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사교성 있는 나라 되라”…강대국들에 낀 한국이 갈 길

중앙일보

입력 2022.01.29 10:33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95)

“아름다운 여인이여, 세상의 괴로움을 딛고 기품과 젊음이 넘쳐나고, 봄의 새싹처럼 나를 들뜨게 하네. 기쁨과 환희로 나를 눈멀게 하는 그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칼 베커의 시

다뉴브강을 품고 있는 동유럽. 그곳은 언제나 또 가보고 싶은 곳이다. 다양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이 서유럽 못지않다. 거기다가 물가까지 저렴하다. 동유럽은 한때 구소련 위성국가들로 어두운 역사를 품고 있다. 그런 역사를 압축 상징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모스타르 다리’이다.

모스타르는 15세기 오스만 제국이 세우고 합스부르크 제국이 발전시킨 도시이다. 다리의 동쪽은 이슬람, 서쪽은 가톨릭 교도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민족적·종교적 갈등이 폭발한 보스니아 내전으로 크로아티아 포병대에 의해 1993년 11월 그 다리는 파괴된다. 인구 430만 명 중 약 20만 명이 희생되었다. 다리 한쪽 끝에는 ‘Don‘t forget 93’이란 글이 돌에 새겨져 있다.

한때 구소련 위성국가들로 어두운 역사를 품고 있는 동유럽. 그런 역사를 압축 상징하는 곳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모스타르 다리’다. [사진 pxhere]

한때 구소련 위성국가들로 어두운 역사를 품고 있는 동유럽. 그런 역사를 압축 상징하는 곳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모스타르 다리’다. [사진 pxhere]

동유럽은 ‘민족의 모자이크’라 불릴 정도로 민족 분포와 역사가 복잡하다. 유럽과 아시아, 동방정교와 가톨릭, 이슬람이 1500년 동안 만나고 각축하며 얽히고설킨 역사다. 특히 발칸 지역은 ’유럽의 화약고‘로 불린다. 인종과 종교가 다른 민족이 공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증명한다. 우리는 동유럽 역사를 좀 더 깊이 알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들도 한반도와 같이 반도 국가로서 강대국 속에 ’낀 나라‘로, 외세의 시달림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동유럽 역사는 크게 보면, 1000년 넘게 지속되던 동로마 제국이 1453년 오스만 제국에 무너질 때까지 동서 기독교의 대립 구도 속에 있었다. 16~18세기에는 합스부르크와 오스만 양대 제국이 각축을 벌이는 전쟁터였다. 2차 대전 이후에는 구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다. 1990년 전후 구소련 붕괴 후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다시 독립국으로 새로 태어난다.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등 7개 국가로 해체되어, 대부분 인구 200만 내지 400만의 소국으로 홀로서기를 했다.

동유럽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언의 레슨’을 하고 있다. 첫째, 강대국들은 인도적인 관점에서 약소국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끝나면, 승자에게 유리하게 국경선을 긋고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그때 패자의 편에 선 약소국은 전리품으로 전락한다. 둘째, 오직 민족이라는 편협한 시각에서 국제문제를 재단하면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티토의 통치하에 한 때 비동맹 77개국을 이끌었다. 종교와 민족은 서로 달랐지만 오손도손 이웃으로 한 가족처럼 잘살았다. 그러다가 연방이 해체되면서 민족 간 종교 간 분쟁으로 비화하면서 어제의 이웃이 오늘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 생생한 흔적을 ‘모스타르 다리’가 증언하고 있다.

“우뚝 솟은 첩탑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붉은 지붕은 총알로 얼룩진 역사를 말해주고, 머리에 스카프를 한 짧은 치마의 여인이 은밀하게 다리 사진을 찍는다.”-‘모스타르 다리에서’(비버리아)

지금 한반도 상황은 어떤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동서로 감정의 골이 깊이 파여져 있다. 분단 70년을 넘으면서 북은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고 있다. 배를 굶주리면서까지 군사적인 힘을 키우는 것을 재미로 하겠는가.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 언젠가는 큰 불씨로 작용할 것이다. 동유럽에서 보듯 이웃 간 민족 간 증오를 키우는 것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하물며 한 민족 간에 소통하지 못하고 문을 닫아걸고 이질화하는 것을 방치하면 큰 불씨를 잠시 덮어두는 격이다.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와 타이완에서 강대국들이 부딪치면서 신냉전이 부활하고 있다. [사진 pxhere]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와 타이완에서 강대국들이 부딪치면서 신냉전이 부활하고 있다. [사진 pxhere]

강대국들은 그들 사이에 ‘낀 나라’가 분단되어있는 것이 다루기 쉽다. 그러나 한민족 입장에서는 분단은 비극이다.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어떻게 하든 화해와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큰 불행을 사전에 막고 한국이 중견 강국으로 오래 부강하는 길이다. 동서독은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이삼십 년간 꾸준히 추진, 민족 교류와 화합을 실천한 덕분에 통일을 이루었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강하고 지혜로운 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낀 나라’는 이웃 국가에 각을 세우기보다는, 필요한 분야에 잘 협력하는 ‘사교성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아, 저 나라는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하구나”하는 착한 마일리지를 계속 쌓아나가야 우호적인 국가로 대접받는다. 대책 없이 부딪치고 적대시하는 행동이 쌓이면, 국제 정세가 험악해지면 쳐부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 국제 정세가 심상찮다. 우크라이나와 타이완에서 강대국들이 부딪치면서 신냉전이 부활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성숙하고 지혜로운 국제 관계가 요구된다. 국가 간의 우호적인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긴 시간을 두고 공을 들여야 비로소 효과를 본다.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동유럽의 역사는 우리에게 반면교사다. 다음 동유럽 여행은 그 역사도 함께 공부하여 생생한 역사기행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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