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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뜨는데만 2시간…'1m 대물' 방어로 끓인 김치찌개 맛은 [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겨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생선은?
차가운 물 찾아 동해로 올라온 대방어, 직격 해부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방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방어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어느 해였나, 12월 초쯤 뭔가 잘한 일이 있어서 밥을 얻어먹으러 초밥집에 갔다. 살짝 더듬거리며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본인 셰프가 웃으면서 “혹시 좋아하시는 생선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한창 먹는데 열광하던 시절이라 “그럼 제철이니 방어 하나 주세요” 했다. 셰프가 고개를 갸웃거리기에 혹시 방어라는 단어를 모르나 싶어 자신 있게 “부리(ぶり: 일본어로 방어) 말인데요” 했는데, 셰프는 웃는 얼굴로 돌직구를 날렸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네. 부리 알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새해가 오기 전에 부리를 먹으면 바보”라는 말이 있어요. 아직 제철이 아니에요.” 졸지에 방어 제철도 모르는 바보가 돼 버렸다는 쓰라린 기억. 그렇구나. 뭐 일본은 한국보다 겨울이 조금 더 따뜻하니 일본의 1월 바다가 한국 12월과 비슷하겠지, 하고 위안을 삼았다.

요즘은 어린이들도 방어는 겨울이 제철이라는 걸 안다. 다만 그사이 자연이 변했다. 매년 사람들은 겨울 방어를 먹으러 제주도와 남해로 향했지만 몇해 전부터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동해안에서도 방어가 잘 잡히고 있다. 특히 울릉도 근처에 방어 어장이 형성된다는 이야기. 그래서 ‘백종원의 사계’ 팀도 제철 방어를 먹으러 남해 아닌 강릉 앞바다, 사근진 해변으로 향했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방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방어편. 인터넷 캡처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방어를 즐겨 먹었다. 『세종지리지』를 포함한 수많은 문헌에 방어가 남해안 특산물로 올라 있고, 울산의 방어진 같은 지명도 남아 있다. 물론 우리만 방어를 즐겨 먹은 건 아니다. 숙종 때 문신 임수간이 1711년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오면서 남긴 『동사일기』에 따르면 당시 일본 측이 통신사 일행에게 지급한 양식 목록에 엄사(醃鰤: 소금에 절인 방어) 6마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방어 사랑이라면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더 유난스럽다. 우리 말로는 방어를 부르는 이름이 방어와 말래미(새끼 방어), 두 가지 정도지만 일본에서는 성장 단계에 따라 와까시(새끼 방어), 이나다(조금 자란 방어), 와라사(60㎝ 정도 자란 중방어)라고 세분해서 부른다. 사투리까지 합하면 더 다양한 이름이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한겨울에 먹는 간부리(寒鰤)라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의 메뉴는 방어회와 방어 김치찌개. ‘백종원의 사계’가 특별히 초청한 겨울 용병 김지민(유튜브 ‘입질의 추억’ 운영자)씨는 회를 뜨고 백종원 대표는 서더리를 이용해 김치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이날 방어대첩을 위해 동원된 방어는 13㎏짜리 대물. 재료비만 50만원이 들었다. 누차 얘기하지만 스태프 회식을 위해 대물을 준비한 건 절대 아니다. 아무튼 12월 산지 가격 기준으로 ㎏당 4만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다(산지 사정에 따라 가격은 매일 변합니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방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방어편. 인터넷 캡처

이 방어 가격을 조선 시대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정조 20년(1796년) 일성록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방어 한 마리의 가격은 1냥5전(엽전 150개) 정도로 연어와 비슷한 가격이다. 참고로 같은 소고기 1근이 2전5푼(엽전 25개), 황청(黃淸: 짙은 색 꿀) 한 되가 8전(엽전 80개), 쌀 한 가마니가 6냥(엽전 600개)이니 방어 한 마리가 소고기 6근, 꿀 2되와 비슷하고 방어 4마리가 쌀 한 가마니 가격이라 확실히 현대에 비하면 생선값이 쌌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참고 수준이다. 좀 엉뚱한 비교를 하자면 당시에는 귤이 매우 귀한 과일이었기 때문에 귤 1개 가격이 2전(엽전 20개), 귤 8개면 방어 1마리와 바꿀 수도 있었다.

“지민씨대방어 회 떠봤어요?”
“네, 두번…”

세 번째라면 길이만 1m가 넘는 대방어를 다루기에 ‘숙련된 손길’이라고 하기는 좀 부족한 느낌. 그리고 예상대로 약 2시간에 걸쳐 산더미 같은 회를 뜨고 나서 김지민씨는 기진맥진했다. 방어는 크게 등살, 사잇살, 중뱃살로 구분하고 볼살이나 목살도 제법 많은 양이 나온다. 등살은 분홍색, 사잇살은 짙은 붉은색인 반면 뱃살 쪽으로 가면 분홍색은 상당히 옅어지면서 나이테 같은 흰 줄이 확연히 보인다. 다 맛있지만 그중 한 가지만 고르라면, 아무래도 사잇살을 꼽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잇살은 썰기 전 큰 덩어리로 봐도 소고기 양지머리와 비슷하게 보이는데 실제 식감도 소고기 생고기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김지민씨가 썰어 준 사잇살을 기름소금에 찍어 먹으며 백종원 대표는 연신 싱글벙글.

“아, 그런데 내가 이렇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니지! 김치찌개 끓여야지”
“하하. 김치찌개가 맛있으라고 제가 뼈에 살코기를 꽤 많이 붙여 놨어요(번역: 절대 회 뜨는 기술이 부족해서 살이 많이 남아 있는 게 아니라는 뜻).”
“잘했어요. 살 많은데 뭐.”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방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방어편. 인터넷 캡처

방어 회 한 점이라도 손님에게 더 내야 하는 식당이라면 난리가 났겠지만 여기는 ‘사계’. 김치찌개가 맛있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큼지막한 방어 뼈를 통으로 넣고 한참을 끓이나 싶더니 어느새 뼈에서 뽀얀 국물이 우러나고 있다. 된장과 고추장을 살짝 푼 뒤 묵은지를 넣고 팍팍 끓이면 끝. 생선인데도 고기로 끓인 김치찌개 못지않게 농후한 맛이다. 뼈에 붙은 방어 살을 살살 긁어 먹는 맛도 그만. 국물을 계속 들이켜게 된다. 그야말로 소주를 부르는 맛.

방송이 끝난 뒤에도 13㎏의 대방어는 회로, 찌개로, 구이로 다양한 매력을 발산했다. 대방어는 회 못잖게 구운 살도 기막힌 맛. 겨울 방어가 별미라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차가운 바다에 적응하기 위해, 그리고 둘째로 3~4월의 산란기에 대비하기 위해 한껏 몸에 기름을 채우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전갱이과로 외모까지 비슷한 부시리는 산란기가 6~7월이라 겨울보다는 여름에 제맛이 난다. 하도 겨울 방어, 겨울 방어하니까 부시리는 뭔가 떨어지는 생선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겨울 한 철 동안은 방어가 부시리보다 맛있지만, 그 나머지 철에는 오히려 부시리가 횟감으로 더 좋은 생선이에요. 사실은 가격도 겨울 빼면 부시리가 더 비싸죠.” 김지민씨의 설명. 날이 풀리면 부시리에도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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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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