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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용호의 시시각각

단일화, 윤석열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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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불교리더스포럼 제5기 출범식'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기념촬영이 끝난 뒤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불교리더스포럼 제5기 출범식'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기념촬영이 끝난 뒤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노무현·정몽준 단일화(2002년)는 대선을 24일 앞두고 이뤄졌다. 대선 46일 전 노 후보가 제안해 논의가 시작됐다. 협상 과정은 20일이 더 걸렸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2012년)는 대선 26일 전 매듭지었다. 안 후보가 후보직에서 물러나면서였다. 문 후보도 이미 선거 45일 전에 단일화를 제안했다. 스케줄상으로 대선 20여 일 전에 단일 후보가 나오려면 윤석열(국민의힘)·안철수(국민의당) 후보가 지금쯤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오늘로 대선은 34일 남았다. 지난해 4·7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오세훈·안철수 단일화 협상이 선거 29일 전에 시작됐지만 무게가 대선과 천양지차란 점을 고려하면 지금도 늦었다.
실제 단일화가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정치평론가들이 “단일화는 물 건너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고 하는가 하면, 우상호 민주당 선대위 총괄본부장도 한 방송에서 “시간이 없어 단일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의힘에선 윤 후보의 지지율이 회복하자 ‘자강론’이 나왔다. 자강론은 말 그대로 단일화 없이 이길 수 있다는 거다. 자강론자들은 단일화가 돼도 안 후보 지지층이 윤 후보 쪽으로 흡수되는 비율이 낮아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 치열한 룰, 지분 싸움을 벌여야 해 성사도 어려운 데다 그 과정에서 역풍을 맞아 지지율이 빠질 것을 우려한다. 누구보다 단일화에 굳게 선을 긋고 있는 이는 이준석 대표다. 그는 지난달 29일 “설 연휴 전이 마지노선”이라며 단일화 불가능을 주장했다. 심지어 “단일화하는 안철수가 싫다”며 감정까지 드러냈다. 두 사람은 한때 바른미래당에서 공천을 두고 갈등한 적이 있고, 그 뒤에도 사사건건 부닥쳤다. 이 시점에 감정적 대응으로 단일화를 비토하는 건 ‘내부 총질’과 ‘후보 흔들기’에 이은 이 대표의 또 다른 기행이다. 원희룡 선대위 정책본부장도 “추울 때는 난로가 필요했는데 봄이 왔다. 과연 이 난로가 필요한 건지”라고 했는데, 선대위 분위기의 일단을 잘 말해 준다.
과연 자강론이 통할까. 사실 한 달 전 10%를 넘은 안 후보의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다면 국민의힘은 단일화에 목을 맸을 거다. 오히려 ‘김건희 악재’를 딛고 윤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면서 단일화 얘기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홍준표 의원의 말처럼 “단일화를 안 하면 탄핵 대선처럼 2, 3등 싸움”이란 말은 틀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설 연휴 조사에선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가 다시 좁혀지는 양상이다. 윤 후보로선 단일화 없는 승부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1~2주면 판이 뒤집어질 정도로 급하게 요동치는 게 요즘 대선 판세인데 지지율이 조금 앞섰다고 자강론이 나온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야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야당은 선거를 지면 그만인 게임으로 여긴다. 여당은 선거를 지면 죽는 전쟁으로 생각한다. 야당 수준이 딱 그 모양”이라고 말했다.

아직 단일화에 부정적이라는데 #국민의힘에선 자강론 얘기 나와 #복잡하고 험난한 단일화 가능할까 #

결국 윤 후보의 선택에 달렸다. 아직 적극적이지 않다. 주변에선 윤 후보가 현재로선 단일화에 부정적이란 말도 나온다. 혹시 안 후보와의 차이를 더 벌리기 위해선 지금 단일화 얘기를 해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을 하는 걸까.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상대가 있어 결심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안 후보는 여전히 “내가 정권교체의 주역”이라고 한다. 예상하건대 단일화의 길은 무척 복잡하고 험난할 거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혔다고 해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건재하다. 여권은 선거에 관한 한 일사불란하다. 여태껏 10년이란 정권교체 주기가 5년으로 당겨지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다. 미국도 2차대전 이후 연임에 실패한 대통령은 네 명뿐이다. 무엇보다 막판 어떤 변수가 지지율을 흔들지 모른다. 현재 상황은 결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다. 쉽지 않을 단일화, 정치 경험이 적은 그가 과연 하려고는 할지, 한다면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신용호 Chief 에디터

신용호 Chief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