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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12시 '딱멘' 먹었대"…요즘 회장님 온 몸은 '치명적 유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들. [인스타그램 캡처]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들. [인스타그램 캡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국내 기업이 만든 대나무 칫솔(닥터노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치실로는 이름에 ‘에코’(환경)가 들어간 외국 구강용품 회사의 제품(젠틀 플로스)을 쓴다.

집에서는 종종 미국 스포츠웨어 브랜드(언더아머)의 반소매 셔츠를 입는다. 여러 대체유제품 중에선 발효단백질로 만든 바닐라 아이스크림(브레이브 로봇)을 ‘1등’으로 친다. 밤 12시에 ‘제주 딱새우라면(딱멘)을 몰래 끓여 먹은 적도 있다.

이 같은 최 회장의 ‘소비 생활’은 그가 지난해 6월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최 회장이 올리는 사진과 글에 호응하며 그가 쓰는 다른 제품도 궁금해 했다. “전기 면도기 쓰시나요, 일반 면도기 쓰시나요” “와인 추천 부탁드려요” 등 질문이 쏟아졌다. 최 회장은 이때마다 “주로 전기 면도기 씁니다” “무더운 날에 덕혼이나 케익브레드 같은 나파 쇼비뇽블랑이 좋습니다”라며 일일이 답했다.

회장님 ‘추종 소비’ 늘어

대기업 총수들이 쓰는 제품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더 나아가 ‘추종 소비’하는 이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SNS를 통해 총수들에게 직접 제품 관련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알아낸 뒤엔 실제 그 제품을 써본 경험을 SNS에 공유하기도 한다.

그 덕에 해당 제품은 가만히 있어도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 2000년대 들어 대기업 총수들이 SNS를 활용하기 시작하며 보였던 PI(President Identity·최고경영자 이미지) 마케팅에서 더 나아가 ‘총수=소통하는 인플루언서’로까지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대중의 관심을 오래전부터 활용해온 이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10년 전(2012년) 인스타그램에 가입하는 등 ‘SNS 문법’에 익숙한 그는 사진을 올릴 때부터 등장하는 제품 정보를 함께 적을 때가 많다. ‘피자는 잭슨 피자’(지난해 11월)라거나 ‘나이키 *** 레트로 하이 구입’(지난달 19일), “롯데 가서 3만1000원짜리 고든 램지 버거 먹고 옴”(지난달 9일) 식이다. 지난해에도 골프를 치고 있는 자신의 영상을 올린 뒤 모자와 셔츠, 바지, 신발, 선글라스, 골프채 제조사를 함께 적기도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 [인스타그램 캡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 [인스타그램 캡처]

총수들의 SNS 계정 팔로워도 겹쳐 

이런 대기업 총수의 SNS를 팔로잉하는 이들은 다른 대기업 총수에게도 관심이 많다. 실제 최태원 회장 계정의 팔로워(6만9000여 명) 중 66%는 정용진 부회장 계정의 팔로워(77만7000여 명)이기도 하다.

최태원 회장 계정의 팔로워(6.9만명) 중 66%는 정용진 부회장 계정의 팔로워(77.7만명)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캡처]

최태원 회장 계정의 팔로워(6.9만명) 중 66%는 정용진 부회장 계정의 팔로워(77.7만명)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캡처]

직접 SNS를 하지 않아도 우연한 제품 노출이 SNS 등을 통해 퍼져 ‘파워 소비자’로서의 영향력을 보여준 대기업 총수도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함께 구찌 매장을 찾은 배상민 롯데 디자인경영센터장이 SNS에 올린 사진 속에서 9만7000원짜리 친환경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2000켤레 한정으로 제작됐던 해당 신발은 완판됐다.

서울 한남동 구찌 가옥을 찾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배상민 센터장 인스타그램·롯데그룹]

서울 한남동 구찌 가옥을 찾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배상민 센터장 인스타그램·롯데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9년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사진 속에서 2만원대 카시오 시계를 차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4년 해외 출장길에 언더아머 티셔츠를 착용한 모습이 노출돼 해당 제품이 ‘이재용 운동복’으로 주목받았다.

2019년 10월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국가비전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연합뉴스]

2019년 10월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국가비전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연합뉴스]

브랜드 노출 효과 기대…언더아머는 고전    

대기업 총수의 선택을 받은 기업들의 반응은 어떨까. 권용승 닥터노아 사업개발본부장은 최태원 회장이 이 회사 칫솔을 사용한 배경에 대해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SK 관련 회사에 우리 제품을 전달한 적은 있는데 어떻게 최 회장이 쓰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의 제품 포스팅에 따른 트래픽과 매출 증감을 추적하기는 어렵지만 영향력 있는 분이 노출해주신 만큼 포스팅을 보고 저희 제품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께 도움이 됐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의외로 고전 중인 브랜드도 있다. 최태원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입고 있는 사진이 노출된 스포츠웨어 언더아머의 한국법인은 지난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에 올라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까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일각에선 비판적 “그린 워싱일 수도”

총수들의 제품 노출에 특정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친환경 제품을 손수 쓰는 모습은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 환경주의)일 수 있고, 향후 총수가 투자하거나 출시할 제품의 광고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는 총수들이 말하는 ‘내가 SNS 활동을 하는 이유’와는 거리가 있다. 최태원 회장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자는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잘 모르면 뿔 달린 괴물 같은 이미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군’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지난해 12월 대한상의 기자단 간담회)고 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2018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SNS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에 대해 “기업과 소비자 간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라며 “뉴미디어 시대에는 소비자와 기업 대표 간 거리가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 1만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8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자료 대한상의]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 1만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8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자료 대한상의]

“소비, 공적인 활동 돼…판단은 소비자 몫”

전문가들은 대기업 총수가 소비자들에게 ‘파워 소비자’이자 ‘인플루언서’로서 인식되는 것을 소비문화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봤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소비 생활은 사적인 것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찾아보고 공유하는 공적인 활동으로 변화했다”며 “대기업 총수의 SNS도 수십 만 구독자를 갖게 되면서 웬만한 매체보다 영향력이 커졌고, 구독하고 있는 총수의 행동을 추종하는 소비자들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제는 기업 총수도 연예인, 유명인 같은 셀러브리티”라며 “총수가 SNS에 올리는 제품이 자신이 이끄는 대기업과 관련 없는 제품 얘기라면 나름의 파워 소비자로 볼 수 있으나 해당 대기업 관련 제품이라면 그 배경은 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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