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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정조가 해질녁 눈 내리는 광경을 시로 읊던 능허정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61)

창덕궁 후원 안, 옥류천. [사진 Daderot on Wikimedia Commons]

창덕궁 후원 안, 옥류천. [사진 Daderot on Wikimedia Commons]

옥류천 계곡을 나오면서

옥류천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동쪽을 보고 앉은 농산정(籠山亭)이 있다. 농산정은 이름은 정자인데 그 기능은 온돌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 임금이 옥류천으로 행차했을 때 음식이나 다과를 준비하던 곳이다. 동궐도에는 농산정 남쪽으로 취병이 둘러져 있고 그 앞에 목교가 있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19)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위해 화성 행궁으로 떠나기 전 후원 일대에서 가마꾼들에게 자궁(慈宮)의 가마를 메는 연습을 시키고 수고한 관원들에게 이곳 농산정에서 음식을 대접했다. 이 해는 어머니 혜경궁의 환갑이기도 했지만 두 분이 동갑이었으므로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갑이었다. 두 분 부모를 위한 생신 잔치를 위해 한양에서 아버지의 능이 있는 수원까지 길을 떠나야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먼 길을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편히 모시려는 효성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지체 높으신 분이 가마를 타고 갈 때 가마멀미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후원 고갯길을 오가며 보다 편안히 가마를 모시기 위한 예행연습을 했던 것이다. 당시 가마꾼들이야 힘이 들면 서로 바꾸어가며 쉬기도 했을 터이지만 가마 타는 높으신 분은 꼼짝없이 목적지에 당도하기까지 좁은 가마 안에서 견뎌야 했을 터이니 여간 고생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조 19년(1795 을묘) 2월 25일 1번째기사
자궁(慈宮)의 가마를 메는 예행연습을 후원(後苑)에서 행하였다. 상이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할 때 여러 날 수고롭게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자궁을 직접 모시고 먼저 예행연습을 한 것이었다. 농산정(籠山亭)에 이르러 행차를 수행한 신하들에게 음식 대접을 하고 대내(大內)로 돌아왔다.

옥류천 계곡을 떠나기 전에 아쉬운 마음으로 신선세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취한정 주련에 쓰인 시를 감상하고 출발하는 것도 좋겠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읽는다.)

일정화영춘류월(一庭花影春留月) : 온 뜨락의 꽃 그림자에 봄은 달을 붙잡고
만원송성야청도(滿院松聲夜聽濤) : 집안 가득 솔바람 소리는 밤에 파도소리 듣는 듯
구천로담금반중(九天露湛金盤重) : 높은 하늘의 이슬이 짙어 금쟁반이 무겁고
오색운수취개응(五色雲垂翠盖凝) : 오색의 구름이 드리워 푸른 지붕을 감싸네

청심정(淸心亭)과 빙옥지(氷玉池)

청심정. [사진 문화재정 국가문화유산포털]

청심정. [사진 문화재정 국가문화유산포털]

청심정(淸心亭)은 옥류천에서 나와 되돌아가는 길 중간에 있다. 지금 창덕궁의 관람동선에는 제한 구역으로 되어 있어 답사나 특별 관람에만 허용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걸음이 느린 관람객이라면 숲속 멀지 않은 곳에 얼핏 보이는 청심정을 발견할 수도 있다. 후원의 정자가 물과 함께 배치된다는 일반적인 구조를 말했는데 청심정은 산 중턱이니 연지를 파지는 못하고 대시 물을 담는 석조를 만들어 정자 앞쪽에 두었다. 돌로 조각한 거북의 등에 어필 빙옥지(氷玉池), 얼음같이 맑은 물을 담는 석지를 만들고 정자에서 물을 감상하게 하였다. 청심정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 석상이 지금은 사라진 빙옥지 안 괴석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신선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울창한 나무로 가려져 잘 볼 수 없었지만, 꽤 높은 지대에 있어 청심정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보는 밤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숙종과 정조는 이곳에서 달구경을 하고 시를 남겼다. 숙종은 청심완월을 읊고, 정조는 상림 십경 중 제7경으로 청심제월(淸心霽月), 청심정에서 보는 개인 날의 맑은 달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옥 같은 이슬이 뜰에 내려 녹지 않는데/ (玉露侵階久未晞)
둥근 달 밝은 빛 비추기 때문이라/ (一輪桂魄玩明輝)
만리의 가을 하늘 대낮과도 같으니/ (萬里秋天如白晝)
난간에 기대어 달구경 하느라 밤잠 더뎌지네/ (憑軒愛月夜眠遲)
-숙종이 청심정에서 달구경을 하고 쓴 ‘청심완월(淸心玩月)’이다.

능허모설(凌虛暮雪)

청심정의 서북쪽에 있는 능허정(凌虛亭)은 후원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정자다. 어쩌다 특별한 후원답사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능허정은 후원의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가파르게 서 있다. 능허정의 쓸쓸한 풍경은 정조가 얼마나 시정(詩情)이 뛰어난 왕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조의 상림십경(上林十景) 중 열 번째가 능허모설(凌虛暮雪)로 겨울날 해 질 무렵 능허정에서 눈 내리는 광경을 구경하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과연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능허모설은 석양에 물든 산비탈 계곡의 겨울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게 한다.

해가 쌓이고 쌓여 저물어 가는 하늘에 / (歲色崢嶸欲暮天)
소소히 내리는 가벼운 눈이 가련도 하여라 / (騷騷輕雪也堪憐)
잠깐 사이에 산하를 두루 뿌리고 가니 / (須臾遍灑山河去)
옥 같은 나무와 꽃이 앞뒤에 그득하구나 / (瓊樹琪花擁後前)

창덕궁 후원은 오래된 원림과 그 자연과 곁들여 사람들이 여기저기 물가를 따라 정자를 세우고 인위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이차적인 자연이다. 일본처럼 오려낸 듯 반듯하고 정형화된 정원이 아니라 나무는 나무대로 물은 물대로 서로 어우러져서 흐르는 속에 사람들이 거닐고 꽃과 바람을 즐기는 공간이다. 옛 제왕과 그곳에 초대받은 관료들이 감동으로 즐기던 공간을 지금 우리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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