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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죽방멸치’를 위하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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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수려한 자연경관과 다양한 먹거리가 있어 보물섬이라고도 불리는 경남 남해에는 전통 어업 방식으로 잡는 멸치가 있다. ‘남해죽방멸치’다.

남해 죽방렴은 5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살이 빠르고 좁은 물목의 조류가 흘러들어오는 쪽에 길이 10m 안팎의 참나무 기둥 수백 개를 박아 ‘V’자형으로 울타리를 만든다. 밀물 때 바닷물과 함께 밀려온 멸치가 썰물 때 이 V자형 울타리에 남게 되는 원리를 이용해 멸치를 잡는 방식이다. 울타리에는 그물이 처져 있고, 통로 끝에 불룩한 통발이 설치돼 있어 멸치 등 물고기가 그 안으로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놨다. 이런 죽방렴 방식으로 잡은 멸치에만 남해죽방멸치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 남해군 지족해협 23곳에 이런 죽방염이 설치돼 있다.

남해 지족해협에 설치된 죽방렴. 김경빈 기자

남해 지족해협에 설치된 죽방렴. 김경빈 기자

최근 남해군 지족해협에 있는 죽방렴 어업이 해양수산부의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GIAHS) 등재 신청 대상에 선정됐다. 앞으로 죽방렴 어업이 유엔식량기구(FAO)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세계농업유산은 유엔식량기구가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농업시스템과 생물 다양성 및 전통 농어업 지식 등을 보전하기 위해 2002년부터 운영해 온 제도다. 2020년까지 22개국 63개의 세계농업유산이 등재됐다.

국내에서는 완도 청산도 구들장 논, 제주 밭담, 하동 전통차, 금산 전통 인삼 등 농업 분야 4건이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어업 분야에서는 제주 해녀 어업이 2018년 12월, 섬진강 재첩잡이 손틀어업이 2020년에 등재를 신청했고, 현재 심의가 진행 중이다.

남해 죽방렴 어업은 역사적 차별성과 우수성, 자연 생태적 가치 등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12월 21일 ‘국가중요어업유산’ 제3호로 지정된 상태다. 앞으로 GIAHS 기술위원회의 서류평가와 현장방문, 세계중요농업유산 집행위원회 심의 등 추가 절차를 거쳐 세계농업유산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남해군 관계자는 “죽방렴이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에 성공하면 지역 관광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존 4개의 세계농업유산과 현재 심의가 진행 중인 2개 세계농업유산, 여기에 남해 죽방렴까지 세계농업유산에 포함되면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농업시스템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국가 차원에서 이런 전통을 보존·계승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유산을 연계해 관광 자원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전통 유산이 창조적으로 재해석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알려지면 세계적인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은 노래(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나 드라마(‘오징어 게임’) 등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검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