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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각] 인류 최후의 통신 아마추어가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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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랜드'는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추락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는 인류의 재난상황을 그렸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맨 먼저 아마추어 무전기로 생존자를 찾았다. 인천 영흥도에 설치된 한 아마추어 무선국 안테나는 최대 출력 1kw로 전 세계 어디든 교신이 가능하다. 동호인 사이에서 꿈의 안테나로 불린다. 김현동 기자

영화 '그린랜드'는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추락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는 인류의 재난상황을 그렸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맨 먼저 아마추어 무전기로 생존자를 찾았다. 인천 영흥도에 설치된 한 아마추어 무선국 안테나는 최대 출력 1kw로 전 세계 어디든 교신이 가능하다. 동호인 사이에서 꿈의 안테나로 불린다. 김현동 기자

코로나19는 인류의 문화코드까지 완전히 바꿔 놓았다. 갇힌 섬 생활을 하듯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흘러넘치다 보니 ‘방구석 문화’가 대세가 됐다. 덕후 소리를 듣는 아재들의 놀이도 재림했다. 아마추어 무선통신, HAM(햄)이다.

김영규(64) 씨가 일본 아마추어 무선사들과 교신을 위해 안테나를 남쪽으로 돌리고 있다. 안테나는 전파가 퍼져서 나가는 무지향성과 한방향으로 발사되는 지향성이 있다. 김현동 기자

김영규(64) 씨가 일본 아마추어 무선사들과 교신을 위해 안테나를 남쪽으로 돌리고 있다. 안테나는 전파가 퍼져서 나가는 무지향성과 한방향으로 발사되는 지향성이 있다. 김현동 기자

초단파(VHF) 대역은 145.000 메가헤르츠(MHz) 주파수에서 호출과 비상통신 등이 이루어진다. 김현동 기자

초단파(VHF) 대역은 145.000 메가헤르츠(MHz) 주파수에서 호출과 비상통신 등이 이루어진다. 김현동 기자

‘레트로’, 복고풍을 뜻하는 이 단어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온갖 잡음이 섞인 무전기 교신음은 흑백 필름의 아날로그 감수성을 닮았다. 사람들이 햄에 빠지는 큰 이유다. 그래서일까, 시공간을 넘나드는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증거다.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에서 주관하는 8시간 교육을 당일 수료하면 시험 없이 4급 아마추어 무선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4급 제도는 아마추어 무선기사 저변 확대를 위해 2015년 부터 시행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에서 주관하는 8시간 교육을 당일 수료하면 시험 없이 4급 아마추어 무선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4급 제도는 아마추어 무선기사 저변 확대를 위해 2015년 부터 시행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햄은 국가기술자격증을 따야 입문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8시간 강의만 들으면 가장 아래 등급인 4급 아마추어 무선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단 내 전파가 닿는 범위를 정해주는 출력은 10w(와트)로 한정된다. 휴대용 무전기 수준이다. 그래도 맑은 날 높은 산에 올라가면 100여km 떨어진 곳에서도 신호가 잡힌다.

서울 구로기계공구상가에서 지난 1월 9일 오전 정크시장이 열렸다.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무전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월1회 지역별로 열리는 정크시장은 아마추어 무전기와 관련장비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일종의 벼룩시장이다. 김현동 기자

서울 구로기계공구상가에서 지난 1월 9일 오전 정크시장이 열렸다.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무전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월1회 지역별로 열리는 정크시장은 아마추어 무전기와 관련장비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일종의 벼룩시장이다. 김현동 기자

MZ세대도 아마추어 무선통신에 관심이 높다. 서울 정크시장에 방문한 이승건(22) 이도연(21) 박성현(23) 장지원(19) 유혁준(22,왼쪽부터)씨가 안테나를 살펴보고 있다. 김현동 기자

MZ세대도 아마추어 무선통신에 관심이 높다. 서울 정크시장에 방문한 이승건(22) 이도연(21) 박성현(23) 장지원(19) 유혁준(22,왼쪽부터)씨가 안테나를 살펴보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울 정크시장은 구로기계공구상가 A블록 주차장에서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열린다. 김현동 기자

서울 정크시장은 구로기계공구상가 A블록 주차장에서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열린다. 김현동 기자

지난달 자신만의 호출부호인 ‘콜사인’을 받고 감격했던 이승건(21) 씨는 어릴 때부터 햄이 로망이었다. 평생 쓴다는 생각에 성능 좋은 무전기까지 점 찍어 뒀다. 햄 친구를 만나고 관련 장비를 모으는 낙으로 코로나 시대를 견디고 있다.

아마추어 무선국 콜 사인(call sign)은 국가와 지역 그리고 개인으로 나눠진다. DS는 대한민국, 1은 서울, SQB는 개인을 표시한다. 김현동 기자

아마추어 무선국 콜 사인(call sign)은 국가와 지역 그리고 개인으로 나눠진다. DS는 대한민국, 1은 서울, SQB는 개인을 표시한다. 김현동 기자

박상보(40)씨가 자신의 차량에 설치된 무전기로 동호인들을 호출하고 있다. 콜사인 뒤에 '모빌(mobile)'을 덧붙여 이동 중임을 알린다. "여기는 DS1NMA 모빌입니다" 김현동 기자

박상보(40)씨가 자신의 차량에 설치된 무전기로 동호인들을 호출하고 있다. 콜사인 뒤에 '모빌(mobile)'을 덧붙여 이동 중임을 알린다. "여기는 DS1NMA 모빌입니다" 김현동 기자

웹툰 〈하이브〉에는 거대 곤충으로부터 통신설비를 파괴당한 사람들이 햄 기기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데 진짜란다. 햄은 거의 모든 첨단 통신 시스템이 파괴돼도 무전기만 있으면 교신이 가능하다. 인류 최후의 통신 수단인 셈이다.

모스부호는 장음과 단음으로 구성된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언어다. continuous wave의 약자로 ‘CW’라고 부른다. 음성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최소한의 전력으로도 송신이 가능해 궁극의 통신수단으로 일컬어진다. 6개월 이상 연습이 필요하다. 김현동 기자

모스부호는 장음과 단음으로 구성된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언어다. continuous wave의 약자로 ‘CW’라고 부른다. 음성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최소한의 전력으로도 송신이 가능해 궁극의 통신수단으로 일컬어진다. 6개월 이상 연습이 필요하다. 김현동 기자

아마추어 무선사는 상대방과의 교신을 기념하기 위해 엽서(QSL Card)를 보내는 오래된 전통이 있다. 이름, 콜 사인, 위치, 수신 감도 등을 표시한다. 일본에서 온 카드가 눈길을 끈다. 김현동 기자

아마추어 무선사는 상대방과의 교신을 기념하기 위해 엽서(QSL Card)를 보내는 오래된 전통이 있다. 이름, 콜 사인, 위치, 수신 감도 등을 표시한다. 일본에서 온 카드가 눈길을 끈다. 김현동 기자

그 소리 맛 때문일까. 햄에 푹 빠져 살던 소년들은 이제 중장년 아재가 됐지만, 아직도 햄에서 이국의 낯선 이를 찾는다. 햄의 만국 공통어 “CQ(Come Quickly: 불특정 무선국을 호출하는 통신용어)”를 연신 불러 대며 말이다.

1993년 겨울 강원도 설악산에 폭설로 인해 조난당한 등반대원들이 있었다. 마침 인근에서 등반훈련을 받고 있던 당시 39세 김영규 씨도 수색과 구조활동에 참가했다. 깊은 산속 휴대폰마저 불통이 된 상황속에서 2차 사고 우려가 높았지만 다른 구조대와 연결된 아마추어 무전기 덕분에 조난자와 구조팀이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김 씨는 현재 대형재난과 천재지변으로 인해 기간통신망이 마비될 경우 자신의 장비를 이용해 비상통신을 지원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1993년 겨울 강원도 설악산에 폭설로 인해 조난당한 등반대원들이 있었다. 마침 인근에서 등반훈련을 받고 있던 당시 39세 김영규 씨도 수색과 구조활동에 참가했다. 깊은 산속 휴대폰마저 불통이 된 상황속에서 2차 사고 우려가 높았지만 다른 구조대와 연결된 아마추어 무전기 덕분에 조난자와 구조팀이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김 씨는 현재 대형재난과 천재지변으로 인해 기간통신망이 마비될 경우 자신의 장비를 이용해 비상통신을 지원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도자기 전문가인 김영규(64) 씨도 그런 소년이었다. 1975년에 햄 세계에 첫발을 들였으니 올해로 47년째다. 그는 경기도 이천, 자신의 사무실을 햄 기지국이자 아지트로 꾸몄다. 지붕 위엔 전파를 내보내는 안테나가 늠름하게 서 있다. 이 안테나로 1만7000km 이상 떨어진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대원과 교신에 성공한 적이 있다. 늦은 밤 오늘도 그는 무전기를 켠다. 미지의 어느 곳에서 내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다.
“CQ, CQ, CQ 여기는 DS1SQB 들리는 분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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