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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표시? 의도된 상징?...'외교적 선물'에 숨은 의미

중앙일보

입력

독도가 그려진 문재인 대통령의 설 선물을 주한 일본 대사관이 거절했다. 한국 고유 영토인 독도 그림을 청와대가 선물에 활용하는 건 매우 정상적인데, 일본 측은 '다른 의도가 있다'며 꼬아서 받아들였다. 실제 국가와 국가 사이 주고 받는 '외교적 선물'은 말 그대로 선물이 아닌 경우들도 있다.

청와대가 설 명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 명의로 국내외 인사에게 보낸 설 선물. 상자에 독도 일출 그림이 그려져 있어 지난 21일 주한일본대사관은 이를 반송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설 명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 명의로 국내외 인사에게 보낸 설 선물. 상자에 독도 일출 그림이 그려져 있어 지난 21일 주한일본대사관은 이를 반송했다. 연합뉴스.

日 향해 뼈 때린 청와대?

지난 21일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 대사가 돌려보낸 선물은 청와대가 설 명절을 맞아 국내외 인사들에게 주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매실액, 문배주, 오미자청, 밤이 담겼고 상자에 독도 일출 장면이 그려졌다.

그런데 주한 일본 대사관은 또 독도에 대해 억지 주장을 하며 선물을 돌려보냈다. 일본 뿐 아니라 국내 모든 주한 외교 사절단에게 보낸 선물이지만, 이례적으로 항의까지 했다고 한다.

국내 여론은 "일본에 '사이다'(속 시원한) 선물을 줬다"는 의견과 "또 반일 몰이 하느냐"는 의견으로 갈렸다. 이번 선물 반송 사태가 앞서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당시 청와대가 만찬에 ‘독도 새우’를 메뉴로 올리고, 일본에서 발끈했던 걸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도 있다. 선물을 받았을 때 일본 측의 반응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청와대가 한국의 여러 아름다운 풍경 중에서도 콕 짚어 독도 풍경을 골랐다는 점에서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해 설에는 십장생도, 추석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상자를 사용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별다른 설명 없이 "독도는 명백한 우리 고유 영토"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올해 청와대 설 선물은 김포의 문배주(또는 꿀)와 매실액(전남 광양), 오미자청(경북 문경), 밤(충남 부여) 등 지역 특산물로 구성됐다. 청와대. 뉴스1.

올해 청와대 설 선물은 김포의 문배주(또는 꿀)와 매실액(전남 광양), 오미자청(경북 문경), 밤(충남 부여) 등 지역 특산물로 구성됐다. 청와대. 뉴스1.

한ㆍ일 정상, 케이크 받고 웃던 시절도...

현 정부 초기만 해도 한·일 간 주고받는 선물은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정말 선물로 생각했다. 2018년 5월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가 딸기 케이크를 선물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 축하 드립니다"라는 글귀도 새겨져 있었다.

당시에도 양 정상은 앞선 세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2015년 위안부 합의,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와 한ㆍ미 연합훈련 등 여러 사안 관련 대부분 평행선만 달린 터였다. 하지만 적어도 오찬 자리에선 '깜짝 이벤트'를 열고 함께 박수 치며 환히 웃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5월 일본 도쿄 총리공관에서 열린 한ㆍ일 정상회담 오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축하 케이크를 받고 박수치는 모습. 강정현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5월 일본 도쿄 총리공관에서 열린 한ㆍ일 정상회담 오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축하 케이크를 받고 박수치는 모습. 강정현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보다 앞선 2017년 12월에도 고노 다로(河野太郞) 당시 일본 외무상은 수영을 좋아하는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방수용 이어폰'을 선물했다. 당시에도 한ㆍ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의 결과 발표를 코앞에 두고 회담은 팽팽하게 진행됐지만, 양국 간 오간 선물 만큼은 사려 깊었던 셈이다.

하지만 양국 간 이런 최소한의 친교도 2019년 이후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같은 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양국 관계가 급랭했기 때문이다.

그 해 10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일왕 즉위식 참석 차 일본을 찾아 아베 총리에게 소통의 상징으로 막걸리를 선물한 게 사실상 격을 갖춰 선물을 주고받은 마지막이었다. 당시 이 총리의 방일에서도 뚜렷한 성과는 없었고 양국 간 소통의 문은 갈수록 좁아지기만 했다.

판다ㆍ손자병법ㆍ머그잔...비화 낳은 선물은?

외교적 선물이 오히려 구설과 논란을 낳은 건 한·일 사이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에게 머그잔을 선물로 줬다. 그런데 이 머그잔 뚜껑에 지난 1977년 오토만 제국(터키의 전신)의 군대가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의해 패배하는 장면이 담겼다며 난데없이 터키가 반발하고 나섰다. 압둘라 굴 터키 당시 외무장관은 "유럽연합(EU)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2008년 중국이 대만에 선물안 판다 중 암컷인 위안위안(圓圓)은 지난 2020년 타이페이 동물원에서 인공 수정으로 두 번째 새끼를 낳았다. EPA. 타이페이 동물원.

2008년 중국이 대만에 선물안 판다 중 암컷인 위안위안(圓圓)은 지난 2020년 타이페이 동물원에서 인공 수정으로 두 번째 새끼를 낳았다. EPA. 타이페이 동물원.

중국과 대만 사이엔 판다 선물을 둘러싸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지난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양안 분단 후 처음으로 열린 국공(國共)회담에서 대만 측에 판다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시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은 중국의 일방적인 통일 공작이라며 반발했다. 판다를 대만에 들여놓는 걸 마치 '트로이의 목마'처럼 생각했던 셈이다.

이후 2008년 친중 성향의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이 취임한 뒤에야 대만은 중국으로부터 판다 두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이름도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다'는 뜻의 중국어 '퇀위안(團圓)'에서 따와 수컷은 '퇀퇀(團團)', 암컷은 '위안위안(圓圓)'으로 지었다. 판다는 양안 관계 개선의 상징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워낙 많은 관심을 받다 보니 지난 2016년에는 중국 관영 매체가 "수컷 판다가 폐사했다"는 오보를 내는 등 해프닝도 있었다.

한편 정상 간 책 선물의 경우 특히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더 관심이 쏠린다. 2006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손자병법을 선물했다. 이와 관련,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손자병법의 대목을 통해 2003년 이라크 전쟁 등 미국의 대외 정책을 꼬집으려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06년 4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후진타오 중국 주석 환영식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식이 끝났다고 착각해 단상을 떠나려는 후 주석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모습. AP=연합뉴스.

2006년 4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후진타오 중국 주석 환영식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식이 끝났다고 착각해 단상을 떠나려는 후 주석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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