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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여사 피라미드 방문…청와대, 이집트에 비밀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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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청와대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이집트 순방에 동행했던 김정숙 여사의 피라미드 방문 일정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3일 파악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월 22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동 3개국 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월 22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동 3개국 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집트측이 관광 활성화를 위해 대통령 부부의 피라미드 방문을 요청해와 고민 끝에 이집트 문화부 장관이 동행한 김 여사의 단독 방문이 이뤄졌다”며 “일정은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논의돼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비공개였지만, 공식 일정이었기 때문에 피라미드 방문 사실 등은 청와대의 공식 기록으로 남겼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5~22일 진행된 문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순방은 출국 전부터 야권으로부터 “코로나 정국에서 강행된 외유성 순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집트를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월 20일 오후(현지시간) 카이로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이집트 한국문화 홍보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들의 활동을 격려했다. 행사가 끝난 뒤 김 여사와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카이로=김성룡 기자

이집트를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월 20일 오후(현지시간) 카이로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이집트 한국문화 홍보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들의 활동을 격려했다. 행사가 끝난 뒤 김 여사와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카이로=김성룡 기자

청와대는 이후 중앙일보의 보도로 순방 중 수행단 다수가 코로나에 확진된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이를 은폐했고, 이에 더해 김 여사가 피라미드를 홀로 둘러본 사실까지 공개하지 않다가 들통난 모양새가 됐다.

청와대는 김 여사의 동선을 알리지 않기 위해 이집트에 직접 방문을 비밀로 하자고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집트를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월 20일 오후(현지시간) 카이로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이집트 한국문화 홍보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들의 활동을 격려했다. 김 여사가 자하드 딜라 알리가 쓴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고 있다. 카이로=김성룡 기자

이집트를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월 20일 오후(현지시간) 카이로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이집트 한국문화 홍보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들의 활동을 격려했다. 김 여사가 자하드 딜라 알리가 쓴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고 있다. 카이로=김성룡 기자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집트 유적지 방문에 대해 어떤 음해와 곡해가 있을지 뻔히 예상돼 (부부 동반 방문 요청을) 거절했다. (김 여사의 방문을)비공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집트가) 의아해했고, 나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없었다”는 글을 올렸다.

탁 비서관은 그러면서도 김 여사의 동선 은폐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정말 애쓴다”며 비꼬았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여사가 1월 16일 (현지시간) ‘한국의 날’ 부대행사로서 두바이엑스포장 내 쥬빌리공원에서 열린 ‘한국의 날 K-POP 콘서트’에 입장하면서 관중들에게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에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두바이=청와대사진기자단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여사가 1월 16일 (현지시간) ‘한국의 날’ 부대행사로서 두바이엑스포장 내 쥬빌리공원에서 열린 ‘한국의 날 K-POP 콘서트’에 입장하면서 관중들에게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에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두바이=청와대사진기자단

순방의 실무를 담당했던 외교부 당국자들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일제히 “일정을 미처 알지 못했다”거나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답변을 내놨다. 외교가에선 “일정 조율은 물론 공개 여부까지 현지에서 급박하게 이뤄졌거나, 청와대로부터 함구령이 내려졌다는 뜻”이란 말이 나왔다.

특히 이집트가 대통령 부부를 피라미드에 초청한 이유가 관광 활성화인데,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일정 자체는 비공개하더라도 사후에까지 비밀에 부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초청국 영부인의 방문을 비밀로 하는 것은 관광 산업 홍보라는 목적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뉴질랜드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을 찾아 헌화한 뒤 마오리전시관을 관람했다. 문 대통령에 앞서 김정숙 여사가 교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뉴질랜드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을 찾아 헌화한 뒤 마오리전시관을 관람했다. 문 대통령에 앞서 김정숙 여사가 교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외교부 1차관과 의전장을 지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통상 한 국가의 장관이 외국 정상 일정을 수행했는데도 이를 비공개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김 여사의 피라미드 방문을 비공개로 하자고 요청한 것은 이집트의 초청 취지마저 무색하게 한 외교 결례”라고 말했다.

야당의 공세도 거세졌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선대위 정세분석실장은 페이스북에 “김 여사의 버킷리스트를 채우기 위한 졸업여행이었다”며 “수행단에서 확진자까지 발생해 대통령이 자가격리하는 마당에 굳이 피라미드를 구경하고야 마는 김 여사님”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공무원을 몸종처럼 부린 김혜경씨나, 대통령 정상회담을 자신의 버킷리스트 채우는 사적용도로 악용하는 김 여사나 도긴개긴”이라고 비판했다.

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코이카가 참여하고 있는 시엠립 앙코르와트 프레아피투 사원 복원 현장을 시찰하고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기자단

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코이카가 참여하고 있는 시엠립 앙코르와트 프레아피투 사원 복원 현장을 시찰하고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기자단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자처해 “피라미드 방문에 대한 이집트의 정중한 요청을 거절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외교적 결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비공개 결정에 대해선 “양국의 협의에 의한 것”이라는 말 외에 한국측의 요청 여부 등은 추가로 설명하지 않았다.

청와대 내에선 “알려질 수밖에 없는 사실을 무리하게 감추려다 과거 유사 논란까지 모두 비판당할 근거를 만들어준 셈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는 그간 ‘외유성 순방’ 논란이 일때마다 강경 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지난해 9월 한미 유해 상호 인수를 위해 미국 하와이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히캄 공군기지에서 데이비드 이게 하와이 주지사 내외로부터 전통 화환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9월 한미 유해 상호 인수를 위해 미국 하와이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히캄 공군기지에서 데이비드 이게 하와이 주지사 내외로부터 전통 화환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특히 2019년 6월 본지가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앙코르와트, 타지마할, 프라하, 베트남 호이안, 바티칸 성베드로성당 등 김 여사가 방문한 장소를 소개하자, 청와대는 극히 이례적으로 칼럼에 대한 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듬해 소송에서 패소하자 관련 사안에 대해 침묵해왔다.

이번 중동 순방과 관련해서도 탁 비서관은 지난달 24일 '관광 목적의 순방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자 “전혀 그럴(관광할) 시간이 없었다”며 “여행 같은 순방을 다녔던 야당과 내막을 모르는 일부 모자란 기자들이 순방만 다녀오면 관광이네, 버킷리스트네 하는 말들을 쏟아내서 아주 지겹게 듣고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2018년 11월 체코ㆍ아르헨티나ㆍ뉴질랜드 순방 등 과거 순방까지 새삼 구설에 오르고 있다.

2018년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이 집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이 집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당시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전 동유럽인 체코를 방문했다. 남미 순방 때면 급유 등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동포 간담회 등을 했던 전례와는 완전히 다른 동선에 대해 야권에선 “외유를 위한 무리한 일정”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체코 대통령의 초청에 따른 방문”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문 대통령이 체코를 방문했을 때 체코 대통령은 이스라엘 순방으로 나라를 비운 상태였다.

G20 정상회의 중간 기착지인 체코 프라하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프라하 성과 비투스 성당을 둘러 봤다. 꼼꼼하게 성당 내부를 둘러 보다 뒤쳐진 김 여사가 "우리 남편 어디갔냐'며 급히 뛰어 문 대통령에 다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다. 강정현 기자

G20 정상회의 중간 기착지인 체코 프라하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프라하 성과 비투스 성당을 둘러 봤다. 꼼꼼하게 성당 내부를 둘러 보다 뒤쳐진 김 여사가 "우리 남편 어디갔냐'며 급히 뛰어 문 대통령에 다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당시 일정은 체코 총리와의 환담이 사실상 전부였다. 특히 프라하 비투스 성당을 관람한 김 여사는 문 대통령이 이미 성당을 빠져나간 것도 모른채 홀로 관람을 계속하다, 뒤늦게 “우리 남편 어디 있나요”라며 밖에서 기다리던 문 대통령에게 황급히 뛰어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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