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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천년에 걸쳐 한국인의 밥상 지켜온 김치② 곽은주 김치명인을 만나다

중앙일보

입력

과학기술·한류 타고 세계인의 밥상 오른다
한식대표 김치

한국인의 소울 푸드, 김치. 한식진흥원이 지난해 10월 전국의 만 19∼69세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식 소비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식이라고 생각한다’는 물음에 가장 많이 응답한 메뉴는 김치로, 무려 99.7%에 달했어요. 하지만 최근 김치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죠. 값싼 수입산 김치 때문에 외면받거나, 일본에 이어 중국과 ‘김치 원조국’ 전쟁을 치르며 그 역사를 의심받기에 이르렀어요. 자연스레 김치 소비량도 줄었죠. 어떻게 하면 김치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김치의 역사부터 현재의 가치를 들여다보고, 미래 대안까지 제시해보기 위해 소년중앙이 광주광역시 김치타운으로 향했습니다.

다양한 김치. 세계김치연구소

다양한 김치. 세계김치연구소

#3. 게미 있는 김치 만들기 

곽은주 김치명인.

곽은주 김치명인.

김치의 이모저모를 알아본 학생기자단이 세 번째로 만난 인물은 2000년 열린 광주세계김치축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곽은주 김치명인입니다. 곽 명인은 마치 연못에 꽃이 핀 듯 아름다운 ‘맨드라미 백김치’로 1등을 거머쥐었죠. 세 사람이 곽 명인에게 궁금한 점을 직접 물었어요.

경원: 김치명인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젊을 때 병원에서 오래 일했어요. 마흔 즈음이 되니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부로서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었으니 자연스레 대학원에서 요리 쪽을 공부하게 됐어요. 이상하게 재밌더라고요. 꾸준히 공부하다 2000년에 광주세계김치축제에 참가한 이후로는 축제위원으로 활동하며 강의도 하고 있어요. 세계김치연구소나 기타 기관에서 새로운 김치를 개발할 때 참여하기도 하죠.
가희: 김치명인이 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우선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인증하는 대한민국식품명인이 있고요. 저는 광주세계김치축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김치명인이 됐어요.
소쿠리에 배추김치를 담그는 데 필요한 배추·쪽파·마늘·배 등의 재료가 담겼다.

소쿠리에 배추김치를 담그는 데 필요한 배추·쪽파·마늘·배 등의 재료가 담겼다.

경원: 김치명인으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사람들을 가르칠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여러분 같은 어린이·청소년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도 있죠. 또 새로운 김치나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서 오는 재미가 크더라고요. 이제 날이 조금 풀리면 냉이가 나오거든요. 보통 냉이를 국이나 나물 재료로만 쓰는데, 냉이도 김치처럼 소금에 절여 양념해 먹으면 아주 맛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것저것 시도해볼 때 ‘내가 이 일과 잘 맞는구나’ 싶죠.
인아: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해도 매우 많은데, 김치의 종류는 몇 가지 정도인가요.
정의하기 어려운데요. 같은 배추김치라 해도 감자를 넣는 집, 찹쌀을 넣는 사람, 돼지고기를 더하는 집 등 재료에 따라 그 종류도 무궁무진하거든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한민국 김치 종류는 김치 담그는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 숫자만큼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배추 절이는 법을 설명하는 곽 명인. 배춧잎 사이사이 굵은 소금을 뿌려 배추 숨이 죽도록 둔다.

배추 절이는 법을 설명하는 곽 명인. 배춧잎 사이사이 굵은 소금을 뿌려 배추 숨이 죽도록 둔다.

경원; 명인께서 가장 좋아하는 김치는 무엇인가요.
물김치 종류를 좋아하고 잘 담가요. 2000년 광주세계김치죽제에서 대상을 받은 ‘맨드라미 백김치’도 물김치의 일종이죠.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예전에 고춧가루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맨드라미를 이용해 붉은색을 냈다고 배웠어요. 전통 조리법을 이용해 백김치 국물 색을 내면 참 예쁘겠다 싶었죠. 또 맨드라미가 기침·가래를 완화하는 데 효능이 좋거든요. 어르신들이 시원하게 드시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항상 정원에 맨드라미를 심으셨는데, 추석 무렵 수확해서 냉동 보관한 뒤 김치를 담글 때 꺼내 쓰고 있어요.
가희: 명인의 김치와 일반 집에서 만드는 김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제 김치는 항상 균일한 맛을 내죠. 보통 집에서 김치 담그면 ‘고춧가루 이만큼, 젓갈 이만큼’ 하면서 대충 계량하잖아요. 김장김치가 지난해 겨울엔 분명히 맛있었는데, 올해는 맛없는 이유죠. 똑같은 레시피라도 정확히 계량하는 게 중요해요. 요즘은 가정용 저울이나 염도계도 잘 나오니까 하나 구비해두는 걸 추천합니다.
곽 명인이 담근 배추김치. 바깥쪽의 배춧잎으로 예쁘게 말아주면 완성이다.

곽 명인이 담근 배추김치. 바깥쪽의 배춧잎으로 예쁘게 말아주면 완성이다.

가희: 김치명인만의 특별한 레시피가 있다면요.
대개 김치에 당근을 넣곤 하는데, 당근은 무와 만나면 비타민C가 파괴되는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당근은 되도록 넣지 않죠. 또, 설탕·양파·사과 등 단맛이 나는 재료를 많이 넣으면 발효가 빨리 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해요. 김치는 숙성해서 먹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음식이잖아요. 설탕을 잔뜩 넣으면 오늘 당장은 맛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김치 고유의 맛은 덜하죠. 단맛을 줄일수록 숙성되고 발효되면서 천천히 맛있어진답니다.
인아: 김치를 응용한 퓨전 요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2018년에 광주에서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렸어요. 외국인도 먹을 수 있는 김치 요리가 필요했죠. 고민 끝에 김치 샌드위치를 개발했어요. 식빵을 굽고 시금치·양배추에 매운맛을 덜어낸 김치, 토마토 페이스트와 김칫국물을 섞은 소스를 더했죠.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묵은지 잡채도 선보였는데, 김치를 씻어낸 뒤 당면처럼 길게 찢어 잡채와 볶아냈죠. 한번 씻은 김치라 외국인이 먹기에 부담도 덜하고, 잡채 특유의 기름진 느낌을 김치가 싹 잡아주더라고요. 김치 부꾸미는 숙성된 김치를 씻은 뒤 다져 팥 앙금에 섞은 요리예요. 달콤한 팥에 김치의 식감이 더해지니 외국인도 잘 먹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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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희: 명인으로서 청소년에게 김치를 먹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면요.
돈 주고 유산균 따로 사 먹잖아요. 그런 유산균은 장까지 살아서 이동하기가 힘들어요. 유산균에 캡슐을 씌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하지만 김치 유산균은 건강하게 살아서 장까지 이동합니다. 대개 김칫국물은 버리는데, 그만큼 좋은 영양제가 없어요.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김치, 먹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김인아·정가희·박경원(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곽 명인의 도움을 받아 배추김치를 담그고 있다.

김인아·정가희·박경원(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곽 명인의 도움을 받아 배추김치를 담그고 있다.

인터뷰를 마친 학생기자단은 곽 명인의 도움을 받아 직접 김장김치의 꽃, 배추김치와 파김치 담그기에 도전했습니다.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위생 장갑과 앞치마를 착용하고, 김장배추를 받아들었죠. 우선 배추를 소금에 절여야 해요. 소금물에 담가 숨을 살짝 죽인 뒤 굵은 소금을 배춧잎 사이사이 적당히 뿌리면 절임 작업 완료죠. 쪽파의 경우 젓갈을 살살 뿌린 뒤 어느 정도 스며들도록 기다립니다.

배추의 숨이 죽는 동안 김치 양념 만들기에 돌입했어요. 곽 명인이 준비한 양념 재료는 고춧가루·마늘·생강·찹쌀·배·다시마·액젓·새우젓·멸치젓입니다. 재료를 우묵한 그릇에 한데 넣은 뒤 손으로 잘 섞어요. 실파를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로 짧게 썰어 양념에 더해주면 김장 준비 끝! 인아 학생기자가 “양념 냄새만 맡았는데도 배고프다”며 입맛을 다셨죠.

정가희 학생기자는 “평소 김치를 잘 먹지 않는데 앞으로는 많이 먹어야겠다”고 전했다.

정가희 학생기자는 “평소 김치를 잘 먹지 않는데 앞으로는 많이 먹어야겠다”고 전했다.

곽 명인이 미리 절여놓은 배추를 반 통씩 받아든 학생기자단은 비장한 각오로 김장에 나섰습니다. “맨 위의 배춧잎부터 차례차례 양념을 바르면 돼요. 하나 바르고 들어서 넘긴 뒤 그 밑에 바르고, 다시 들어 넘기는 작업을 반복하면 됩니다. 배춧잎 앞면에만 발라도 뒷면까지 자연스레 묻어나니까 따로 바를 필요는 없고요. 가장 중요한 건 양념의 양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거예요. 어느 부분은 양념이 뭉치고, 어느 부분은 양념이 없으면 나중에 배추의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르겠죠. 배추 심에 가까운 부분부터 이파리까지 골고루 발리도록 신경 쓰세요.” 난생처음 김장에 도전한 경원 학생기자는 앞치마가 양념 범벅이 될 정도로 열심이었죠. 마지막 잎까지 양념에 잘 버무렸다면 배춧잎 사이사이 산소가 빠져나가도록 배추를 꾹꾹 눌러 잘 오므립니다. 커다란 겉잎을 양쪽에서 하나씩 꺼내 감싸 묶으면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배추김치가 되죠.

김치의 역사부터 과학적 원리까지 탐구한 정가희·박경원·김인아(왼쪽부터) 학생기자. 우리 민족의 지혜가 담긴 김치를 더욱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김치의 역사부터 과학적 원리까지 탐구한 정가희·박경원·김인아(왼쪽부터) 학생기자. 우리 민족의 지혜가 담긴 김치를 더욱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파김치는 더 쉬워요. 집에서 파김치 담글 때 이리저리 뒤섞다가 파가 얽히고설켜 고생하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 파 뿌리 부분이 한쪽으로 가도록 잘 만져서 위에 양념을 끼얹고 그대로 앞뒤로 굴려주기만 하면 돼요.” 명인의 조언에 따라 파 뿌리부터 잎까지 양념이 고루 묻도록 굴려주니 5분도 되지 않아 아삭한 파김치가 탄생했어요. 적당한 양을 잡아 올린 뒤 반으로 접거나, 예쁘게 말아 밀폐 용기에 넣습니다. 약 2주간 숙성하면 유산균이 풍부해 건강에 좋고, 여러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김치 완성이죠. 우리 조상의 소중한 유산 김치와 함께라면 남은 겨울도 든든하게 보낼 수 있을 거예요.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김치타운과 세계김치연구소라는 곳에 대해 듣고, ‘김치가 그냥 김치지, 연구할 게 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하지만 김치타운을 방문한 뒤 제 생각은 180도 바뀌었죠. 우선 김치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 안전하게 제조·유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사실에 놀랐어요. 또 새로 만든 김치의 맛을 평가하고, 김치에 담긴 과학적 원리까지 연구하는 곳이었죠. 김치에 대해 알아본 뒤에는 김치명인을 만나 배추김치와 파김치를 담갔어요. 집에서 김장하는 모습을 볼 땐 어렵다고만 느꼈는데, 생각보다 쉽게 김치를 담글 수 있어 좋았죠. 다음에는 가족과 함께 와서 김치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요.  김인아(충남 우성중 2) 학생기자

파김치를 플레이팅 할 때는 파뿌리 쪽을 가지런히 모은 뒤 반 접어 돌돌 감싼다.

파김치를 플레이팅 할 때는 파뿌리 쪽을 가지런히 모은 뒤 반 접어 돌돌 감싼다.

광주에 사는 저는 몇 년 전에 김치박물관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소년중앙을 통해 취재할 수 있게 돼 반가웠죠. 세계김치연구소는 김치의 대중화·세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이날 배운 내용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고 다짐했죠. 김치박물관에서는 지역적 특색을 지닌 여러 김치에 대해 알게 됐는데, 다른 지역의 김치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명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함께 만든 김치를 집에 와서 먹어보니 정말 맛있더라고요. 우리 지역의 자랑스러운 명소, 김치타운을 소중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박경원(광주 건국초 4) 학생기자

평소 김치를 자주 먹는 편이 아니라 취재에 앞서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막상 김치타운을 방문하니 예상과 다른 곳이더군요. 제가 생각한 김치는 항아리·시골집 등 투박한 이미지였는데, 여러 기계와 약품이 즐비한 연구실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또, 제가 알고 있는 김치는 배추김치·깍두기·동치미·파김치가 전부였는데, 김치박물관에서 오징어·톳·감 등 상상도 못 했던 다양한 식재료로 김치를 담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김치명인과 김치를 담글 때는 할머니 집에 온 듯 친숙한 향기를 느꼈죠. 이번 취재를 통해 김치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한국 전통 음식에 대한 자부심도 갖게 됐어요. 앞으로 김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자주 먹어야겠어요.  정가희(제주 아라중 2)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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