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300억으로 3조원…“기술과 시장 연결하는 다리 돼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최은경 기자 중앙일보 기자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16)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카이스트 출신 이용관 대표가 2014년 설립한 창업 육성 기업이다. 이 대표는 “초기 투자금을 지원받기 어려운 혁신 스타트업의 창업과 성장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카이스트 출신 이용관 대표가 2014년 설립한 창업 육성 기업이다. 이 대표는 “초기 투자금을 지원받기 어려운 혁신 스타트업의 창업과 성장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회사 직원들과 단체로 스키장에 갔어요. 한창 슬로프를 내려오는데 전화가 계속 오는 겁니다. (상대방이) ‘아니, 오늘 납품하기로 해놓고 상품을 왜 안 보내냐’는 거예요. 알고 보니 몇 달 전에 접수해놓고 서로 누군가 하겠지 하고선 잊어버린 거였어요. 너무 황당한 일이었지요.”

지난달 26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이용관(51) 블루포인트파트너스(블루포인트) 대표는 20여 년 전 창업 초기 경험을 얘기하며 지금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이 대표는 “초기 스타트업의 경영 체계가 빈약하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사업은 시스템이다. 기술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사과정 때 반도체 장비업체 창업
회사 매각한 300억 종잣돈 삼아
2014년 투자회사 설립한 ‘공대 형’
“상장 통해 신뢰성 키워 브랜드 확장”

투자 기업 223곳, 시장 가치 3조원대

블루포인트는 혁신기술 스타트업을 전문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다. 블루포인트는 ‘블루오션의 출발점’이라는 뜻으로, 창업 여정의 시작부터 함께 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사명이다. 블루오션은 차별화 전략과 저비용 구조를 통해 경쟁이 없는 신시장을 창출하는 경영전략을 뜻한다.

이 회사는 본사가 대전에 있다. 지금까지 육성한 기업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23개다. 이 가운데 상장을 준비 중인 회사가 8개다. 예비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기업)으로 꼽히는 에스투더블유랩(사이버 위협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휴톰(수술 인공지능 플랫폼) 등이 블루포인트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지원, 육성하는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를 모두 더하면 3조2000억원에 이른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어떤 회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어떤 회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블루포인트는 기술 스타트업이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필요한 인력을 소개하거나 경영 목표를 설정하는 데 조언해주는 식이다. 이 대표는 “적어도 창업가들이 몰라서 실수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게 1차 목표”라고 소개했다.

투자 기업 생존율 91% … 평균의 4.5배

실제로 블루포인트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생존율은 91.5%에 이른다. 기술 스타트업의 5년 내 생존율이 평균 20% 안팎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4~5배가량 되는 셈이다. 이 대표는 투자 기업의 생존율이 높은 이유로 노하우의 축적을 꼽았다. 블루포인트는 물론 육성 스타트업이 서로 ‘비법’을 공유하면서 생존력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블루포인트 육성 스타트업인 인투코어테크놀로지의 엄세훈 대표는 “벤처 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초기 기술 기업에 대한 이해가 높고 의지가 강한 것이 블루포인트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김판건 미래과학기술지주 대표는 “특히 대전에 본사가 있어 카이스트를 중심으로 많은 기술 기업을 발굴했으며 직접 창업한 경험으로 ‘공대 형’이라고 불리며 초기 기업을 잘 이끌어주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물리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이 대표는 박사 과정 중인 2000년 동료들과 반도체 스타트업인 플라즈마트를 창업했다. 플라즈마트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플라즈마의 발생·측정 제어장치를 제공하는 회사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 제품을 공급했다.

이 대표는 2012년 이 회사를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반도체 장비업체 MKS에 매각했다. MKS는 1년 넘게 플라즈마트 인수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매각 금액은 300억원이었다. 이 대표는 이 돈의 일부를 후배들이 창업한 스타트업들에 투자했다. 직접 회사를 경영하며 쌓은 노하우도 알려줬다. 그러다 2014년 블루포인트를 창업했다.

지난 2020년 기준 한국의 연구개발(R&D) 인력은 55만8000여 명으로 세계 5위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4.81%로 이스라엘(4.93%)에 이어 2위다. 하지만 혁신기술 스타트업 창업의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창업과 투자·육성을 모두 경험한 이 대표는 “뛰어난 기술을 사업화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내에서는 기술 기반의 창업보다 서비스 플랫폼 창업에 치중했다는 평가가 있다.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스타트업이 접근하기 쉽고, 특히 속도와 세대 분석 등에서 고객 경험 혁신을 이루기 유리하다. 배달회사의 로봇 도입, 치킨 맛의 개인화처럼 서비스 산업에도 기술이 스며들고 있다.”
최근에 주목받는 기술 창업 분야로 어떤 것이 있나.
“모빌리티나 클린테크(친환경기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분야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다. 디지털 전환 역시 모든 기업이 고민하는 분야다. 메디컬·헬스케어 분야에도 많은 기업이 도전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학과 전자통신연구원(ETRI) 같은 과학 기술 관련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창업 수준은 어느 정도로 보나.
“기술 자원은 많다. 아쉬운 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사업화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책자금 100억원을 투자했을 때 기술사용료로 돌아오는 비율을 보면 우리나라가 1% 내외, 미국이 7% 정도다. 원래 효율성이 낮은 편이지만 좀 더 산업과 연결하기 위해 다양한 생태계가 더 노력해야 한다.”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현재는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기업가정신을 키워서 직접 창업하라는 식이다. 이런 그림을 바꿔야 한다. 이제 기술 인력은 기술에 중점을 두게 하고, 비즈니스를 전담하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는 인재가 늘어나야 한다. 가령 대학교수가 기술을 개발했다면 대학원생이 이 기술로 창업할 수 있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비즈니스에 대한 수용력과 학습력도 좋아서다. 출연연은 이 산업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가 밖에서 들어와야 하는데 연결 과정이 쉽지는 않다. 그런 과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액셀러레이터가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역할은 시장이 담당해야 한다.”
R&D 수준은 높은데 왜 기술 창업 성공 사례는 많지 않나.
“과거에는 연구소가 대기업에서 필요한 기술을 선행적으로 개발하는 역할을 했다. 대기업은 사업을 실행할 사람이 많고, 방향성도 비교적 분명했다. 하지만 혁신 기술을 가져다 제로(0)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스타트업과 (대기업과) 협업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 시도해야 한다.”
이를 한국 기술 스타트업의 약점이라고도 볼 수 있나.
“일차적으로는 스타트업의 모든 문제의 책임과 공은 창업가에게 있다. 사업화가 부진했다는 것은 결국 창업가도 준비가 덜 됐다는 얘기다. 창업가가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빨리 키워야 하고, 생태계 차원에서 비즈니스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그다음이다.”
이런 약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연구소의 시니어 연구원들이 직접 창업한 기업은 대부분 잘 안 되더라. 이분들은 계속 성공하는 삶을 살았다. 새로운 기술을 발견해 논문으로 주목도 많이 받았다. 평생 학계에만 있었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을 흡수해 팀을 운영해야 하는데 누가 적합한 인물인지도 잘 모른다. 목표 설정 자체도 어렵다. 이분들에게 비즈니스에 대한 역량을 심어서 시장으로 오게 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창업가가 산업과 시장이 중요하고, 그것을 담당하는 인력에 큰 역할을 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실질적인 작업은 액셀러레이터가 할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술과 시장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멘토링과 비즈니스 전문가 매칭으로 기술을 사업화하고, 자본을 지속적으로 유입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블루포인트의 지원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으로 3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 개발업체인 토모큐브 사례를 들었다. 홍기현 토모큐브 대표의 말이다. “토모큐브는 기획 창업 형태로 만들어진 스타트업이다. 기술을 보유한 박용근 KAIST 물리학과 교수가 창업을 바랐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블루포인트의 소개로 제가 비즈니스 담당으로 합류하면서 팀이 구성됐다. 박 교수는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현재 토모큐브는 외부 자본을 추가로 유치하면서 개당 1억원 안팎의 현미경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하버드대 등 20여 개국 50여 개 대학·연구소에 공급했다. 올해 예상 매출은 64억원이다.

블루포인트는 올해 상장할 계획이다. 상장에 성공하면 국내 액셀러레이터로는 처음이다. 이 대표는 “(상장을 통해) 회사의 신뢰성과 체계성을 높여 외부 자금 규모를 늘리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브랜드 가치를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용관 대표

1971년생.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물리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 반도체 장비 업체 ‘플라즈마트’를 창업해 2012년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MKS에 300억원에 매각했다. ‘공대 형’으로 불리며 후배들의 창업 고민을 해결해주다 2014년 기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를 창업했다. 대학 시절 과외와 조교 활동으로 체력과 전달력을 키웠다.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