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 두부, 대파만 있어도 10분 내 뚝딱 안주 만들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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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호 19면

[선데이]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씨의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 그는 연희동 자택에서 요리 교실을 운영한다. 전민규 기자

[선데이]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씨의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 그는 연희동 자택에서 요리 교실을 운영한다. 전민규 기자

프랑스어로 결혼을 뜻하는 마리아주(Marriage)는 술과 음식의 궁합을 말한다. 한 잔의 술과 한 입의 요리가 어울려 서로가 가진 최상의 맛을 끌어올리는 순간, 식탁의 행복 역시 최고가 된다.

『히데코의 사적인 안주 교실』 낸 나카가와 히데코 #홈술족에 딱 맞는 '간단 안주 요리' 50개 레시피 #"최고의 술친구는 남편, 최고의 안주는 한우"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하는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55)씨가 얼마 전 『히데코의 사적인 안주 교실』이라는 책을 냈다. 이미 15권이 넘는 책을 출판한 요리사이자 수필가인 그가 ‘사적인’ 안주 레시피를 따로 만든 건 그가 자타공인 마리아주를 너무나 사랑하는 ‘찐’ 애주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출판한 책에 안주 레시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굳이 ‘사적’이라는 제목을 달아 책을 낸 건 ‘힘을 빼고’ 만든 요리들이기 때문이에요. 요리 선생님으로서 누군가에게 레시피를 완벽하게 가르쳐줘야한다는 의무감이 컸다면, 이번에는 실제로 내가 너무 좋아해서 술 마시다 출출하면 만들어 먹는 요리들만 모아봤어요.”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씨가 최근 출간한 책 '히데코의 사적인 안주 교실'의 앞뒤 표지. 사진 중앙북스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씨가 최근 출간한 책 '히데코의 사적인 안주 교실'의 앞뒤 표지. 사진 중앙북스

앞치마를 한 푸근한 모습이 아닌, 화장품 광고모델같은 감각적인 모습으로 맥주·와인·사케·위스키를 즐기는 '사적인' 모습을 표지 사진으로 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책의 부제는 ‘술 취해도 만들 수 있는 히데코식 초간단 안주 50가지’. 기본 전제는 '안주를 만들기 위해 술자리 흐름을 깨지 말 것'이었다. 술 좀 마셔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술 마시다가 안주 사오느라, 혹은 안주 만드느라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술자리의 흐름은 바로 깨진다. 애주가라면 용납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래서 술 마시다가도 혹은 술에 취해서도 설렁설렁 후다닥 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들만 추렸다.

“햄, 두부, 대파, 고추장아찌 등 냉장고에 있는 평범한 식재료에 올리브 오일이나 기본 양념만 첨가해서 뚝딱 해먹을 수 있는 요리들이에요. 약간 술에 취해 알딸딸한 상태에서도 쉽게 5분~10분 만에 만들 수 있는 것들이죠.”

책은 크게 3개의 파트로 구성돼 있는데 첫 번째가 ‘간단해도 맛은 포기할 수 없는 홈술 안주’다. 정어리통조림을 프라이팬에 담고 피자치즈를 덮어 중간불에서 4~5분 구운 다음 파프리카 파우더를 뿌려낸 ‘정어리 모차렐라구이’, 물기를 뺀 담백한 두부에 딜·방아·대파 등을 잘게 다져 올린 후 올리브오일과 참기름을 올린 ‘허브 두부 카나페’, 옥수수통조림에 채 썬 청양고추를 넣고 버터와 간장으로 볶아낸 ‘옥수수 간장 버터볶음’ 등이다. 두 번째 파트 ‘홈술의 품격을 높여주는 폼 나는 안주’, 세 번째 파트 ‘뭘 좀 아는 애주가들을 위한 명품 안주’도 미리 손질해놓은 재료들만 있다면 조리 시간은 10분이 넘지 않는다.

[선데이] 일본인 요리사 나카가와 히데코 인터뷰. 전민규 기자

[선데이] 일본인 요리사 나카가와 히데코 인터뷰. 전민규 기자

아버지가 알려준 화이트와인의 맛

“화이트 와인을 가장 좋아해서 한창 때는 와인 두 병도 거뜬했는데 요즘은 주량을 물으면 와인 한 병 정도라고 얘기하죠.”(웃음)

모든 음식과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술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에게 처음 배운 술이라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그가 화이트와인을 처음 마신 날은 초경을 경험한 13살 때였다. 어머니는 일본 전통식대로 팥밥을 해주셨고, 아버지는 고기요리와 함께 제대로 된 와인 잔에 화이트와인을 따라주셨다고 한다.

히데코씨의 아버지는 1890년 설립된 유서 깊은 호텔 ‘도쿄 임페리얼 호텔’의 프랑스 요리사였다. 1970년대 당시 서독 주재 일본대사관의 전속 요리사로 근무한 경험도 있다. 지난해 출판한 책 『아버지의 레시피』는 78세가 될 때까지 꼬박 60년 간 프랑스 요리사로 일한 아버지가 전해준 레시피 노트를 기본으로 히데코씨가 가족의 추억을 함께 담아 펴낸 에세이다.

“어렸을 때는 요리사인 아버지가 너무 싫었어요. 양복 입고 출근하는 친구들의 아버지와는 달랐으니까요. 주말이면 식당으로 출근해야 하는 아버지 때문에 가족 소풍 같은 기억도 거의 갖지 못했죠.”

아버지처럼 요리사로 살기 싫어서 스페인으로, 독일로 떠돌며 기자·번역가로 살던 딸은 한국에 정착하고 어느새 아버지가 따라주신 한 잔의 와인과 맛을 기억하며 요리연구가로 살고 있다.

한우 육수는 최고의 식재료

‘찐’ 애주가이지만 히데코씨가 절대 안 하는 게 있다. 바로 ‘혼술’이다. 직업 특성상 맛집을 찾아가 '혼밥'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때도 마리아주를 위해 와인 한 잔 정도만 곁들일 뿐이다.

“‘혼술’도 싫지만 안주 없이 술 마시는 것도 싫어해요.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늘 술 좀 마셔야겠다’ 할 때면 늘 어떤 요리를 할까 먼저 생각하죠. 그리고 지인들을 불러서 음식과 술을 함께 먹죠.”

히데코씨는 술을 마시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했다. 혼자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유튜브가 재미없어서 잘 안하게 되는 것도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 13년째 요리 클래스를 집에서 운영하는 것도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집에 초대한 것처럼 함께 요리하고, 맛있는 술 한 잔 곁들여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 담긴 레시피들도 내 앞에 앉은 친구와 술을 마시다 더 깊게 더 길게 더 맛있게 이야기를 나눌 때 딱 좋은 요리들이다.

그가 꼽는 최고의 술친구는 남편이다. 무인도에 갈 때 딱 한 사람만 술친구를 데려갈 수 있다면 누구냐고 질문했더니 망설임 없이 남편을 꼽았다.

“같이 살아온 세월만큼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니까요. 물론 우리도 30~40대는 회사원인 남편도 저도 너무 바빠서 함께 술 마실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주말 저녁에 같이 한 잔 하는 시간이 늘었고, 이젠 그 시간을 제대로 즐기게 됐죠. 주말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화이트 와인 또는 샴페인을 한 병 마시고,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위스키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죠. 남편이 위스키 매니아라서 최근 10년 사이 남편에게서 위스키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한국 전통의 맛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일본인 최초로 한복려 선생이 운영하는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수강했던 히데코씨는 한식을 정말 좋아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술안주로 꼽는 것도 역시 한우였다.

“좋은 술을 보면 제일 먼저 한우가 생각나요. 저는 특히 한우 구이용 고기의 7~8mm 정도 되는 얇은 두께와 소금만 살짝 뿌려서 먹었을 때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진짜 좋아해요. 한식 세계화 메뉴로 왜 잡채·불고기·비빔밥만 소개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모든 한식 요리의 기본이 되는 쇠고기 육수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맛이거든요. 멸치육수는 일본에도 있지만, 양지 등을 써서 만든 쇠고기 육수는 한식만의 독특한 맛을 알리기에 최고에요. 함께 어울리는 재료들의 본연의 맛까지 살려주죠. 외국인 친구들에게 떡국, 만둣국을 해주면 정말 좋아하죠. 물론 한우는 위스키·화이트와인·샴페인·사케 전 세계 어떤 술과도 잘 어울려요.”

히데코의 간단 안주 레시피

[선데이] 일본인 요리사 나카가와 히데코 인터뷰. 히데코씨가 만든 두부요리. 전민규 기자

[선데이] 일본인 요리사 나카가와 히데코 인터뷰. 히데코씨가 만든 두부요리. 전민규 기자

허브 두부 카나페
재료: 딜·방아·대파 등 잘게 썬 허브, 올리브유, 소금 약간
만들기
1 두부는 키치타월이나 행주로 싸서 물기를 뺀다.
2 분량의 허브를 잘게 다진 후 올리브유와 소금을 넣고 섞는다.
3 대파는 잘게 다져 찬물에 담가 매운 맛을 뺀 다음, 물기를 제거하고 참기름과 굵은 소금을 섞는다.
4 두부를 먹기 좋게 8등분 한 후 만들어둔 토핑을 올린다.
히데코's tip : "서양식 허브 토핑 위에는 올리브유, 대파 토핑 위에는 참기름을 더 뿌려서 먹으면 풍미가 진해져요."

[선데이] 일본인 요리사 나카가와 히데코 인터뷰. 히데코 씨가 옥수수로 만든 안주요리. 전민규 기자

[선데이] 일본인 요리사 나카가와 히데코 인터뷰. 히데코 씨가 옥수수로 만든 안주요리. 전민규 기자

옥수수 간장 버터볶음
재료: 옥수수 통조림 1개, 청양고추 2개, 버터·간장 1큰술씩
만들기
1 통조림 옥수수는 체에 걸러 물기를 쫙 뺀다.
2 청양고추는 모양대로 동그랗게 채 썬다.
3 달군 팬에 버터를 녹이고, 중간 불에서 옥수수와 청양고추를 2분 정도 볶는다.
4 간장으로 간을 하면서 한 번 더 볶는다.
히데코's tip : "옥수수의 달큰한 맛과 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이 어우러진 강추 메뉴. 맵기는 청양고추로 조절하세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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