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식투자 ‘120조원 시대’]국내 증시에 ‘배신’ 당한 개미들, 롤러코스트 장세에도 나스닥으로 몰렸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2.02.05 00:02

업데이트 2022.02.0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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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호 08면

SPECIAL REPORT

정보기술(IT) 업종에서 일하는 회사원 백남정(53)씨는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이른바 ‘서학개미’ 3년차다. 2020년부터 여윳돈 2000만원을 짬짬이 미국 주식에 투자해 지금껏 40%대의 수익률을 냈다. 그가 500달러대일 때 매입한 테슬라 주가는 지금 890달러대다. 백씨는 “너무 올라서 비싸다고 할 때 가치투자를 염두에 둔 게 주효했다”며 “장세가 안 좋은 요즘은 보유 주식의 절반 이상을 팔고 관망 중이지만 향후 중국이나 베트남 증시에 투자해볼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를 뒤흔든 해외 증시 투자 열풍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미국의 통화 긴축 본격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임박 등 우려로 하락장인 상황에서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는 “지금이 매수 타이밍 아니냐”는 서학개미들의 글로 홍수를 이룬다. 지난 설 연휴 때도 이들은 미국 기술주(株) 등을 쓸어담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은 테슬라 주식 3억6221만 달러(약 4340억원)어치 등을 집중 순매수했다.

“해외 주식 버티면 결국 수익 나더라”

이들 사이에서 지난해까지 축적된 ‘해외 주식이 국내 주식보다 낫더라’ ‘흔들리지 않고 버티면 결국 수익이 나더라’는 인식이 워낙 강한 데다, 2020년 잘나갔던 국내 증시가 지난해 또 다시 박스권(특정 구간 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상)에 갇히면서 ‘동학개미’들의 피로감이 커진 상황이라 올해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예탁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모든 투자자의 외화주식을 포함한 외화증권 보관금액(투자잔액)은 1년 4개월 만에 두 배인 1005억9000만 달러(약 120조원)가 됐다. 서학개미들의 투자 러시에 외화주식 보관금액이 779억1000만 달러(약 93조원)로 전년 동기보다 65.6% 증가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힘입어서다.

지난해 외화주식 결제금액 역시 3984억7000만 달러(약 477조원)로, 전년보다 100.9%나 급증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올 1월(첫째~셋째 주) 하락장 때 서학개미들은 하루 평균 전월보다 16.9% 증가한 1억2598만 달러(약 1509억원)어치의 미국 주식을 순매수하면서 여전한 화력을 보여줬다. 미국 주식은 지난해 보관금액이 677억8000만 달러로 전체 외화주식의 87%라는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홍콩 4%, 일본 3.5%, 중국 3%). 2020년 373억4000만 달러에서 81.5% 급증했다. 종목별로는 ▶테슬라(154억6000만 달러) ▶애플(50억3000만 달러) ▶엔비디아(31억2000만 달러) ▶마이크로소프트(22억7000만 달러) 등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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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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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개인들이 국내 주식을 내내 외면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동학개미의 국내 증시 순매수액은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해 76조원가량으로 전년(약 63조8000억원)을 넘어선 역대 최고치였다. 삼성전자와 현대모비스, 카카오 등의 우량주가 집중적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상반기에 매수세가 몰리면서 나온 수치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매도 우위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개인 순매수액이 수조원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박스권에 갇혀 답답한 코스피 탈출 행렬

지난해 코스피 지수는 2944.45로 시작해 2977.65로 막을 내렸다. 미국 나스닥(1만2698.45→1만5644.97)은 물론이고 일본 니케이225(2만7258.38→2만8791.71), 중국 상해종합(3502.96→3639.78)보다도 못한 지수 상승률이었다. 코스피에 1년 투자해 은행권 예·적금 금리만도 못한 1.1% 수익률을 거둘 동안 나스닥으로 눈을 돌렸다면 23.2%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얘기다. 동학개미들이 하반기 들어 금리 인상 등 악재까지 나오자 미련 없이 해외 증시로 향한 이유다. 악재가 같더라도 전망이 좋고 우상향 흐름이 안정적이던 해외 증시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학개미인 주부 한아름(38)씨는 국내 증시의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씨는 회사원이던 2015년 무렵 중국 증시 투자로 발을 들인 뒤 2017년 이후로는 미국 증시에만 장기 투자 중이다. 지금은 애플 주식 2억원어치 등 부동산을 제외하고 5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했다. 한씨는 “국내 증시는 시가총액이 다른 주요국 증시 대비 너무 작아 기관과 외국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같은 하락장이더라도 변동성과 위험성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기금과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각각 25조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하자 최고 우량주인 삼성전자마저 계속 타격을 입은 게 대표적이다.

동학개미들은 제도적 한계 때문에 국내 증시가 자본력 약한 개인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신모(47)씨는 “공매도 제도가 손질되지 않는 한 국내 증시는 기관과 외국인의 놀이터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팬데믹으로 2020년 3월 전면 중단 조치됐다가 지난해 대형주를 중심으로 일부 재개된 국내 공매도 제도에서 기관·외국인은 상환 요구를 받을 때만 응하면 돼 사실상 상환 기간에 제한이 없다. 하지만 개인은 90일 안에 의무적으로 상환(만기일에 상환 후 다시 빌려야 기간 연장 가능)해야 한다. 그나마도 개선된 제도가 지난해 11월 시행되기 전까진 상환 기간이 60일 이내였다.

개미가 불리한 구조적 한계 개선해야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제조업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상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들보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더 취약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강대석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발 악재에 유가가 오르면서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증시가 상대적으로 더 약세를 보인 것”이라며 한국과 함께 최근 하락폭이 심했던 인도 증시를 예로 들었다. 이외에 국내 상장사들이 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영진이 보유 지분을 상장 직후 대량 매도하면서 주가 폭락을 유발, 논란을 낳았던 카카오페이가 대표적 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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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미국 등 해외 증시가 상승장일 동안 국내 증시는 지지부진한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개미들 사이에 투자심리도 양극화됐다”며 “당분간 미국 증시 등으로 투자 수요가 계속 이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미국발 통화정책 변화에 따른 ‘테이퍼 텐트럼(선진국의 통화 긴축이 신흥국의 통화 가치와 증시 급락을 일으키는 현상)’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외국인들을 한국보다 선진국 증시로 향하게 만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선 최근 해외 증시 역시 변동성이 커졌기에, 서학개미들의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의 경우 하루 지수 변동폭의 2~3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 등 변동성이 한층 큰 상품도 많다. 지난해 말부터 이런 상품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서학개미라면 지금쯤 적잖은 손실을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월가의 유명 투자 전략가 데이비드 로치 인디펜던트스트래티지 창업자는 1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최근 변동성이 커진 점을 고려하면 미국 증시가 약세장에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투자자들이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금처럼 글로벌 고용 부진이 이어질 경우 투자심리 개선도 지연될 것”이라며 “해외 증시가 2차 하락장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형 ETF도 인기, 중국 전기차 ETF 2조4000억 순매수 1위

개인 투자자의 해외 주식에 대한 관심은 상장지수펀드(ETF)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해 국내 ETF 순매수 상위 10종목 가운데 해외형이 7개에 달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 투자자는 국내 상장 ETF를 9조7347억원 순매수했다. 연간 기준 사상 최대다. 개인 순매수 1위는 중국 전기차 산업에 투자하는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 ETF로 2조4005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는 지난해 개인의 코스피 순매수 6위인 현대차(2조3788억원)를 넘는 규모다.

이어 TIGER 미국테크TOP10 INDXX, TIGER 미국나스닥100, TIGER 미국S&P500도, TIGER 차이나항생테크 등이 인기를 끌었다. 모두 미국의 나스닥지수 등 해외 주가지수를 추종하거나, 미국·중국 등 해외 주식시장 상장 기업을 전기차 등 테마별로 담아 놓은 상품이다.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 ETF는 중국의 전기차·배터리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성장성이 높은 해외 테마나 미국·홍콩 지수에 투자하려는 개인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해외형 ETF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ETF는 특성상 여러 종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분산투자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고 싶지만 해외 주식시장에 대해 잘 모르는 투자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이점이다. 같은 이유로 해외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ETF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미국 주식에 직접 투자한 개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테슬라였고, 그 다음이 TQQQ(ProShares UltraPro QQQ)라는 ETF였다. 이 상품은 미국 나스닥 100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레버러지 ETF다. 이 외에도 국내 개인 투자자는 S&P500지수를 따라가는 SPDR S&P500 ETF 등을 대거 매입했다.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미국에 상장된 TQQQ는 지난해 약 83% 올랐고, 국내 증시의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는 지난해 수익률이 약 60.5%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해외형 ETF의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국내·외 증시에 상장된 해외형 ETF를 담으면 이런 수고를 덜 수 있다”며 “특히 인공지능(AI)이나 전기차, 2차전지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신기술을 주도하는 해외 기업에 대한 투자 열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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