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내서 공약 잔치?…국가채무 한도규정 '재정준칙' 공수표

중앙일보

입력 2022.01.29 06:01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서 마련한 ‘재정준칙’이 올해도 ‘공수표’가 될 전망이다. 여야 대선후보가 추가경정예산안 증액에 군불을 지피면서다.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권의 무관심에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한도를 법으로 규정하는 재정준칙의 입법화도 이번 정부에선 사실상 물 건너갔다.

2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20년 12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의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의 국가채무 비율과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각 기준(60%, 3%)으로 나눠서 서로 곱한 값이 1 이하면 재정준칙을 지킨 것으로 본다.

추경 증액 시 재정준칙 위반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를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라살림 적자가 커지면서 나랏빚과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확대돼서다. 일단 기재부가 최근 제출한 14조원 규모의 1차 추경안은 재정준칙을 위반하지 않는다. 국가채무 비율 50.1%,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3.2%로, 이 산식값은 0.891이 되는데 기준선(1)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경 규모를 정치권의 요구처럼 최소 35조원 안팎까지 확대할 경우 국가채무 비율은 51.5%, 통합재정수지 적자비율은 4.2%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 산식값은 1.202로 1을 넘는다. 이번에 증액을 하지 못하더라도, 여야 대선 후보 모두 2차 추경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 나랏빚과 재정수지 적자 폭 확대는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 추경 규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추경 규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재정준칙 발표 당시에도 ‘느슨한’ 기준이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물론 현재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에 재정준칙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 이에 정부는 2025년 도입을 목표로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입법 논의는 1년 넘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막대한 재정을 쓰는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어, 재정준칙 처리는 우선순위가 계속 밀리고 있다. 국회 기재위의 한 관계자는 “여야 모두 대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라 상임위를 여는 것 자체가 힘들다”며 “특히 재정준칙은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 대선전에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현 정부 임기 내에 재정준칙이 도입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입법 논의는 1년 넘게 국회서 방치 

이번 추경까지 포함하면 문재인 정부에선 10차례에 걸쳐 총 151조원 규모의 추경을 단행한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가운데 최다ㆍ최대 추경 기록이다. 앞선 노무현ㆍ이명박ㆍ박근혜 3개 정부의 추경 규모 합계(약 90조원)를 훌쩍 뛰어넘는다.

문 정부의 확장재정이 재정 건전성을 크게 악화시켰고, 이는 미래 세대에 큰 짐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나라 살림 씀씀이를 제어할 최소한의 장치인 재정준칙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ㆍ터키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화상면담을 통해 한국에 재정준칙을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를 권고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도 “재정준칙은 재정 안정화에 기여하겠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논의 중이고, 대선 후보들도 경제회복을 위한 재정지원 지속을 지지하고 있어 재정 안정화는 대선 이후에도 완만한 수준에 그칠(only modest) 전망”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장과 조세재정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정치의 재정ㆍ경제정책 개입이 심화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습관성 추경과 재정 의존증이 고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어 “위기 극복 이후 재정이 정상화됐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만성적인 재정 악화에 시달릴 것”이라며 “미래세대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정치권에서 나서 국가재정 정상화 의지를 보여주고, 재정준칙 제도화에 앞장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1년 내 재정준칙 마련하겠다" 

이처럼 우려가 커지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새 정부 출범 1년 내, 책임 있는 재정준칙을 마련해 국가채무를 관리하겠다”며 “정확한 경제전망, 재정운용의 책임성, 재정 통계의 투명성으로 책임 있는 재정준칙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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