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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늙고 中 젊어져"…장이머우 총연출 개막식에 드러난 도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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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의 중국 국기 입장 장면.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여성이 한복을 입고 있다. 한복이 중국 내 소수민족 복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김경록 기자

4일 오후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의 중국 국기 입장 장면.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여성이 한복을 입고 있다. 한복이 중국 내 소수민족 복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김경록 기자

“힘써 겨루라. 나라마다 내려온 불굴의 정신으로.” 올림픽 정신을 담은 그리스어 노래 ‘올림픽 찬가’가 중국 어린이 40명의 목소리에 실려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개최국 국기 입장 순서에선 중국 내 56개 민족 대표를 비롯한 각계각층 일반인이 중국 혁명의 상징 ‘오성홍기’를 함께 받쳐 들고 행진했다.
지난 4일 밤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제24회 베이징 겨울올림픽은 2008 여름 베이징올림픽과 달라진 분위기였다.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중국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개막식 총연출을 맡았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 단순·여유 #2008년 대국굴기 넘어 미래·기술 초점 #스타 없이 일반인 출연 "함께하는 미래" #한복 공정·위구르족 선수 성화봉송 비판

대국굴기 넘어서 미래·기술 내세운 중국 

14년 전 베이징올림픽이 압도적 규모로 전 세계에 ‘대국굴기(大国崛起)’를 과시했다면 이번엔 스타 가수‧배우 등 유명인 대신 일반인, 특히 어린이‧청소년이 주로 무대를 채웠다. 1만1600㎡에 달하는 무대 바닥 전체에 HD LED 스크린을 설치해 희고 푸른 얼음‧눈꽃송이와 중국 천혜의 자연경관, 생활상 이미지를 다채롭게 펼치며 ‘함께하는 미래(Together for a Shared Future)’란 주제를 강조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의 한 장면. 소박하면서도 자신감이 느껴졌다는 평가다. 김경록 기자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의 한 장면. 소박하면서도 자신감이 느껴졌다는 평가다. 김경록 기자

장대를 든 공연자들이 초대형 LED 스크린이 설치된 무대 영상에 맞춰 축하연을 펼치고 있다. [AP=연합]

장대를 든 공연자들이 초대형 LED 스크린이 설치된 무대 영상에 맞춰 축하연을 펼치고 있다. [AP=연합]

동아시아 24절기를 담은 영상에 이어진 개막식 첫 무대에서 공연자들이 든 긴 장대가 LED 무대와 어우러져 봄철의 푸른 풀싹처럼 보였다가 새하얀 민들레 홀씨처럼 바뀌어 흩어지는 빛의 향연부터, 이어 무대에 오른 600여명 공연자가 동시에 밟는 자리마다 눈꽃송이가 피어나는 ‘라이브 모션 픽쳐’ 기술, 91개국 참가국 이름을 각기 담은 눈꽃송이가 공중을 채우는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등 기술력이 돋보였다.
장이머우 총연출이 “올림픽 역사에 없던 파격”을 예고했던 개막식의 꽃 ‘성화 점화’ 역시 성화대 규모로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작았다. 1950년대생부터 2000년대생까지 중국 동계 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들이 차례로 성화를 이어받아, 91개 참가국의 피켓이 합쳐진 커다란 눈꽃송이 한가운데 성화를 꽂는 독특한 형태였다.

역대급 파격? 올림픽 역사상 가장 작은 성화대 

중국 국가대표선수들이 성화에 불을 붙이는 장면. [로이터=연합]

중국 국가대표선수들이 성화에 불을 붙이는 장면. [로이터=연합]

개막식은 전체적으로 예년보다 단순하고 소박해졌단 인상이 강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식 공연자가 3000명으로 2008년(1만5000명)의 20% 수준으로 줄고 개막식 시간도 4시간에서 2시간 남짓으로 쪼그라든 것도 이유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았던 송승환 KBS 개막식 생중계 해설위원은 “기대했던 것처럼 어마어마한 '와우'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독특했다”면서 “도쿄올림픽과 비교하면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면에서 일본은 늙어가고 있고 중국은 더 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2008년에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거대하게, 웅장하게, 화려하게였다면 14년이 흘러 중국도 글로벌한 보편성을 갖고 이런 심플한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게 됐다”면서 “중국이 좋아하는 홍색‧황금색이 없어지고 푸른색‧흰색이 많이 보인” 점도 짚었다.

송승환 "일본 문화 늙고 중국 문화 젊어진다" 

4일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LED 스크린이 설치된 스타디움 무대에 입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4일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LED 스크린이 설치된 스타디움 무대에 입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평범한 중국인들 가운데에서도 어린이를 내세운 점은 장이머우 감독의 연출 철학과도 연결된다. 그는 1988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데뷔작 ‘붉은 수수밭’부터 중국 문화대혁명 등 시대의 격랑을 헤쳐온 민초들의 삶을 그려왔다. 1999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책상 서랍 속의 동화’에선 시골학교 임시교사가 된 13살 소녀의 고군분투를 대부분 시골 현지 주민들을 캐스팅해 생활상과 교육환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송승환 해설위원은 “‘책상 서랍 속의 동화’는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유머가 돋보이는 장이모우 감독 최초의 영화란 평가였다. 장이모우 감독도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됐다는 뜻이었다”면서 “개막식에서 보여준 문화적인 면에서는 중국도 G2에 걸맞게 여유로워지고 세계인이 공감하고 인지할 수 있는 글로벌한 보편성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그런 글로벌한 보편성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터진 한복 공정, 외신은 위구르족 성화 주자 주목

하지만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은 중국 소수민족 인권 문제, 홍콩‧대만 문제 등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가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단행하고, 코로나19로 인해 관중석 수용 인원 9만1000명 중 30%(2만명)만 채우면서 예년같은 열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올리브 나뭇가지‧비둘기 등 평화와 화해의 상징물이 공연마다 거듭 등장했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은 또다시 비판대에 올랐다.
아시아의 음력 설을 ‘중국 설’로 명명하며 축하하는 문구(Happy Chinese New Year)로 개막식을 열어젖혔고, 소수민족 대표단엔 한복 입은 조선족 여성이 중국 문화의 일부인 양 등장했다. 한국 네티즌 사이에도 ‘그간 반복돼온 중국의 문화 공정이 또 터졌다’는 불만이 나왔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최근 몇 년간 중국이 해온 일련의 한복 공정을 보면 단순히 조선족을 표현한 것으로 치부하긴 어렵다”면서 “세계 여론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한국문화를 더 널리 알려 ‘중국이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관중석에서 베이징겨울올핌픽 개막식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관중석에서 베이징겨울올핌픽 개막식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

외신에선 이번 개막식의 외교적 보이콧 계기 중 하나인 중국 소수민족 인권 탄압 문제도 비중 있게 조명했다. 특히 중국 북서부 신장 지역 위구르족 출신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 디니거 이라무장이 개막식 성화의 마지막 주자로 나선 것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영국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번 개막식을 미국 현지 생중계한 NBC방송은 이라무장이 올림픽 성화대에 불을 밝히는 순간을 “시진핑의 매우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메시지”라 논평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이번 개막식의 미국 현지 시청자는 1600만명으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절반 수준(43%)으로 곤두박질쳤다. 91개국 2800여명 선수가 참가한 베이징 겨울올림픽은 오는 20일까지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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