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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저건 맞은 뒤 사망한 수배자…“적극대응 강조”에도 딜레마 빠진 경찰

중앙일보

입력

테이저건. 연합뉴스

테이저건. 연합뉴스

 경찰 체포에 저항하다가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을 맞은 뒤 의식을 잃었던 40대 남성이 최근 사망하면서 ‘물리력 사용’을 두고 현장 경찰관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청장이 “과감한 물리력 사용”을 강조하고 ‘경찰관 직무직행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당사자(경찰)가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만큼 현장의 부담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문제가 된 사건은 지난달 28일 일어났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쯤 경기도 오산시 한 모텔에서 A씨(48)가 소란을 피운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모텔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오산경찰서 모 지구대 소속 B경장 등 2명이 출동했다. 질문에 횡설수설하는 A씨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신원을 조회했고 A급 수배자란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기관은 범죄 정도에 따라 지명수배자를 A급, B급, C급으로 나눈다. A급 수배자는 이미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람으로 별도의 조치 없이 현장에서 발견 즉시 체포할 수 있다. A씨는 사기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A급 수배자가 된 상태였다.

“수갑 찬 채 저항해 테이저건 사용”

경찰 체포에 저항하다가 테이저건을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던 사기 혐의 수배자가 2일 숨졌다. 중앙포토

경찰 체포에 저항하다가 테이저건을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던 사기 혐의 수배자가 2일 숨졌다. 중앙포토

경찰은 A씨에 수갑을 채운 뒤 경찰차에 태우려 했다. 하지만 그는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수갑을 찬 채로 모텔 안으로 도주했고 복도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 그러자 B경장은 테이저건의 스턴기능을 A씨의 옆구리에 사용했다. 쓰러진 A씨가 저항을 이어가자 허벅지에 테이저건을 다시 갖다 댔다. 스턴기능은 카트리지를 뺀 상태로 신체에 갖다 대 전기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강도는 전극침과 같다. 이 과정에서 A씨가 의식을 잃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지난 2일 숨졌다.

경찰은 상황을 고려한 적절한 대응이었다는 입장이다. 경찰관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은 대상자(범인)의 행위를 위해 수준에 따라 ▶순응 ▶소극적 저항 ▶적극적 저항 ▶폭력적 공격 ▶치명적 공격 등 5단계로 나누고 각각에 대응하는 물리력 수준을 규정한다. 대상자가 경찰관이나 시민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폭력적 공격’ 상태에선 경찰봉이나 테이저건 등을 이용한 ‘중위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망 또는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는 ‘치명적 공격’을 할 경우 최대 권총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은 A씨의 행위가 ‘폭력적 공격’이라고 판단했다. A씨가 A급 수배자인 점, 수갑을 찬 채로 저항한 점, 난동을 부린 장소가 좁았던 점 등을 고려해 테이저건을 사용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A씨의 소지품 중에 주사기와 마약류가 담긴 봉지가 발견된 만큼 마약 흡입 상태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A씨의 정확한 사인은 부검 결과가 나와야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사건 발생장소는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A급 수배자에게 테이저건을 사용한 게 매뉴얼 등 규정 위반은 아니다 ”면서도 “A씨가 사망한 만큼 물리력을 사용한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바디캠 의무착용 등 보완책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경찰의 적극 대응’이 과도기적 단계인 만큼 개선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약하게 대응하면 무능론이 나오고 과감하게 물리력을 행사하면 과잉진압이란 말을 듣는 딜레마가 있다”며 “현장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선 바디캠 착용 의무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관련 법이 통과됐지만, 아직 적용된 선례가 없는 만큼 경찰관이 주저하게 될 수도 있다”며 “현장의 시각에서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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