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엽서
손장원 지음
글누림
100년 훌쩍 지난 엽서를 들여다본다. 정확히는 ‘엽서에 새겨진 사진’을 본다. 좌우 90도, 180도로 돌려본다. 몸이 사진 속 풍경으로 들어간 듯, 전지적 시점을 시도해 보고 3D로 전환해 해 보기도 한다. 선입견에 사로잡힐까 싶어 아예 시선을 떼기도 한다.
저자는 이렇게 차근차근 20년간, 최대 142.4㎜×90.9㎜ 네모 속에서 근대 인천의 밑그림을 건진다. 이 밑그림은 당시의 지도·문헌·신문기사와 합쳐지고 작가의 답사와 버무려진다. 그리하여 퍼즐이 맞춰진다. 100여 년 전 인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여정이 쏠쏠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엽서가 등장 한 건 1900년. 프랑스인 샤를 알레베크(한국명 안례백)가 만들었다. 한국에서 엽서의 대중화에 나선 이들은 일본인들이었다. 당시 신문에서는 유망 업종으로 꼽았고, 서울과 인천의 제법 큰 엽서 상점들이 돈을 긁어모았단다.
저자는 엽서 사진을 통해 인천의 역사를 탐방한다. 금파(金波)라는 곳이 있었다. 인천 최초의 카페다. 1920년대에 세워진 4층 건물에 들어섰다. 여기서 누군가,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 중앙동4가 쪽 사진을 찍어 엽서에 담았다. 100여년간을 흐르고 흘러 이 엽서들이 저자의 손에 들어간다.
가만, 두 개의 엽서는 같은 장소를 담았는데, 가로수의 굵기가 다르다. 늘어난 나무 나이테만큼의 세월, 도시는 변했다. 저자는 “엽서는 도시의 발전 혹은 쇠퇴를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됐고, 현재의 스마트폰 사진도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변한다.
사진 분석으로만 끝났으면 섭섭했을 터. 유소년 야구 경기를 담은 엽서 사진에는 ‘한·일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국 아이들이 입은 남루한 유니폼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인천 야구가 얼마나 알차게 성장했는지를 풀어낸다.
송월동에는 왜 굴뚝이 이곳저곳에 솟아 있었을까. 솔가지를 잔뜩 지게에 짊은 맨발의 아이는 어떻게 출입금지 구역인 일본인 거주지에 들어갔을까. 인천향교 앞 아이들이 매달려 있던 철봉의 정체는? 만삭의 몸으로 악덕 해운기업 인천기선의 배에서 떨어진 곡물을 주우며 연명하던 김간난의 운명은?
엽서 사진으로 역사와 사람 이야기를 진하게 우려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엮는 ‘역사의 길’ 시리즈 중 일곱 번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