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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 속담의 기원···고급음식 대접 받는 '스페셜 떡국'[e슐랭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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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떡국이나 만둣국을 끓여 먹는다. 과거 떡국엔 꿩고기를 넣어 국물을 끓인 것을 으뜸으로 쳤다. 국물을 만드는 주재료 중 꿩고기가 단연 맛과 식감이 좋아서다.

꿩고기는 맛은 좋은데 사냥을 하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닭을 잡아 닭고기를 떡국에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도 여기서 유래됐다.

떡국 만드는 주재료 ‘꿩고기’가 으뜸

전통 매가 꿩을 사냥하고 모습. 과거 떡국엔 꿩고기를 넣어 국물을 끓였는데 사냥을 하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워 일반 가정에선 꿩 대신 닭을 넣어 떡국을 끓였다. 중앙포토

전통 매가 꿩을 사냥하고 모습. 과거 떡국엔 꿩고기를 넣어 국물을 끓였는데 사냥을 하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워 일반 가정에선 꿩 대신 닭을 넣어 떡국을 끓였다. 중앙포토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강원 평창군에는 여전히 꿩고기를 넣어 만둣국을 끓이는 식당이 있다. 지난 24일 찾은 대관령면 횡계리 N식당은 꿩만둣국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30여 년 전 문을 연 이 식당은 뀡고기를 다져 만두 속에 넣고 꿩만둣국을 끓인다.

마침 식당을 찾은 날 많은 눈이 내려 식당 안 대형 창으로 설경을 감상하며 꿩만둣국을 맛볼 수 있었다. 김치와 다진 꿩고기가 들어가 부드러운 육질과 함께 야간의 매콤한 맛이 느껴졌다.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은 꿩을 넣어 만든 만두의 특징이라고 한다.

단골손님 이모(76·여·경기 의정부시)씨는 “야생화 촬영을 위해 평창을 찾을 때마다 꼭 들르는 집”이라며 “구수한 강원도의 맛을 느낄 수 있어 10년 넘게 이 식당을 찾는다”고 했다.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 꿩만두 특징

지난 24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N식당. 30년 전 문을 연 이 식당은 뀡고기를 다져 만두 속에 넣고 꿩만두국을 끓인다. 박진호 기자

지난 24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N식당. 30년 전 문을 연 이 식당은 뀡고기를 다져 만두 속에 넣고 꿩만두국을 끓인다. 박진호 기자

N식당은 개업 초기엔 인근 산에서 ‘꿩 몰이 사냥’으로 꿩을 직접 잡아 요리에 썼다. 눈이 많이 오고 추운 날 여러 명이 꿩 몰이 사냥에 나선다. 꿩이 나타날 만한 구역에 여러 명이 군데군데 서 있다가 꿩을 발견하면 한 사람이 꿩을 쫓아 날아가도록 몰이를 한다.

날아간 꿩은 얼마 가지 못하고 내려앉는다. 꿩은 원래 멀리 날지 못하고 높이 날지도 못한다고 한다. 이때를 기다려 인근에 있던 사람이 릴레이 하듯 다시 꿩 몰이를 한다. 이렇게 몇번을 반복하다 보면 꿩은 지쳐서 더는 날지 못하고 눈밭에 머리를 처박게 된다. 꿩 몰이에 나선 이들은 쓰러진 꿩을 줍기만 하면 된다.

평창에서는 매를 먹이고 꿩을 사냥하는 매사냥꾼을 ‘수알치’라고도 불렀다. 매사냥은 요즘으로 치면 승마나 요트와 같은 귀족 스포츠였다. 이 때문에 매사냥으로 잡은 꿩으로 만든 떡국이나 만둣국은 고급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1982년 11월 매가 천연기념물 제323-7호로 지정될 정도로 희귀해지면서 매를 부리는 사람도 점점 자취를 감췄다.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김봉래(57)씨는 “농사짓기가 힘들어지면서 어머니께서 오래전부터 집에서 끓여 먹던 꿩만둣국으로 식당을 냈다”며 “초기엔 아버지가 직접 잡은 꿩으로 요리했는데 지금은 꿩 농장에서 꿩고기를 가져와 만두를 만든다”고 했다.

식당 초기엔 ‘꿩 몰이 사냥’으로 꿩 잡아

지난 24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N식당. 30년 전 문을 연 이 식당은 뀡고기를 다져 만두 속에 넣고 꿩만두국을 끓인다. 박진호 기자

지난 24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N식당. 30년 전 문을 연 이 식당은 뀡고기를 다져 만두 속에 넣고 꿩만두국을 끓인다. 박진호 기자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전라도 ‘닭장떡국’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유력하다. 닭장떡국은 재래 간장에 닭을 졸여서 닭장을 만들고 국물 재료로 쓰는 떡국이다.

닭장떡국의 베이스인 닭장은 이틀 전쯤 미리 만들어두면 좋다. 미리 만들어두면 숙성과정을 거쳐 제대로 된 맛이 우러난다. 닭고기의 진한 육수와 간장이 어우러지면서 구수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조린 고기 역시 숙성 과정을 거치면 탄력이 생겨 식감도 좋다고 한다.

날떡국 먹으면 한해 농사 ‘풍년’ 

충청도 날떡국 .[중앙포토]

충청도 날떡국 .[중앙포토]

충청도에서는 날떡국을 주로 먹는다. 날떡국은 쌀가루 반죽을 수제비처럼 떼서 장국에 넣어 만든다. 이 반죽을 생떡이라고 부른다. 육수에 다슬기를 넣어 먹기도 하는데 다슬기 특유의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충청도에선 날떡국을 먹으면 한해 농사가 잘된다는 말도 있다.

경상도는 지역에 따라 굴과 물메기 등 해산물을 넣은 독특한 떡국이 많다. 굴떡국과 물메기떡국은 경남 거제·통영 등 해안지역에서 주로 먹는다. 멸치·다시마·무로 끓인 육수에 해산물을 넣어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일부 지역에선 떡을 동그랗게 썰어 넣은 태양떡국도 먹는다.

제주도에선 최근 몸떡국이 인기다. ‘몸’은 톳과 비슷한 해초인 모자반의 제주도 방언이다. 제주에선 모자반 외에도 취향에 따라 옥돔이나 미역을 떡국에 넣기도 한다.

해산물 떡국은 깔끔한 맛이 ‘일품’

경상도 굴떡국 .[중앙포토]

경상도 굴떡국 .[중앙포토]

예로부터 설날에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첫날인 설에 떡국을 먹는 풍습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로 여겨지면서 생긴 말이다.

하지만 설을 앞두고 농민들의 근심은 깊어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가족·친지들의 만남이 줄면서 떡국을 비롯한 농축산물 소비가 위축돼서다.

김동구 농협중앙교육원 교수는 “떡은 곡식 가루를 시루에 안쳐 찌거나 빚어서 찌는 음식으로 설날과 추석 등 주요 명절을 비롯해 일생의례 (백일·돌·혼례·장례·제례)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나누어 먹는다”며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설날 아침 온 가족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떡국을 먹으며 윷놀이를 하는 날이 다시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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