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5년 전인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하며 했던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이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청와대는 무장한 경호인력이 지키는 가운데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퇴근길 대화는 물론 광화문 대토론회도 열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지난달 24일 “올해 신년기자회견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며 3일 뒤인 27일로 예정돼 있던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약속했던 상시 소통은 물론, 역대 모든 대통령이 연례행사로 당연하게 해왔던 소통까지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청와대는 신년회견의 취소 배경에 대해 “오미크론 확산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대면 회견이 아닌 온라인 회견 등 ‘플랜B’도 시행하지 않기로 하고 결국 회견의 취소를 결정해 일방 통보했다.
오미크론 대응에 주력한다던 문 대통령은 26일 비공개로 회의를 주재하고는 “국민께서 지나친 불안과 공포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며 “준비 상황과 진행 상황을 국민께 자세하고 자신있게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본지에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 국민들이 가장 큰 위안을 받는 방법은 일선 공무원들의 설명이 아니라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솔직하게 현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일수록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취소 등 과도한 대응은 청와대 직원까지 코로나에 감염된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 청와대는 지난달 6박 8일간의 중동 순방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중앙일보의 보도로 확인될 때까지 “대통령의 건강 관련은 국가기밀에 속하고, 확진자 공개는 개인 신상에 대한 문제”라며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러한 청와대의 태도는 “코로나 관련한 사안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수차례 반복했던 문 대통령의 지시와도 맞지 않는다. 특히 일반 국민에게는 철저한 동선공개와 함께 논란 속에서도 ‘방역패스’ 의무화 등을 시행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치권에선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취소는 대선을 앞둔 정치적 판단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여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자화자찬성 성과 과시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큰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취소해 정치적 악재를 의도적으로 회피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판단 때문에 최고위직 공무원인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연례 보고 성격의 신년회견까지 취소했다는 점에 대해 ‘국민에 대한 도리와 의무를 져버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임기를 100일도 남겨두지 않은 문 대통령의 소통 성적표는 초라하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 2번, 기자회견은 7번 했다.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기자회견ㆍ언론브리핑을 합해 각각 약 150번), 이명박 전 대통령(약 20번)보다 적다. 탄핵돼 임기를 채우지 못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접 소통 횟수 5회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