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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제왕적 대통령’ 종식, 더는 미룰 수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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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3호 30면

여야 후보, 권력구조 개편안 잇달아 제시

대통령에 권한 집중된 ‘87년체제’ 극복을

후보들 개헌안 내놓고 국민 합의 거쳐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집권하면 기존의 청와대는 국민에 돌려주고, 대통령실은 광화문 정부 청사에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대통령 집무실은 물론 관저도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사실상의 ‘청와대 해체’ 구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대선 당시 이와 비슷한 ‘광화문 집무실’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현실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난 대통령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대통령들은 막상 집권하면 시내에서 떨어진 청와대에서 거대 권력을 행사해왔다. 대통령제의 모태인 미국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 옆에 참모진이 상근하며 원활하게 소통하는 반면 우리 청와대는 대통령이 극소수 참모진 위주로만 접촉하며 민심과 차단된 구조다. 이런 가운데 윤 후보가 ‘청와대 해체’ 공약을 내놓은 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논점이 있다. 협치를 내세우면서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제왕’처럼 변해 국정을 전유하는 근본 원인인 87년 헌법 구조를 바꿔야 할 때가 됐다는 점이다.

마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도 엊그제 대통령 권력분산을 겨냥한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했다. 집권 시 5년 대통령 임기를 1년 줄이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시하며 개헌 논의에 동참했다. 물론 제20대 대선이 4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을 고려하면 당장 개헌 동력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상황이 아니다. 극단적 대립이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배태한 제왕적 대통령제에 마침표를 찍으려면 이번 대선이 오히려 적기일 수 있다. 모든 후보들이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안을 제시하며 공론의 장을 만든다면 네거티브 일색인 이번 대선판이 건전한 정책 대결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정답은 없다. 5년 단임제로 굳어진 현행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방안에 대한 지혜를 모을 때다. 4년 중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및 의원내각제 모두 장단점이 있다. 그런 만큼 권력구조 개편은 주권자인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는 인식이 개헌 논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조속히 자신이 생각하는 개헌안을 내놓아 공론화를 유도하고, 숙성된 논의를 거쳐 국민적 합의에 도달하는 게 바람직하다. 개헌 논의엔 대통령 권력개혁뿐 아니라 국민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확대 등 시대가 요구하는 의제들이 함께 다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현실적으로 개헌이 어렵다면, 현행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여가는 차선책에 모든 후보가 동의할 필요가 있다. 국무총리의 인사 제청권과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권을 보장한 우리 헌법의 내각제적 요소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이를 활용해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권’에 합의하고, 야당인 자민련에 일부 장관 임명권을 내주며 연합정부를 구성해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실례를 보여준 바 있다.

더욱이 ‘비호감 기류’ 가 비등한 이번 대선은 선거 이후에도 큰 혼란이 예상된다. 당내 비주류인 여당 후보, 집권하면 180석 공룡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삼게 될 야당 후보 모두 당 안팎의 반대파와 협치하지 않으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다짐한 개헌 공약을 망각하고 개인의 카리스마와 진영 논리에 의존하며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당 역시 막무가내식 반대는 오히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는 악수임을 명심하고 견제와 타협의 균형을 통해 수권정당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지금 당장 모든 후보가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안을 제시하고, “누가 당선돼도 이것만은 실천하자”는 공약수를 도출하는 게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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