제 제기가 꼭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물론 일상에서의 피해 빈도와 정책집행의 우선순위 등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로서 느끼는 분노와 고통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같은 무게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 대부분의 사건에서 여성이 피해자였기에 ‘피해자의 자리’에서 아예 남성을 소거해 왔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피해자’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피해자는 곧 여성'이라는 전제로 '피해자'가 아닌 ‘여성’에만 초점을 맞췄던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부지불식간에 그런 태도 탓에 인권 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왜곡시키는 데 일조한 것 같다.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단순도식을 만들어 젠더 폭력을 남녀 싸움으로 전락시키는 데 가담한 건 아닐까 반성하기도 했다.

된장녀만큼 한남충 혐오도 문제

과거 공공기관에서 성폭력예방 교육 강사로 섰을 때 가해자가 남성인 사건을 주로 언급했다. 강의 듣는 일부 남자들이 "남성만 가해자로 계속 언급되는 건 불편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중학생 아들들이 불편해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2018년 5월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의 나체를 몰래 찍어 유포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여성 A씨. 그는 누드 크로키 수업에 모델로 참여했다가 쉬는 시간을 틈타 피해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몰래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뉴스1]

2018년 5월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의 나체를 몰래 찍어 유포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여성 A씨. 그는 누드 크로키 수업에 모델로 참여했다가 쉬는 시간을 틈타 피해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몰래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뉴스1]

여경과 성폭력 이슈를 거친 후 보다 근본적 이야기를 했다. 왜 페미니즘이 싫은지 아들에게 물었다. "페미니즘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투표하게 해 달라고 하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퇴행한 거라잖아. 페미들은 아무 잘못 안 한 남자를 '한남충'이라고 하고 어린 남자보고는 '유충'이라고 욕하잖아. 같은 여자라도 남자 편들면 '흉자'라고 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인권침해야. 엄마가 평소 문제삼는 언어폭력이기도 하고. 또 남자더런 여자 외모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남자 아이돌 보고 '우와~복근 멋지다'라는 식으로 외모 평가하잖아, 이런 모순이 어딨어."

맞다.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 입에서 나온 ‘한남충’은 몇몇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된장녀, 틀딱, 진지충…. 소비를 과하게 하는 여성, 틀니 착용할 만큼 나이 많은 사람, 모든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들인데 비하가 핵심이다. 분명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상대에 대한 배려나 인간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지 않다. 공존 아닌 대립을 전제로 한 혐오의 용어들이다.

여기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평생 부엌일 한 번 안 하고 칠순 넘은 어머니를 부려먹는 아버지, 월급 대부분을 제 몸치장하는데 사용하는 누이, 세상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나 때는 말이야"를 연발하는 꼰대가 우리 주변에 흔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는 또 바쁜 배우자를 위해 식사와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남편, 적은 월급이지만 이웃과 나누며 사는 여동생, 청년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 공존하고 있지 않은가.

차별과 싸우는 일은 여성 혹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의 평등과 존엄을 부정하는 목소리에 저항하는 건 남녀노소 모두의 몫이다. 차별, 혐오의 대상으로 지목된 특정 성별에 속한 사람만의 몫은 아니다.

차별 비판하며 차별의 옷을 입진 않았나

대체 젠더 갈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던 시절엔 "여성은 참정권이 필요 없다"는 주장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비단 페미니스트들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는 어떤 주장에 맞서 싸우고 있는가? 남녀의 고정적 성 역할을 전제로 한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목소리에 맞서고 있는가? 혹시 '주장'이 아니라,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한 '사람'과 맞서 싸우고 있지는 않은가.

차별을 혐오하면서 우리 스스로 차별과 배제의 옷을 겹겹이 입고 있는 건 아닌가? 낡은 통념과 싸우다가 우리 스스로가 또 다른 통념의 낡은 틀 안에 갇힌 건 아닐까?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의 ‘잘못된 생각’인데 공존해야 할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에 골몰하여 소통의 창구가 닫혀 버린 것은 아닐까? ‘한국 남자들은 죄다 한남충이야’, ‘젊은 여성들은 된장녀들이야’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우리가 배제해야 하는 차별이고, 지양해야 할 폭력적 사고다.

우리의 지향점은 갈등이 아닌 공존이어야 한다. 다름을 존중하고 차별을 배제하고 공존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 한남충이라는 단어 안에 모든 남성을 집어넣을 수 없다. 된장녀라는 단어 안에 모든 여성을 집어넣어서는 안된다. 개별적 행위를 전체화하는 것, 사상이 아닌 사람을 공격하는 건 우리가 지양해야 할 폭력이다.

페미니즘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이런 문제의식에서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한국 남성을 한남충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 안에는 개개인들의 차별, 혐오로 인한 상처가 담겨 있다. 그 차별과 혐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남자 혹은 여자의 몫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몫이다.

평등과 공존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던 페미니스트의 또 다른 이름은 '휴머니스트'가 아닐까. 휴머니즘을 통해 우리 사회는 갈등을 딛고 공존이라는 더 나은 세상으로 전진할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의 휴머니즘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