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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애 죽어도 감정의 못 찾는다…의료소송보다 힘든 '수의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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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최모 씨는 반려견이 혈뇨 등 증상을 보여 서울의 한 동물병원을 찾았다. 약을 먹어도 증상이 계속되자 병원을 옮겼고, 앞선 병원에서 제대로 진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방광염과 방광결석을 제때 치료받지 못한 반려견에게는 만성적인 질환이 생겼다.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최씨는 1심에서 졌다가, 2심에서 병원 과실이 인정돼 판결이 확정됐다. 법정 싸움에서 이긴지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최 씨는 "반려동물이 또 다른 의료사고를 겪더라도 소송은 망설여질 것"이라고 말한다.

2018년 이모씨의 반려견은 구토, 과호흡 등 증상으로 경기도 양주의 한 동물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마비 등 부작용 증세를 보여 입원치료를 받았고, 결국 심장마비로 숨졌다. 이씨는 자연치유가 가능한 질병인데도 병원이 무리한 치료를 해 부작용을 일으켰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병원이 이씨에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점만을 인정해 2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 이씨는 "법원이 병원의 과실은 인정하지 않아 아쉽다"면서도, 항소는 하지 못했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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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료 소송에선 감정의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법정 싸움을 겪은 두 사람이 더욱 소송을 꺼리게 된 건, 동물병원의 과실을 입증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수의료 분쟁에서 재판부는 병원의 처치가 옳았는지에 대해 다른 의료기관에 물어 심리에 참고한다. 이를 감정 촉탁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감정에 나서는 동물병원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점이다.

이씨 사건을 맡은 재판부도 5곳 넘게 감정을 의뢰했지만 거절하거나 아예 답을 받지 못했고, 나중에는 원고인 이씨가 직접 수소문했지만 감정을 해준다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감정을 받지 못하면 결국 병원의 과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워진다. 법원이 병원의 설명 의무 위반 정도만 지적하고 재판이 마무리되면 100~200만원의 위자료만 받을 뿐, 수천만원까지도 드는 병원비는 오롯이 반려인 부담이다.

하지만 수의사들은 자신의 감정이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감정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공식적인 기관도 아닌 개별 병원이 나서서 다른 동료 수의사의 잘못을 지적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취지다.

이씨가 재판 과정에서 받은 감정불응통지서.

이씨가 재판 과정에서 받은 감정불응통지서.

이런 상황은 일반적인 의료소송에서도 과거부터 제기돼 온 문제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법원이 감정을 의뢰하는 병원 풀(pool)이 만들어졌고, 이들 병원이 거절하더라도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이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도 감정을 맡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수의료소송의 경우 이런 체계나 공식 기관이 없어 개인이 병원을 일일이 수소문해야 한다.

김경은 변호사(법무법인 선린)도 최근 관련 소송에서 "30곳가량의 동물병원, 수의사회까지 연락을 돌려봤지만 모조리 감정을 거절당했다"며 "법원이 해외 감정이라도 시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의료는 진료기록부 확인도 힘들어"

소송에 나서기 전 동물병원의 처치를 자세하게 확인할 진료기록을 받아보기도 쉽지 않다. 현행법상 동물병원은 진료기록부를 보호자에게 발급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의무화하는 수의사법 개정안이 지난해 6월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반려인들은 진료기록부를 기록하는 방식도 체계적이지 않다고 토로한다. 정은주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는 "어렵게 감정의를 구하더라도 진료기록부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과실을 입증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수의사의 행위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명확하게 적혀있지 않아서, 감정의마다 다른 판단을 내리는 등 애매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씨 사례의 경우 병원 측이 진료기록부를 위조한 사실이 재판 도중 드러나기도 했다.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1448만명에 달한다. [사진 픽사베이]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1448만명에 달한다. [사진 픽사베이]

수의사회 "반려동물 의료 공공성 확보 우선"

수의업계는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감정이나 진료기록부 등을 사람 의료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반려동물에 대해 사람 의료 체계와 비슷한 수준을 요구하는데도, 정작 현행법은 산업동물과 반려동물을 구분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려동물 공공보험이나 진료비 부가세 폐지 등 사람 의료만큼 공공성을 강화해달라는 취지다.

그는 "공공성이 확보된다면 수의료 감정 전문 기관을 만드는 등 제도 개선을 꾀할 수 있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반려인과 사법부, 수의업계 모두가 답답한 현실"이라고도 했다. 당장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추가한 민법 개정안 역시 국회에 계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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