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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혐이다" vs "성범죄다"…여고생 위문편지, MZ에게 묻다 [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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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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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군 아저씨께. 불철주야 나라를 지키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국군 아저씨가 있어서 저희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군 생활 건강하게 마치시고 나라 잘 지켜주세요”

[밀실]<제83화> #'위문편지'에 대한 MZ세대의 생각은?

학창시절 이런 ‘위문편지’ 안 써 보신 분 계신가요? MZ세대라면 아마 대부분 위문편지를 써본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최근 이 위문편지가 ‘핫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진명여고 학생으로부터 받았다는 편지. [커뮤니티 캡처]

진명여고 학생으로부터 받았다는 편지. [커뮤니티 캡처]

얼마 전 한 커뮤니티에 자신을 현직 군인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진명여고 학생으로부터 “이 정도는 이겨내야 사나이다”, “눈 열심히 치우라”는 내용이 적힌 위문편지를 받았다고 공개했는데요. 일부 네티즌들은 이 편지에 대해 “고생하는 군인을 조롱하는 남성 혐오적 내용”이라며 분개했습니다.

진명여고 측은 해당 병사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고, 교육청은 학생들에 대한 과도한 비판을 자제해달라는 의견문을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구시대적인 위문편지를 아직도 강요하는 게 문제”라며 ‘여고의 위문편지 전통을 없애 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군부대 자매결연 맺은 학교에서 위문편지 수거 

밀실에선 얼마나 많은 학생이 위문편지를 쓰고 있는지부터 알아봤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예전부터 군부대와 자매결연을 맺어온 학교들이 학생들의 편지를 수거해 군부대 보내는 식으로 운영돼왔다고 합니다. 서울에 있는 1360개 초ㆍ중ㆍ고교 가운데 정확한 수치를 밝혀진 않았지만, 극소수 학교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저희도 최근에 이런 활동이 거의 다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진명여고도 100년 넘은 학교라서 1961년부터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해 온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위문편지 쓰면 봉사활동 인정? 낡은 문화”

학교별 선택사항이란 이야기인데 진명여고는 위문편지를 쓰면 봉사활동 점수를 줬습니다. 위문편지를 써 본 경험이 있는 MZ세대가 편지 쓰기에 부정적인 이유도 바로 강제성 때문입니다.

직장인 이모(여·22)씨는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수업 시간을 1시간씩 빼서 편지를 쓰게 했는데 편지지도 각자 준비해야 했다”면서 “정말 쓰기 싫었고, 안 써도 된다는 선택지가 없어서 그냥 ‘열심히 군 생활하길’이란 내용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1일 진명여고 인근인 서울 목동 학원가에서 만난 고등학생(19·남)도 “왜 굳이 위문편지를 봉사 시간으로 인정해주는지 모르겠다”면서 “봉사 시간을 받으려 쓰긴 쓰겠지만, 그게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위문편지는 좀 옛날 문화 아닌가? 요즘 세상과 맞지 않는 문화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습니다.

군대. pixabay

군대. pixabay

“군인 희생 인정하는 문화 만들어야”

그러나 논란이 되는 건 동원형 위문편지이지 취지 자체를 폄훼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같은 목동 학원가에서 만난 여고생(19)은 “위문편지는 국군 장병을 응원하는 좋은 취지라고 생각한다”면서 “편지 쓰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편지 쓰면서 봉사 시간까지 주면 좋은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신촌 연세대 앞에서 만난 대학생(21·남)도 “군인들의 희생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아닌데, 고등학생들이 위문편지를 쓰는 문화가 있으면 군인들의 희생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내가 군에 입대해서 위문편지를 받는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보람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대학생(23·남) 역시 “아직 군대에 가지 않았지만, 위문편지를 받으면 힘이 날 것 같다”면서 “위문편지 문화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한 마음으로 시작된 거니까. 일부 학생들의 부주의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의견에 대한 반대 입장도 있습니다. 일명 ‘진명여고 위문편지’ 사건 이후 만들어진 MZ세대 단체 ‘편지 찢는 여자들’(공동 대표 라텔, 공동대표 반성폭력 운동가 권태랑, 태평해, 해일, 쓰담, 디자이너 주타, 한영)측은 밀실팀에 “군인은 국가에서 자신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정당하게 받아야 하고 그것을 ‘위문편지’와 같은 형식으로 퉁치려고 하면 안 된다. 특히나 그 편지를 여성 청소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성범죄라고 생각한다”고 전해왔습니다.

위문편지를 폐지하자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내용.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위문편지를 폐지하자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내용.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시 교육청 “위문편지 폐지 관여 못 하지만…”

그렇다면 앞으로 학생들은 위문편지를 계속 써야 하는 걸까요? 교육당국은 개별 학교에 위문편지 쓰기를 '폐지하라 마라' 하는 건 지나친 관여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진명여고 측에서 위문편지 작성을 ‘안보교육’으로 분류하고 편지 작성자들에게 봉사활동 시간을 부여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진명여고처럼 봉사활동과 연계하고 있는 학교는 더 적다는 게 시 교육청의 설명입니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평화통일 교육에 중점을 두자는 취지인데 위문편지는 방향성이 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형식적이거나 봉사활동 취지에 맞지 않는 행사는 계속 지도해가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하기 싫은 학교 숙제’였고, 누군가에게는 ‘고립된 공간에서 받은 반가운 편지’였던 위문편지. 과거의 추억으로 남을 뻔했던 위문편지가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위문편지를 둘러싼 논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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