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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받은 무허가 건축물? 불통 행정이 부른 기묘한 분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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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호 26면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김포 장릉 앞에 솟아 오른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모습. 원래 장릉이 바라보고 있어야 할 계양산이 고층 아파트로 가려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김포 장릉 앞에 솟아 오른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모습. 원래 장릉이 바라보고 있어야 할 계양산이 고층 아파트로 가려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층을 잘라라.”

문화재청은 지난해 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김포 장릉’ 앞 아파트에 이런 처분을 내렸다. 조선왕릉의 경관을 훼손한 대가는 컸다. ‘왕릉 뷰’ 아파트 수백여 가구가 완공되기도 전에 철거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지정 철회될 수 있다는 여론의 우려도 거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와 약 22만명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결국 문화재청의 표현대로, 아파트 전면 철거도 아닌 일부 절단은 감내해야 할 최소한의 조치인 걸까.

지난달 27일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내 아파트 신축 현장을 찾았다. 문제가 되는 아파트는 대방건설·대광건영·금성백조가 건설 중인 단지 세 곳(44개 동, 3400여 가구)이다. 이 중에서도 김포 장릉의 보호구역 500m 안에 지어져 문화재청이 ‘무허가 건물’이라고 지목한 아파트는 19개 동, 790가구에 달한다.

세 단지는 올해 6~9월 입주를 목표로 막바지 내·외부 공사에 한창이었다. 철거 논란은 여전하고 문화재청은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법원은 건설사들이 낸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 공사는 재개됐다. 문화재청은 재항고한 상태다.

법원, 문화재청 공사 중지 명령 제동

김포 장릉 앞에 솟아 오른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모습. 원래 장릉이 바라보고 있어야 할 계양산이 고층 아파트로 가려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김포 장릉 앞에 솟아 오른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모습. 원래 장릉이 바라보고 있어야 할 계양산이 고층 아파트로 가려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아파트는 건설사들의 ‘도둑 공사’로 뚝딱 지어진 불법 건축물이 아니다. 주택건설 인·허가권자인 인천 서구청의 승인을 받았다. 서구청 수십 개의 부서에서 관련 영향평가를 하고, 전문가 검토를 거친 뒤 건설 인·허가를 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내에서 지어질 수 없는 고층 아파트가 정식 인·허가를 받고 지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인천 서구청은 허가하고, 문화재청은 허가하지 않았다는 기묘한 아파트의 탄생이다.

누구의 잘못일까. 공사가 마무리 단계인 만큼 과연 이 아파트 단지가 준공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도 눈길을 끈다. 준공 승인이 나야 입주할 수 있다. 허가받은 공사라는 입장인 서구청 측은 “건설사들이 사용 검사를 신청하면 애초 허가받은 대로 공사를 잘했는지 살핀 뒤 준공 승인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무허가 공사라는 입장인 문화재청 측은 “소송 중인 상황인데 지자체에서 준공 승인을 내겠다니 이해가 안 된다”고 발끈하고 있다. 인천 서구청과 문화재청의 공방은 결국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전망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일어나기 힘든, 역대급 행정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포 장릉은 조선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의 무덤이다.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함께 등재됐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아들 인조의 무덤과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의 무덤 그리고 계양산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배치가 독특하다. 특히 왕릉이 조산(祖山) 역할을 하는 계양산을 바라보고 있어 명당으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한국인의 세계관이 반영된 장묘문화와 이런 공간 배치가 보존·관리되고 있는 점을 주요 등재 사유로 꼽았다.

문화재청의 아파트 일부 층수 철거 지침에 입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뉴스1]

문화재청의 아파트 일부 층수 철거 지침에 입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아파트 건설로, 장릉의 주요 경관이 훼손됐다.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지난해 5월이다. 문화재청이 다른 현장을 살피러 나갔다가 우연히 문제의 아파트 단지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게 확인한 내용은 이렇다.

“김포 장릉 인근에서 아파트를 지으려던 또 다른 사업자가 김포시로부터 수차례 계획안을 반려당했다. 문화재에 영향을 미치니 층수를 낮추라는 지적이었는데, 사업자 입장에서는 장릉 지척에 빼곡히 들어선 검단신도시의 고층아파트를 보니 억울한 거다. 결국 문화재청에 민원을 넣었고 문화재청은 그제야 알게 됐다. 아파트 골조공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김포 장릉 앞에 조성 중인 인천 검단신도시는 15년 전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계획됐다. [뉴스1]

김포 장릉 앞에 조성 중인 인천 검단신도시는 15년 전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계획됐다. [뉴스1]

왕릉과 검단신도시는 최단 거리가 450m일 정도로 가깝지만, 관할 지자체가 다르다. 김포 장릉은 김포시에 있다. 검단신도시는 인천시 관할이다. 2기 신도시인 검단신도시는 2007년 지구지정이 됐고, 장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검단신도시 개발과 장릉 보존은 별개의 이슈였다. 국토부와 인천시, 문화재청 등이 협의해 현재 모습의 검단신도시 지구단위계획을 정했다. 고층 아파트의 층수와 용적률 등이 이때 정해졌다. 신도시 사업 시행자인 인천도시공사는 이 지구단위계획을 토대로 2014년 왕릉이 있는 김포시에 문화재 현상변경신청 허가를 받았다. 문화재 인근에 20~25층 규모의 아파트가 지어진다는 것을 승인받은 셈이다.

여기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변화가 생긴 것은 2017년이다. 문화재청은 그해 1월 문화재 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해 문화재 보존지역 500m 안에 짓는 높이 20m 이상 건축물은 개별 심의하겠다고 고시했다. 현재 문제가 되는 3개 단지는 왕릉에서 500m 안에 있어 이 규정에 딱 걸리게 됐다. 기존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20~25층 높이의 아파트를 짓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규제사항은 인천 검단신도시 관할 지자체와 사업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고시내용을 왕릉이 있는 김포시에만 알렸다. 통상적으로 이런 변경사항이 생기면 문화재청은 관할 지자체인 인천시에 해당 내용을 통보하고, 토지이용계획확인서에 지형도면과 함께 관련 규제 사항을 올려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이 명백한 행정 공백이 오늘날의 결과를 만들었다. 강화된 규제사항을 인지하지 못한 인천도시공사는 2017년 9월 건설사들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도 된다며 토지를 팔았다. 그리고 2019년 2월 인천 서구청은 원래 지구단위계획대로 아파트 건설을 허가했고, 건설사들은 11월 착공했다. 인·허가권자의 ‘무지(無知)’도 문제다. 업계에서는 “왕릉이 근처에 있는데 인·허가 과정에서 누군가 한 번만이라도 문화재청의 문화재 공간정보서비스(GIS)를 살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훈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내 규제사항이 지자체에 제대로 고시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중앙부처와 지자체 그리고 지자체끼리의 불통과 칸막이 행정 탓에 입주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소를 잃으면 외양간을 고치게 된다. 정부는 이제서야 GIS 상의 규제내용을 토지이용규제정보서비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부처 간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철거해도 계양산 조망 가물가물

사고는 터졌고, 유네스코 문화재 지정 철회까지 거론되니 어찌 됐든 수습해야 한다. 문화재청은 왕릉의 계양산 조망을 위해 문제가 되는 세 단지의 층수를 낮추라고 통보했다. 만약 2002년 왕릉 앞에 지어진 아파트(삼성 쉐르빌)의 높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209가구를 철거해야 한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시뮬레이션 결과, 이를 철거하든 안 하든 간에 왕릉 혼유석 앞에서 계양산은 끄트머리가 보일락 말락 한다. 세 단지 뒤에 더 높은, 29층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탓이다.

문화재청의 공사 중지 명령을 무력화시킨 법원도 경관은 이미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02년에 건축된 아파트(삼성 쉐르빌) 등으로 인해 일부 경관이 손상된 상태였던 데다가 이 사건 처분 대상 건물 뒤편으로도 이미 준공되었거나 공사 중인 고층 아파트들이 존재해 설령 이 사건 처분대상 건축물이 원상회복 조치 등에 따라 철거되더라도 조망은 일정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이 강조하는 왕릉 경관을 지키려 했다면 왕릉과 계양산 사이에 들어서는 검단신도시 계획을 처음부터 면밀히 살폈어야 했다. 이에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법으로 정한 문화재보존지역 500m 선 밖의 건축물에 대해 문화재청이 제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가 좋은 도시다. 하지만 이를 위한 법과 현실이, 제도와 행정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김포 장릉 상태가 알려주고 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금껏 개발 지향적으로 도시를 만들어 와, 도시 안 유산에 대한 중장기적 대비책이 부족하다”며 “무조건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유산별로 보존해야 할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고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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