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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번째…유리문 너머 백발 어머니에 큰절, 아들은 울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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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원 면회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아들 부부가 백발의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 경북 칠곡군]

양로원 면회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아들 부부가 백발의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 경북 칠곡군]

“유리문 넘어 계시는 어머니.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해 가슴이 미어집니다.”

대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정주식(63)씨는 설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부인과 함께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있는 양로원 ‘성모애덕의집’을 찾았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 김남례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씨는 따뜻한 밥한끼는 커녕 어머니의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에 따른 강화된 거리두기 조치 탓이다. 그는 유리문으로 막혀 있는 면회실에서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한참 얼굴을 지켜보다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아들의 눈물을 유리문 건너에서 지켜본 백발의 어머니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올해도 건강 또 건강해야 한다”고 덕담을 건넸다고 한다. 정씨는 "식사는 물론 손을 잡고 서로의 온기조차 한번 느끼지 못했다"며 "아버지 차례를 지내기 위해 집에 오시고 싶어 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절 때만이라도 미리 코로나 검사를 해서 이상 유무를 확인한 다음 시설에 계신 어머니·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거나, 최소한 면회실에서 가족들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게 하는 게 왜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30대인 김씨의 손자는 "지난해 할머니가 양로원에 건강 문제로 들어가셨는데, 그러고 제대로 뵙지를 못했다. 코로나가 얼른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번 설은 코로나19 발생 후 다섯 번째 맞는 명절이다. 지난해 추석 때 한차례를 제외하고, 사실상 강화된 코로나 관련 거리두기 조치로 정씨와 같은 자식들의 이른바 '사모곡'이 잇따르고 있다.

이금미 성덕의집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사태 전 설 연휴에는 어르신들이 자식 집으로 외출과 외박을 나갔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 안타까운 문의 전화만 쇄도하고 있다. 그래서 영상통화를 최대한 자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로원 명회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아들 부부가 백발의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덕담을 듣고 있다. [사진 경북 칠곡군]

양로원 명회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아들 부부가 백발의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덕담을 듣고 있다. [사진 경북 칠곡군]

양로원 등 시설에 입소한 어르신들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설을 맞아 그리운 자식을 만나고 눈에 아른거리는 손자를 한번 안아볼 것이란 기대감이 있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아서다. 경북지역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단절감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짜증을 내고 고함을 치는 어르신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일 경북지역에서 발생한 일일 확진자는 777명, 대구는 1147명이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급격히 번지면서, 국내 전체로는 역대 처음으로 하루 2만 명이 넘는확진자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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