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요정 다녀갔나요, 상고대 활짝 핀 덕유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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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향적봉으로 향하는 산 사면이 상고대로 하얗게 뒤덮였다. 오른쪽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덕유산은 관광 곤돌라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겨울에 찾지만 상고대는 온도, 습도, 바람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만 볼 수 있다.

덕유산 향적봉으로 향하는 산 사면이 상고대로 하얗게 뒤덮였다. 오른쪽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덕유산은 관광 곤돌라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겨울에 찾지만 상고대는 온도, 습도, 바람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만 볼 수 있다.

2021년 국립공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 22개 국립공원은 가을철(9~11월) 탐방객이 31.7%로 사계절 중 가장 많았다. 반면 겨울이 더 인기인 산도 있었다. 덕유산이 대표적이다. 겨울 풍광이 빼어난 데다 곤돌라 덕에 정상부까지 편하게 갈 수 있어서다. 그러나 정상석 기념사진만 찍었다고 덕유산을 다 본 건 아니다. 향적봉부터 중봉까지 이어지는 덕유평전을 놓치면 안 된다. 무엇보다 향적봉을 지나야 인적이 뜸해져 호젓한 겨울 산을 만끽할 수 있다.

15분 만에 정상으로 순간 이동

등산객이 상고대 터널을 지나는 모습. 덕유산 눈꽃 산행에 나서려면 장비를 잘 챙겨야 한다. 아이젠과 등산 스틱은 필수이고, 신발 안으로 눈이 스미는 걸 막기 위해 스패츠까지 챙기면 좋다.

등산객이 상고대 터널을 지나는 모습. 덕유산 눈꽃 산행에 나서려면 장비를 잘 챙겨야 한다. 아이젠과 등산 스틱은 필수이고, 신발 안으로 눈이 스미는 걸 막기 위해 스패츠까지 챙기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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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겨울 산행은 코스를 어떻게 짜느냐가 중요하다. 곤돌라를 왕복으로 타고 향적봉만 훌쩍 다녀와도 좋지만, 이건 산행이 아니다. 아무리 추워도 후끈 달아오른 몸으로 한 발 한 발 눈길을 걷고, 청량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키는 겨울 등산의 맛을 느끼려면 몸을 부려야 한다. 향적봉~중봉~동엽령 코스를 선택한 이유다.

20일 오전 9시 무주리조트 스키장 개시 시간에 맞춰 곤돌라를 탔다. 평일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대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15분 만에 설천봉(1525m)에 닿았다. 곤돌라에서 내리자마자 아이젠을 착용했다. 설천봉에서 정상인 향적봉(1614m)까지는 600m 거리지만, 쉽사리 덤벼선 안 된다. 길이 미끄러운데다, 산 아래보다 훨씬 춥다. 방한 준비는 기본이고, 설천봉 매점에서 곤돌라 아이젠을 유상 대여해주니 빌려서라도 차는 게 좋다.

나뭇가지에 맺힌 상고대가 바닷속 산호 같다.

나뭇가지에 맺힌 상고대가 바닷속 산호 같다.

이날은 운이 좋았다. 나무에 상고대가 잔뜩 맺혀 있었다. 바닷속 산호를 연상시킬 정도로 눈부셨다. 눈이 왔다고 상고대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일교차가 크고 습도가 90%를 넘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야 한다.

백암봉에서 먹은 컵라면 ‘꿀맛’

정상부에서 만난 우람한 ‘주목’. 죽어서도 천 년을 산다는 나무다.

정상부에서 만난 우람한 ‘주목’. 죽어서도 천 년을 산다는 나무다.

향적봉 오르는 길에 눈부신 상고대가 장관이었다면, 정상부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광은 막힘이 없어 시원했다. 동쪽으로 가야산 상왕봉, 남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상부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리를 떴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파는 커피를 마시고 잠시 숨을 골랐다.

향적봉에서 중봉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멋진 나무가 많았다. 덕유산 국립공원 깃대종인 구상나무,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는 주목이 곳곳에서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20분 만에 중봉에 닿았다. 큰 나무는 없고 사방으로 탁 트인 은빛 덕유평전의 모습이 기막혔다. 덕유산국립공원 박진 자연환경해설사는 “해발 1500m 아고산(亞高山) 지대인 이곳은 봄엔 진달래와 철쭉, 여름엔 원추리와 비비추가 만개한다”고 설명했다. 하얀 눈꽃으로 덮인 겨울 풍광도 봄·여름에 뒤지지 않았다. 중봉에서 다시 20분을 걸어 백암봉에 닿았다. 쉼터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았다.

영남과 호남을 잇던 길

동엽령에서 안성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점점 키 큰 나무가 나타난다.

동엽령에서 안성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점점 키 큰 나무가 나타난다.

백암봉에서 40분을 걸으니 동엽령(1270m)이 나왔다. 동쪽으로 내려가면 경남 거창군 북상면, 서쪽으로 내려가면 전북 무주군 안성면이다. 안성면 쪽으로 내려가는 서쪽 사면에 눈이 더 많아서 겨울 산행 코스로 제격이다. 해발 고도가 낮아질수록 하얗던 세상이 갈색으로 바뀌었다. 점차 키 큰 나무들이 나타났고, 새 소리와 물소리도 들려왔다. 하산 길이 따분하지 않았다.

덕유산 산행

덕유산 산행

느긋하게 길을 걷고 있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다가온 산행객이 있었다. 헐레벌떡 뛰는 이들도 있었다. “여기가 동엽령 코스 맞죠? 안성 탐방 지원센터까지 얼마나 걸려요?” 인터넷 산악회 사람들이었다. 덕유산국립공원 윤희도 안전관리반장은 “덕유산은 곤돌라가 있어서 쉽게 생각했다가 길을 잃거나 저체온증을 겪는 등산객이 의외로 많다”며 “자기 체력에 맞는 코스를 고르고 시간 계산을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할 즈음 해가 산등성이에 걸려 있었다. 휴식시간까지 합쳐 6시간 반을 걸었다. 정확히 2만 보가 찍혔다. 무릎이 시큰했다.

여행정보

덕유산 어귀 무주구천동에서 맛본 능이버섯탕.

덕유산 어귀 무주구천동에서 맛본 능이버섯탕.

무주리조트 관광 곤돌라는 주말에만 예약제로 운영한다. 스키 시즌에는 오전 9시부터 출발한다. 설천봉에서는 오후 4시 30분 마지막 곤돌라가 내려간다. 어른 편도 1만4000원, 왕복 1만8000원. 이번에 걸은 코스는 출발지와 도착지가 달랐다. 이 코스대로 걷는다면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콜택시를 타고 출발지로 가면 된다. 산에서 간단하게 요기했다면 하산 후에는 든든히 먹는 게 좋겠다. 구천동계곡 쪽에 식당이 많다. 버섯 요리를 잘하는 ‘산들애’에 가봤다. 혼자라면 능이숫총각버섯탕(1만6000원), 여럿이라면 능이버섯샤브샤브(2만1000원)를 추천한다. 무주군청 옆 ‘금강식당’ 어죽(8000원)도 든든한 보양식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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