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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치부 파헤친 위험한 드라마…日 최고 배우들 몰린 이유 [도쿄B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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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도쿄B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 [도쿄B화]는 사건사고ㆍ문화콘텐트 등 색다른 렌즈로 일본의 뒷모습을 비추어보는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의 연재물입니다.

지난 1월 13일부터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일본 드라마 '신문기자'는 여러모로 특별합니다. 일본 드라마로는 드물게 민감한 정치 스캔들을, 그것도 총리에서 물러난 후 '막후의 권력자'로 행사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치부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사회파 드라마란 게 그렇습니다.

아베 일본 전 총리의 스캔들을 정면으로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신문기자' [사진 넷플릭스]

아베 일본 전 총리의 스캔들을 정면으로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신문기자' [사진 넷플릭스]

더 놀라운 건 이 '위험한' 기획에 일본 최고 배우들이 함께했다는 겁니다. 일본 도쿄신문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 기자의 논픽션을 토대로 한 '신문기자'는 2019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었죠. 당시엔 정권에 맞서는 주인공 기자 역할을 하겠다는 일본 여배우가 없어 한국 배우 심은경이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다릅니다. 드라마 '닥터X' 등에 출연한 일본 톱배우인 요네쿠라 료코(米倉涼子)가 주인공 마쓰다 기자 역할을 맡았고, '믿고 보는 배우' 아야노 고(綾野剛), 떠오르는 스타 요코하마 류세이(横浜流星) 등이 주요 배역으로 출연했죠. 공개와 함께 일본 넷플릭스 순위에서 1~2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으는 건 이 배우들의 역할이 큽니다.

"만약 저 또는 제 아내가 관여했다면, 저는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의 소재가 된 '모리토모(森友) 스캔들'의 중심에는 지난 2017년 2월 17일, 아베 당시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했던 이 답변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사학재단인 모리토모 학원이 학교 건설 부지를 매입하면서 재무성 소유의 국유지를 실제 감정가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헐값에 사들였다는 사실이 언론에 의해 폭로됩니다. 이 거래에 모리토모 학원 이사장 부부와 절친한 사이였던 아베 총리 부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이 일었죠.

지난 2017년 국회에서 자신이 모리토모 학원 의혹과 관련이 있으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아베 신조 당시 총리. [사진 트위터 캡처]

지난 2017년 국회에서 자신이 모리토모 학원 의혹과 관련이 있으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아베 신조 당시 총리. [사진 트위터 캡처]

이에 대한 추궁을 받은 아베 총리가 국회에서 위 답변을 하면서, 사건은 비극으로 치닫게 됩니다. 재무성이 총리의 "관여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관련 서류들을 조작했던 겁니다. 당시 상관의 명령으로 서류 조작 실무를 맡았던 재무성 직원 아카기 도시오(赤木俊夫·향년 만 54세)씨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2018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카기의 죽음 후 공문서 변조 과정 등을 상세히 기록한 메모인 '아카기 파일'이 공개되면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문서 조작에 총리관저 등의 개입은 없었고, 재무성이 독자적으로 문서를 고쳤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총리의 뜻을 공무원들이 알아서 헤아려 조작을 시행한 '손타쿠(忖度)' 사건으로 몰아간 거죠.

"일본 지상파에선 절대 나오지 못할 드라마" 

이 사건은 2020년 9월 퇴임까지 아베를 괴롭힙니다. 당시 아베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으로 사임한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모리토모 의혹에서 도망치기 위한 것"이란 추측이 난무했을 정도였죠. 이후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했던 이 사건이 이번 드라마로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지난 2018년 3월 모리토모 스캔들과 관련, 총리 관저 앞에서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는 시민들 [도쿄 교도=연합뉴스]

지난 2018년 3월 모리토모 스캔들과 관련, 총리 관저 앞에서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는 시민들 [도쿄 교도=연합뉴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는 등장인물이나 회사 이름 등을 바꾼 것 외에는 실제 사건 과정을 거의 있는 그대로 재연합니다. 스캔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출연 배우들이 어떤 실제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죠.

트위터 등에는 "드라마를 통해 모리토모 스캔들이 어떤 사건인지 제대로 알게 됐다"며 그동안의 무관심을 반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시에 넷플릭스에 대한 평가도 크게 높아졌죠. "일본 지상파 방송국은 절대 다룰 수 없는 주제다. 넷플릭스가 자본을 대니 일본도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구나" 등의 의견입니다.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드라마 '신문기자'는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은 아카기(극중 이름은 스즈키)씨 부인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법원 앞에서 만난 스즈키 부인과 마쓰다 기자는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이제 시작이네요." "네, 어떻게 될까요?" "그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겠죠."

모리토코 학원 공문서 위조 경위를 상세히 적어놓은 고 아카기씨의 수첩. [교도=연합뉴스]

모리토코 학원 공문서 위조 경위를 상세히 적어놓은 고 아카기씨의 수첩. [교도=연합뉴스]

하지만 이 사건의 결말은 이미 지난해 말 나왔습니다. 앞서 재무성 관련자 24명에겐 전원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죠. 아카기 부인이 일본 정부와 재무성 이재국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지난해 12월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일본 정부가 원고의 청구를 모두 수용한다는 '인락(認諾)' 결정을 내리면서 끝이 납니다.

아카기씨가 죽음에 이른 책임을 정부가 모두 인정하면서, 약 1억엔(약 10억 4400만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것이죠. 책임을 인정한 건 의미가 있지만, 재판이 전면 중지되면서 아베 전 총리 부부의 개입 여부 등 사건의 진상을 밝힐 방법은 사라졌죠. '돈'으로 '진실'을 덮어버린 겁니다.

아카기 부인은 "진실을 알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런 형태로 끝나버리다니 원통하기 그지없다"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한 일본 언론은 정부의 결정을 이렇게 평가했네요. "국민의 세금인 지폐로 아카기씨의 뺨을 쳤다."

거기에 드라마를 둘러싼 잡음도 들려옵니다. '신문기자' 제작진이 드라마의 일부 내용에 대해 아카기 부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 제작을 강행했다고 주간지 슈칸분슌이 최근 호에서 폭로했죠. 누군가 트위터에 쓴 대로, "이 사건의 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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