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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알면 다들 경악… 양미리-까나리 차이를 아시나요[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겨울 동해바다를 뿌옇게 물들이는 그놈
정체를 알면 다들 경악하는 반전 매력의 그

- 양미리인가, 까나리인가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인간들 중에는 가끔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집 살림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도 직업이 봇짐장수라 나들이가 잦은 사람인 경우, 경상도에서는 똘이 아버지로 행세하다가 전라도로 넘어가면 식이 아버지가 되어 있는 경우다. 인터넷도 없고 주민등록증도 없던 옛날에는 이런 사람들이 꼬리를 밟히기 쉽지 않았겠지만 요즘 세상에선 여차하면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오늘의 주제가 되는 물고기도 그런 종류다. 서해와 동해에서 각각 다른 역할로 활약하는데, 어지간한 사람은 둘이 동일인물 아니 동일 해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 보시기 바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동해안에서 먹을 수 있는 별미가 몇 가지 있다. 그 동네가 고향인 분들은 알이 꽉 찬 도루묵이나 곰치국과 함께 양미리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 바로 몇 마리 집어다 소금 툭툭 뿌려가지고 연탄불에 올려서 쏘주 한잔에 키야’ 하는 그 맛. 바로 그 맛을 찾아 ‘백종원의 사계’ 팀은 겨울 동해로 향했다.

주문진 어시장 앞길은 어선들이 정박한 포구를 따라 생선 말리는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역시 제철을 맞은 큰 가자미들이 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한쪽에는 양미리 말리는 줄도 제법 길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양미리는 귀한 대접을 받는 생선이 아니다. 흔하기 때문이다. 겨울 양미리가 맛이 있는 것은 산란기를 앞두고 알이 차고, 몸에 기름기가 오르기 때문인데, 어찌나 양미리가 많은지 이 무렵이 되면 동해바다가 뿌옇게 변한다는 것이 어민들의 주장이다.

“왜 뿌옇게 변하죠?”

“그기, 그 양미리 수컷 속에 그 있잖아, 그 곤이.”

이분이 말씀하시고 싶었던 곤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곤이가 아니고 이리, 즉 수컷 생선의 정소(精巢)였다. 그러니까 산란기가 되면 수정을 위해 수컷 양미리들은 일제히 정액을 내뿜는데, 그 개체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바다가 뿌옇게 변할 정도라는 것.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아무튼 이런 왕성한 번식력 덕분에 우리는 겨울마다 양미리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생선에 대한 토막 상식: 흔히 생선의 몸속에서 나오는 정소를 ‘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곤이는 암컷에게 있는 알집을 말하는 것이고, 수컷의 정소는 ‘이리’가 맞는 표현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주문진 포구에 연탄불을 피우고 백종원 대표와 어류 칼럼니스트 김지민씨(유튜브 ‘입질의 추억’으로 유명한 그분)가 마주 앉았다. 양미리구이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상 아무 준비도 필요 없다는 것. 연탄불 위에 석쇠를 얹고 양미리 몇 마리를 얹은 뒤 굵은 소금 몇 알갱이를 툭툭 뿌려주면 준비 끝이다. ‘백종원의 사계’ 사상 이렇게 간단한 조리 준비는 없었다. 몇 번 뒤집어 주는 사이 양미리는 벌써 군침 나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꽁치 굽는 냄새가 구수하면서 살짝 비릿하다면 양미리는 뼛속까지 순수하게 고소한 냄새가 난다. 잘 구워진 양미리가 두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백종원 대표가 말을 끊는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겨울 양미리 수컷이랑 암컷 중에서 어느 게 더 맛있는지 알아요?”

보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막상 먹어 보면 다르다. 양미리는 본래 내장이고 가시고 가리지 않고 대가리부터 통째로 먹는 생선인데, 암컷과 수컷은 뱃속의 내용물이 다르다. 암컷의 배에는 당연히 알이 가득 차 있고, 수컷의 배에는 위에서 얘기했던 그 이리가 들어 있다. 바로 이 이리 때문에 양미리 좋아하는 사람들은 수컷을 더 쳐준다는 것이다.

“와, 크림치즈 같아요.”

수컷 뱃속의 이리는 열을 가하면 녹아내리는데 그 녹진하고 부드러우면서 짭조름한 맛이 크림치즈에 비길만 하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녹아 흘러내릴 듯한 이리 맛은 바로 소주를 부른다. 알이 더 맛있나, 이리가 더 맛있나, 충분히 비교해 가며 먹을 만 한 맛인데, 여기서 백종원 대표가 오늘의 핵심 질문을 던진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그런데 양미리랑 까나리랑 정말 같은 놈이 맞아요?”

충격적이다. 까나리는 제법 유명한 생선이다. 직접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도,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벌칙으로 쓰이는 ‘까나리 액젓’이 까나리라는 생선으로 만든 젓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좀 더 아는 사람들은 까나리 액젓은 동해안이 아닌 서해안에서 많이 나오는 특산물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 까나리가 양미리와 같은 물고기라고?

그랬다. 서해안에서는 덜 자란 까나리를 젓갈로 담가 먹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고, 동해안에서는 다 자랄 때까지 기다려 구워 먹거나 조려 먹어 왔다. 그러다 보니, 서해안 사람은 이 까나리가 동해로 가면 양미리가 되는 걸 모르고, 동해안 사람은 이 양미리가 서해에서는 까나리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까나리의 두집 살림이 백일하에 들통나는 순간이다.

“양미리가 까나리면… 그럼 어류도감에 나오는 양미리는 뭔가요?”

새로운 질문. 어류도감에 따르면 까나리는 농어목 까나리과의 생선이고 양미리는 큰가시고기목 양미리과의 생선이다. 그러나 이 양미리는 다 자라도 9㎝ 정도인 작은 물고기인데, 지금 연탄불 위에서 익어가고 있는 양미리는 작은 생선도 15㎝, 큰놈은 20㎝ 정도나 된다. 누가 봐도 이 양미리는 그 양미리가 아니다. 사실 이 ‘진짜 양미리’도 여전히 동해에서 잡히기는 하지만 요즘 동해 근처에서 양미리라고 부르는 생선은 이 진짜 양미리가 아니라 큰 양미리, 즉 까나리 양미리이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어졌다. 참 헷갈리는 상황인데, 정리하면 이렇다.

1. 현재 동해에서 구워 먹고, 조려 먹는 양미리의 진짜 이름은 까나리다.

2. 서해에서 까나리 액젓의 원료로 쓰이는 그 까나리 맞다.

3. 어류도감에 나오는 양미리라는 물고기는 또 다른 종인데, 요즘은 큰 양미리(사실은 까나리)에 밀려 아예 존재감이 없어졌다.

이렇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서해안에 가서 양미리 달라고 하고, 동해안에 가서 까나리 달라고 해 봐야 어른들에게 타박만 받을 뿐, 소득이 없을 게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냥 부르던 대로 부르자. 사실 이름이 양미리면 어떻게 까나리면 어떤가. 구워서 맛있으면 그만이지.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양미리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 대표와 김지민씨는 양미리 20여 마리를 그 자리에서 구워 먹고, 어민들이 나눠 주신 양미리 알찜을 먹고, 생물과 말린 것의 맛 차이를 본다는 핑계로 다시 말린 양미리 10여 마리를 굽고, 이어서 말린 참가자미까지 구운 뒤에야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나서 백종원 대표는 남은 양미리에 된장과 고춧가루, 청양고추를 넣고 조림을 만들어 온 제작진과 함께 푸짐하게 양미리 잔치를 했다는 후문이다. 양미리가 없었다면, 겨울 동해는 이만치 풍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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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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