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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빙하 밑 수천만년 고립된 400여 호수 속 생명체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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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남극 빙저호 연구하는 과학자들 

27일 인천 송도 극지연구소 김옥선 책임연구원이 빙하밑에 숨겨진 호수 '빙저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 20220127

27일 인천 송도 극지연구소 김옥선 책임연구원이 빙하밑에 숨겨진 호수 '빙저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 20220127

지구 역사 비밀의 문 열어줄 열쇠, 빙저호

 연평균 기온 섭씨 영하 55도, 최저 영하 98.6도를 기록한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 해발고도가 3488m이르지만, 산봉우리도 계곡도 없다. 사방 눈보라 외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설원의 공간, 러시아의 남극 과학기지인 보스토크 기지다. 보스토크 기지 아래 3700m 두께의 빙하 맨 아래쪽엔 얼지 않은 민물로 채워진 남극 최대 빙저호(氷底湖·subglacial lake)인 ‘보스토크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보스토크호는 우리나라 수도권 면적보다 넓은 1만5690㎢에 이르고, 평균 수심도 344m에 달한다.

남극대륙 빙하 아래에는 이런 빙저호가 400여 개에 이른다. 두께가 수㎞에 달하는 빙하 아래에 얼지 않은 호수가 어떻게 숨어 있을까. 흡사 공상과학(SF) 영화 속 외계 얼음행성과 같은 호수엔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외부 세계와 차단된 채 수천만 년의 세월을 보낸 빙저호는 지구 역사 속 비밀의 문을 열어줄 열쇠인 셈이다. 지난달 21일 극지연구소는 허순도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이곳에서 러시아와 공동연구를 시작했다고 알려왔다. 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본부는 이런 남극 빙상과 빙저호의 세계를 연구하는 곳이다. 지난달 27일 인천 송도 극지연구소를 찾아 빙저호를 연구 중인 김옥선 박사를 만났다.

빙저호 연구는 극지연구소 남극 탐사팀 K루트사업단의 연구 대상 중 하나다.

빙저호 연구는 극지연구소 남극 탐사팀 K루트사업단의 연구 대상 중 하나다.

빙저호는 어떻게 생겨난 건가.  
지열 때문에 빙하가 녹아서 호수가 생길 수도 있고, 화산 활동으로 마그마가 올라와 빙하를 녹였을 수도 있다. 빙하가 움직이면서 바닥의 토양하고 마찰이 일어나게 되면서 빙하를 녹이기도 한다. 이렇게 생겨난 물이 얼지 않는 이유는 압력 때문이다. 두께가 수㎞에 달하는 빙하가 누르는 하중 때문에 아래쪽에 엄청난 압력이 생겨 얼음이 아닌 액체 상태의 호수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러시아 연구진에 따르면 보스토크호에 미치는 압력은 대기압의 350배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수치는 아니다.)

남극에 빙저호가 400여 개가 된다고 하는데, 수㎞ 두께 빙하 아래에 있는 호수를 어떻게 확인하나.
인공위성과 항공탐사, 탄성파 탐사 세 가지 지구물리 탐사를 통해 빙저호의 존재와 크기·수심 등을 알아낸다. 가장 먼저 인공위성으로 고도계를 이용해 빙하 표면의 변화를 탐지할 수 있다. 빙하 아래 빙저호는 일반적으로 수면이 높아졌다가 낮아졌다하는 변화를 보인다. 이때 호수 위 빙하 역시 일정하게 높낮이의 변화를 보인다. 둘째, 이런 지역을 대상으로 항공기에서 60㎒의 초단파(VHF)를 발사해 반사돼 돌아오는 파장으로 빙저호가 있는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해당 빙저호 위 빙하표면에서 탄성파 탐사를 하면 자세한 빙저호의 형태를 규명할 수 있다.
남극 대륙 두께 수km 얼음 아래 400여개의 빙저호가 있다.

남극 대륙 두께 수km 얼음 아래 400여개의 빙저호가 있다.

빙저호 탐사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1960년대 초중반 러시아 과학자 크로포트킨과 조티코프가 남극 빙하 아래에 물이 존재할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 후 1970년대 러시아팀을 주축으로 해 보스토크 기지 근처에서 약 3309m로 예상되는 빙하시추를 시작했다. 1996년에 보스토크 빙하 시추과정에서 약 4000m 빙하 아래에 거대한 빙저호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최초로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보스토크 호수의 발견이었다. 2013년에는 미국이 세계 최초로 윌란스 빙저호의 물과 바닥 침천토 채취에 성공해,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보스트크 빙저호는 어떤 곳인가.
호수의 길이가 약 250㎞, 최대 수심 900m, 평균 수심 432m로 남극 빙저호 중 최대 규모다. 남극의 빙저호는 사이사이에 물길이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보스토크호는 유입 유출이 전혀 없는 완벽하게 고립된 호수다. 그만큼 탐사 가치가 풍부한 호수다. 러시아는 1990년부터 드릴을 이용해 시추작업에 들어갔다. 2011년 러시아는 얼음과 물의 경계면까지 도달했다고 발표했지만, 얼음을 뚫자마자 압력에 의해 호숫물이 시추공으로 분출되고, 시추에 사용한 부동액이 빙저호를 오염시켰다는 의혹을 받게 됐다. 시추공 내부로 올라온 뒤 얼어버린 빙하코어에서 미생물을 발견하긴 했지만 결국, 빙저호 물과 퇴적토는 채취하지는 못했다.
미국 과학자들이 남극 휠란스 빙저호를 관찰하기 위해 빙하 표면에 시추공을 뚫었다. [사진 노던일리노이 대학]

미국 과학자들이 남극 휠란스 빙저호를 관찰하기 위해 빙하 표면에 시추공을 뚫었다. [사진 노던일리노이 대학]

빙저호를 눈으로 확인하려면 드릴로 뚫을 수밖에 없지 않나.
드릴은 과거 기후 등을 알 수 있는 빙하코어도 확보하고, 구멍을 뚫을 수도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보스토크의 사례에서 보듯 오염 문제가 제기됐다. 이후로 미국과 영국은 각각 휠란스와 엘스워스 빙저호를 확인하기 위해 청정 열수(熱水)공법을 사용했다. 먼저 시추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막기 위해 0.2㎛(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입자나 미생물을 걸러내는 여과과정을 거치고, 이후 자외선(UV) 살균 처리를 한다. 이렇게 멸균 처리된 물을 탱크에서 끓인 뒤 분사해 빙하를 녹이고 구멍을 내게 된다. 이때 녹은 물은 펌프를 이용해 위로 뽑아내고, 다시 청정열수 과정을 반복하면서 수㎞ 아래까지 구멍을 유지해 나간다.
뭘 볼 수 있었나.
현재까지 발견된 건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 정도다. 빙저호 속 미생물은 1500만~3000만 년간 빙하 아래에서 외부환경으로부터 격리돼 있었던 것으로 추측돼 외부 생물과 다르게 독자적으로 진화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빙저호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빙저호 연구는 햇빛이 차단된 빙하 아래 고압의 극한 환경, 영양소도 거의 없는 호수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아주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또한 빙저호 바닥의 퇴적물은 과거 기후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현재의 기후위기나 코로나19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를 빙저호 퇴적토에 기록돼 있는 과거 지구 환경을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준비 또는 대비할 수 있는 단서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목성의 4대 위성 중 하나인 유로파는 표면이 얼음 지각으로 이뤄져있고, 그 아래에 액체 상태의 바다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구조가 남극 빙저호와 유사해, 생물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된다.

목성의 4대 위성 중 하나인 유로파는 표면이 얼음 지각으로 이뤄져있고, 그 아래에 액체 상태의 바다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구조가 남극 빙저호와 유사해, 생물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된다.

달탐사도 가는 마당인데, 빙저호 유인탐사는 안하나.
빙저호를 연구하는 연구자 중 그 누구도 계획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는 무인잠수정을 투입해 호수 내부를 관찰하는 정도다. 유인탐사가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빙하 800~3000m 아래로까지 내려가는 것부터 도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빙저호는 굳이 사람이 들어가서 탐사를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유일한 생명체는 미생물이고, 미생물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유인탐사에 의미 부여를 하자면 빙저호에 잠수해봤다 정도인데, 의미가 있나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간 우주탐사의 의미도 ‘가봤다’가 하나의 의미이긴 하니 영 말이 안 되는 것 같진 않다. 또 늘 그렇듯 새로운 발견은 엉뚱한 호기심에서 시작되니 만약 누군가가 진행을 하게 된다면 거기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지 상당히 기대가 된다.
태양계 속 행성의 위성 속에도 빙저호와 같은 환경이 있다고 들었다.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는데.
목성의 위성 유로파,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와 타이탄에 그런 곳이다. 과학자들은 이들 위성의 지표면에 거대한 빙하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 아래에는 빙저호와 같이 거대한 바다가 형성돼 있고, 생명체가 있거나 생겨날 환경을 제공할 가능성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지구상에 생물이 최초로 출현한 때는 약 35억~40억년 전이며, 육상이 아닌 바다에서 생명체가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로파의 얼음 지각 아래 지구의 빙저호와 비슷한 바다가 있다면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가 유로파를 탐색하기 위한 수중탐사 로봇을 만들어 알래스카 얼음 밑에서 실험적으로 가동해본 사례도 있다.
극지연구소는 빙저호 관련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극지연구소는 미국의 제2 빙저호 탐사 국제 프로젝트인 SALSA(Subglacial Antarctic Lake Scientific Access)에 공동 연구책임자로 참여해 메르세르 빙저호의 물과 퇴적토에서 단일세포 유전체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첫 번째 빙저호인 휠란스에서는 어떠한 미생물이 존재하는지와 그 환경 특성에 대하여 연구가 수행되었다면,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 세계 최초로 빙저호에서 서식하는 미생물 유전체 1377점을 획득해 분석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엘스워스 호수와 러시아의 보스토크 호수에서의 공동연구를 지구화학과 퇴적학으로 확장하는 노력을 진행 중에 있다. 그와 동시에 남극에서의 또 다른 빙저호 발견을 위한 지구물리 탐사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장보고기지 인근의 데이비드 빙하 약 2000m의 하부에 존재하는 호수에 대한 지구물리 연구가 활발하게 수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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