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을 보내며 서너 권 이상 갖게 되는 졸업앨범. 추억을 소환하는 졸업앨범은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보물 상자와도 같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일반적인 졸업앨범은 그저 ‘종이’일 뿐이다. 이들에게 특별한 졸업앨범이 주어졌다.
지난 24일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대구광명학교를 찾았다. 초등학교 과정 졸업식 후 2주일 만에 단짝 혜진이와 소윤이가 마주 앉았다. 책상에는 3D 프린터로 만든 입체 졸업앨범이 놓여있었다. 액자형 앨범에는 졸업생들과 선생님들의 모습이 조각상처럼 새겨져 있다. 버튼을 누르면 친구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오뚝한 코에, 귀도 예쁜걸!”, “백만불짜리 이마야~”, “상상했던 모습이랑 비슷해서 신기해”
두 친구가 더듬더듬 손끝으로 졸업앨범을 만지며 웃었다. 한 교실에서 6년을 같이 보냈지만, 목소리로만 서로를 기억하던 아이들이었다. 그 누구보다 친구 얼굴이 궁금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집에서도 온종일 앨범을 만진다고 한다. 상상만 했던 친구 얼굴을 손끝으로 느끼며 보고싶은 마음을 달랜다고 했다.
특별한 졸업앨범은 경북대 크리에이티브팩토리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이 더해졌다. 지난 2019년 시작해 3년째다.
크리에이티브 팩토리는 광명학교에서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3D 모델링 체험 교육을 하던 중 이 특별한 앨범을 시작했다. 두 번째 앨범부터는 음성 메시지와 저시력 학생들을 위한 조명 기능도 추가됐다. 이번 앨범은 경일대 키움 메이커에서 원목 형태의 프레임을 만들어 한층 따뜻한 느낌이 더해졌다.
앨범은 ‘3D 스캔 촬영 - 데이터 보정 - 프린트 - 후처리 - 제작’ 등 총 5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360도 얼굴 스캔과 보정 작업 후 3D 프린터를 이용해 출력하고 세척과 열처리 작업 등을 거친다. 손에 상처 없는 안전한 결과물을 위해 광경화성 수지를 원료로 사용한다. 이어 조명과 음성 삽입 작업 등을 거쳐 완성된다.
앨범 제작을 총괄하는 황웅비 팀장은 “코가 높거나 귓볼이 둥글둥글 한다든지, 개인적인 특성을 살린 정교한 얼굴 구현에 신경 쓴다”며 “약 30여 명의 관계자가 촬영부터 완성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을 꼬박 투자한다. 현업과 병행하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졸업식 날 앨범을 받은 아이들의 미소를 생각하면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특별한 졸업앨범을 처음 기획한 정문준 광명학교 미래교육부장은 앨범의 의미에 대해 “졸업앨범은 친구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는 학창시절의 아주 소중한 물건인데, 시각 장애인들은 그런 추억을 갖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체·지적장애까지 복합적으로 가진 우리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함께 했다', ‘나도 해냈다’’라는 느낌을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