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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이 뭐가 중요해, 우리집은 5년째 채식...달라진 설 차림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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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이후 맞는 다섯 번째 명절이다. 음력 설을 맞아 차례상 준비에 여념 없는 연휴 첫날이지만 풍경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간소화’다. 대가족이 모여 풍성한 상을 차리기보다 적은 인원으로 가벼운 상을 차리는 식이다. 상차림도 음식 가짓수를 줄이거나, 그마저도 호텔 투고(to-go·포장)나 가정간편식(HMR)을 활용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호텔 셰프가 부친 전으로 차례상 차린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도연(40대·서울 강남구)씨는 최근 명절마다 호텔 상차림 투고 상품을 애용하고 있다. 아침에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식사 용도로 5~6인분 정도를 시키는데 갈비부터 전, 나물과 생선 등 구성도 맛도 훌륭해 만족스럽다. 김씨는 “결국 한 끼 용도인데 식재료 사서 다듬고 차리고, 또 치우는 것도 일이라 간편하게 해결한다”며 “잔뜩 재료 사서 만들고 다 먹지 못해 남기는 것도 낭비인 것 같다”고 했다.

명절을 앞두고 호텔 투고 패키지가 인기다. 효율과 간편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명절 상치림을 주도하면서 생긴 변화다. [사진 플라자호텔]

명절을 앞두고 호텔 투고 패키지가 인기다. 효율과 간편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명절 상치림을 주도하면서 생긴 변화다. [사진 플라자호텔]

김씨같은 소비자를 위해 호텔들은 셰프가 만든 명철 차례 음식을 포장해 판매하는 ‘투고 차례상’을 내놓고 있다. 한화 호텔&리조트의 플라자 호텔 설 투고는 2020년 설에 앞서 최초 출시한 이후 지난해 추석까지 약 6배 이상(627%) 매출이 상승했다. 이 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28일 기준, 올해 설 매출도 지난해 설 매출을 넘어섰다. 떡국·LA갈비·갈비찜·굴비구이·잡채·전·나물 등으로 구성된 11만~45만원선의 다양한 패키지를 구성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비대면 수요가 높아지면서 '드라이브 스루'로 명절 음식을 픽업하는 사례도 늘었다. [사진 롯데호텔]

비대면 수요가 높아지면서 '드라이브 스루'로 명절 음식을 픽업하는 사례도 늘었다. [사진 롯데호텔]

롯데호텔도 설을 맞아 명절 상차림 메뉴를 내놨다. 비대면 수요를 겨냥해 ‘드라이브 스루(자동차에 탄 채로 이용)’로 수령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갈비찜·잡채·전복초·육전과 삼색 전·나물 4종 등을 3단 도시락으로 구성한 ‘딜라이트 박스’가 대표메뉴다. 롯데 호텔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드라이브 스루 상품은 이전 추석보다 15%가량 판매량이 늘었다. 한 호텔 업계 관계자는 “효율과 편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명절 상차림을 주도하면서 고급스러운 호텔 음식으로 간편하게 차례상을 차리려는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고 했다.

간편 제수 음식 코로나19 후 34.1% 증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콕’ 연휴를 즐기는 ‘홈설족’이 늘면서 가정 간편식이나 밀키트를 활용해 상차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마트에 따르면 간편 제수 수요가 폭증했다. 이마트의 대표 간편식 브랜드인 ‘피코크’의 제수 음식의 명절 전 15일 매출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전인 2019년 대비 지난해 설에는 34.1%, 지난해 추석에는 11.1%의 두 자릿수 신장했다. 같은 기준 온라인 몰인 쓱(SSG) 닷컴에서 피코크 제수 음식 매출도 2019년 대비 2021년 설 106%, 추석에는 86% 늘었다. 많은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 만큼 간편한 명절 상차림이 대세가 되면서 기존 1~2인 가구가 즐겼던 간편 제수 음식 수요가 3~4인 가구까지 확대된 결과로 보인다.

많은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만큼 가정간편식(HMR)을 활용한 상차림에도 관심이 높다. [사진 이마트]

많은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만큼 가정간편식(HMR)을 활용한 상차림에도 관심이 높다. [사진 이마트]

온라인 장보기 앱에서도 설 상차림용 간편식 판매량이 급증했다. 마켓컬리에 따르면, 설을 앞두고 전류·나물류 등 조리가 완료된 상품을 비롯해 사골곰탕·도가니탕 등 끓이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 중심으로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8일간 전류 판매량은 지난해 동일 기간 대비 약 28% 늘었다. 특히 대표 명절 음식인 명태전 판매량은 321% 늘었고, 녹두전·꼬치전은 각각 156%, 116% 증가했다. 조리된 나물류도 시금치·고사리의 판매량이 57%·49%씩 증가했고, 도라지도 42% 늘었다. 이 같은 간편식 인기에는 편리성과 더불어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점도 꼽힌다. 마켓컬리는 전류 3종을 모은 모둠전 상품은 7500원부터, 3종 혹은 4종의 모둠 나물은 4900원부터 선보였다.

대표적인 명절 음식이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전류, 나물류의 간편식 인기가 상당하다. [사진 마켓컬리]

대표적인 명절 음식이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전류, 나물류의 간편식 인기가 상당하다. [사진 마켓컬리]

집집이 기호 반영, ‘채식’ 차례상도

조민주씨의 가족이 지난 추석에 차린 비건 차례상. 육전 대신 두부전과 깻잎전, 가지전 등을 올렸다. [사진 조민주씨]

조민주씨의 가족이 지난 추석에 차린 비건 차례상. 육전 대신 두부전과 깻잎전, 가지전 등을 올렸다. [사진 조민주씨]

초등학교 교사인 조민주(30·경북 칠곡)씨는 5년차 비건(vegan·완전 채식)인으로 함께 채식하는 아버지와 함께 명절마다 채식 차례상을 차리고 있다. 육류나 생선, 문어 등을 빼고 채식 만두나 토란국, 감자전 등을 올린다. 격식을 차리기보다 되도록 제철에 나는 재료나 직접 가꾼 재료를 활용해 간소하게 구성하는 편이다. 조씨는 “아버지께서 제사나 차례를 꼭 챙기시는데 상차림만큼은 유교적 관습을 너무 따지지 않고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음식으로 차리고 있다”며 “채식도 중요하지만 먹을 수 있는 만큼, 남기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차리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출시한 비건 만두 선물 세트가 조기 완판됐다. [사진 CJ제일제당]

설 명절을 앞두고 출시한 비건 만두 선물 세트가 조기 완판됐다. [사진 CJ제일제당]

‘홍동백서’‘조율이시’ 등 엄격한 규칙을 따르던 차례상차림도 ‘간소화’ 물결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관습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늘면서 집집이 모두 다른 기호와 취향을 반영한 상차림도 드물지 않다. 이에 따라 보다 다양한 설 상차림 간편식도 등장하고 있다. hy(옛 한국야쿠르트)는 한정식 전문점 ‘채근담’과 손잡고 명절용 밀키트 2종 떡국·오색 잡채를 출시했다. 채수로 담백하게 끓인 떡국과 느타리·파프리카 등의 채소를 넣은 잡채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2월 비건 인증을 받은 100% 식물성 ‘비비고 플랜테이블 만두’ 제품을 출시했다. CJ 관계자는 “음력 설 명절을 앞두고 처음 선보인 플랜테이블 왕교자 선물세트가 판매 시작 3주 만에 조기 완판됐다”며 “건강과 채식에 관심이 증가하면서 명절에도 채식 상차림을 원하는 소비자 니즈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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